Design History 05
지난주 구축주의에 관해 알아본 후,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론에 대한 물음을 던져 볼 수 있었습니다.
금주는 그와는 상반되는 소비되기 위한 예술, 팝아트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저 예쁘게 반짝거리는 눈은 누구의 작품일까요?
그는 바로 아시아의 앤디워홀이라 불리며 2008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등록돼있는 일본의 대표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입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다분히 일본스럽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며 일본풍 캐릭터에 집요하리만큼 집착적입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2003년 이래 다양한 작품활동을 거쳐 LA 현대미술관 에서의 회고전에 이르렀고, 루이비통의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2003년 루이뷔통 봄, 여름 시즌에 참가하며 ‘무라카미 라인’을 발표함과 동시에 다소 높게 책정되어 있던 루이뷔통 사용자 연령층을 대폭 낮추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리포지셔닝에 있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 매우 효과적이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고 이후 유사 사례들이 속출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돈을 벌 줄 아는 팝아티스트로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거창하게 말을 붙이자면 예술의 자본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포스트 앤디 워홀쯤으로 여겨집니다.
자본주의 하면 떠오르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화폐의 가치가 있는 물건, 즉 ‘상품’에 의해서 그 구조가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합니다.
상품은 가치 있는 상품으로써의 ‘화폐가치’를 만들기 위해 상품을 더 발전적이고, 고귀하고, 특징 있고, 유별나게 만듭니다.
하지만 ‘상품’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차별화된 물건을 만들기란 갈수록 힘들어지고 이에 자본가들은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상품에 부여할 무형의 가치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디자인은 상품의 무형가치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무형가치는 가끔 크리에이티브라는 일종의 도그마적 현상으로 이름을 바꾸어 디자이너의 내부에 촌충처럼 서식하기도 합니다.
무형의 가치는 말 그대로 형태가 없기에 보는 사람마다 그 가치를 매기는 데 있어 천차만별의 기준을 갖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디자이너의 노동 가치가 균질하지 못하게 인식될 수 있는 수많은 부정적 요소를 동반합니다.
특히 디자인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는 것이 자본가에게는 유리한 일이기에 디자이너의 능력은 평가절하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독보적인 몇몇 디자인을 제외한 나머지 디자인의 가치는 박하게 매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바라보는 창조성에 대한 박한 시선 앞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펼친 오타쿠의 전략은 괄목할만합니다.
지금부터 그가 펼친 오타쿠의 전략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스스로를 오타쿠라 말하며 노골적으로 행동합니다.
밑은 그의 오타쿠적 성질을 잘 대변해주는 작품들입니다.
그의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윤리적 판단 기준이 쉽게 흐려진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재패니메이션이 가진 “카와이”와 “모에”라는 대표적인 두 가지 특성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두 개의 특성 중 “모에”를 이용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팝아트 전략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에”란 일본어로 <싹트다>, <타오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애호하는 미소녀 캐릭터를 볼 때, 가슴에 솟는 흐뭇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에는 응용되는 방식이 미학적 방식인 “미메시스”와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미메시스”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주체가 대상화되어 보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린이극에서 아이들이 바위가 되어 꼼짝하지 않고 있어 보거나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려 보는 행위입니다.
미메시스는 고전 미학에서도 상당히 복잡한 개념에 속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설명할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모에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특질로는 캐릭터의 신체적 조건이나 감성적 특징, 혹은 불쌍하다고 여겨질 만한 약점을 갖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는 모에를 특정한 조건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관객으로부터 호감이나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성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에 캐릭터의 성격은 말괄량이에서 빈정대기 좋아하는 냉소주의자까지 다양합니다. 가령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같은 캐릭터는 “츤데레”라는 감성적 특징을 가지고 버무려낸 대표적인 모에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경심리학자 제이슨 박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하위문화에 집착하며, 그 정보를 수집, 체계화하는 것이 오타쿠의 특징이다. 하지만 동인 활동을 통해 패러디를 시도할 때조차 원형을 변형하지는 못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외부에서 주어진 완결된 이야기의 세계에 광적으로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오타쿠들의 핵심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최근의 모에는 미소녀 취향에 국한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만화연구가 김낙호 씨는 모에를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해 맞춰내는 방법”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방법 가운데 가장 재밌는 것은 의인화(모에화)의 방법입니다. 기차/대기업/편의점 등을 미소녀로 전환해, 캐릭터 군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원형적인 이미지에 대한 충성과 편집증적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에라는 추상적(자기만족의) 쾌락을 획득하는 일이 광범위한 문화 현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모에화 된 여러 사례들을 통해 오타쿠의 모에화 전략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이미지는 북한이라는 한 국가에 대한 모에화입니다.
위의 모에화에서 공산주의와 세습정치라는 반체제적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럽게 예쁜 캐릭터 속으로 녹아듭니다.
