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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ghtbrain Lab Mar 24. 2021

06.매거진 신성한 봄과 시세션

[Design History 06]

[Design History 06] 빈 분리파 사조의 부흥, 매거진 신성한 봄 (Ver Sacrum)과 시세션(Secession)


금주는 지난주 일본 대표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어 <빈 분리파>라는 사조의 부흥에 많은 역할을 한 잡지 <신성한 봄 Ver Sacrum>과 시세션(Secession)에 관해 소개하겠습니다. 이 잡지는 <빈 분리파>의 예술 공식 잡지이자 1800년대 후반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잡지 중 하나입니다. 



 이 잡지를 한글로 읽어 본다면 “웨르사크룸” 정도로 읽을 수 있으며, 우리말로 직역하면 “신성한”, “성스러운 봄”쯤에 해당할 듯합니다.

 <신성한 봄>은 1897년 클림트가 <빈 분리파>의 회장이 되어 첫 출간을 하게 되며 1898년부터 1903년까지 유럽 전역의 아르누보 스타일의 회화와 공예, 디자인 분야의 걸출한 작가들을 소개했습니다.

 아래는 <신성한 봄>에 실린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입니다. 아래 그래픽들은 시세션(Secession)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듯합니다.



잡지 <신성한 봄>에서 구스타브 클림트는 다수의 대표작을 펴냅니다.
 아래 그림인 피쉬블러드(fish blood)는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와 완결된 형체가 없