위 이미지는 지우개를 모에화 시킨 것입니다. 지우개의 커버를 일본식 체육복인 부르마와 결합한 것은 지극히 패티쉬적 시각입니다.
지우개와 지우개 커버를 분리시킬 수 있는 특성 또한 오타쿠들에게는 모에 요소일듯합니다.
위 이미지는 플레이스테이션 3에 대한 모에화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 3가 가진 미끈한 블랙 바디를 SM 플레이에서 주로 쓰이는 라텍스 재질의 옷으로 변형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재질의 닮음은 의미, 즉 시니피에(기의)의 닮음이 아닌 시니피앙(기표)의 닮음으로, 의미끼리의 닮음으로 대표되던 전통적 은유 방식에서 탈피한 다분히 포스트 모던한 은유 방식입니다.
이러한 기표 중심의 포스트 모던한 은유 방식에서는 언어 속 위계가 사라지며,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어떤 것으로든 확장될 수 있는데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큰 가치입니다.)
제가 충격받은 모에화입니다. 이는 러시아 탱크 T-72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탱크의 모에화를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예전 미래주의자들이 꿈꿨던 인간과 기계의 합체를 역설적으로 표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아이팟 제품의 모에화입니다.
T-72 탱크의 모에화 이후라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오렌지 색상이 지닌 상큼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모에화 시켰습니다.
기후에 대한 모에화입니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이 모에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태풍이 가지는 써늘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캐릭터화 시켰습니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냉소적인 캐릭터들은 흰색 머리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차가운 이미지와 관련이 많습니다.
슈퍼마리오의 두 캐릭터에 대한 모에화입니다. 슈퍼마리오는 게이 논란에 자주 빠지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입은 때 묻은 스즈키 바지와 굴뚝청소부라는 직업이 남성성을 강하게 들어내는 섹슈얼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위 이미지는 월드컵 당시 프랑스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모에화 시킨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축구는 아트사커라는 별명과 함께 전략적인 전술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런 인텔리 한 측면에서 “안경”낀 모에 캐릭터가 도출되었습니다.
(안경은 모에의 대표적 도구로써 오타쿠 세계에서 여러 가지로 변주가 가능합니다.)
위 이미지는 맥도널드를 모에화 시킨 사례입니다.
맥도널드 브랜드 컬러와 빨간 머리 여성에 대한 페티시즘적인 집착이 빚어낸 모에화입니다.
마지막으로 바퀴벌레의 모에화입니다.
바퀴벌레의 광택 나는 껍질이 귀여운 여성 캐릭터의 윤기 나는 머릿결로 변합니다. 이 역시 바퀴벌레에 대한 오타쿠의 애착을 드러내는 모에화입니다. 이러한 모에화의 이면에는 바퀴벌레의 “작다”라는 특성을 가지고 캐릭터를 아이로 설정하는데, 이는 롤리타 콤플렉스(Lolita Syndrome)를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반윤리적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했지만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신의 오타쿠적 본성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타쿠적 본성을 무기화해서 자신의 작품에 희석시켰으며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모에화 전략과 팝아트를 접목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티스트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시간이 허락된다면 무라카미 다카시처럼 제게 존재하는 매니악한 취향(남들에게 선뜻 말하지 못할 만한 것들)들을 버무려 독창적인 모에화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꼭 예술과 오타쿠로 대변되는 모에화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좋아하는 대상일 수도 있겠습니다.)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저질스러운 것들을 좋아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모에화 시킨 캐릭터를 조용히 들이미는 편이 더 신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질스러운 취향을 말해야 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 지혜롭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만의 모에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내던 여자 친구가 술자리에서 자신은 해군이 좋다며 홍조 띤 얼굴로 콧구멍을 벌름 거리며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모에화의 전략은 그 취향(아무리 저속하고 반체제적이라 하더라도)의 이면에 도사리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판단을 흐리며 귀여운 캐릭터로 대변된 자신의 말 못 할 취향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고도의(타인의 마음을 그리 나쁘게 하지 않고) 처세술입니다.
저는 저속하고 나쁜 취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취향이 어떠한 사회통념 속에서 자리 잡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예로 동성끼리의 결혼을 들 수 있겠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로 대변되는 오타쿠들은 사회에 자신들만의 저속한 취향들을 모에라는 추상적 가치들을 이용해 보편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오타쿠의 정치학>은 거대 자본의 도움 없이 독자적 생존을 꿈꾸는 아티스트 내지 디자이너들이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자본주의의 총아인 팝아트는 아티스트 개인의 취향을 파는 것입니다.
앤디 워홀은 캠벨 수프와 마릴린 먼로를 팔았고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만화를 팔았습니다.
나는 내 취향 중 어떤 부분을 팔 것인가에 대해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상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오타쿠의 모에화 전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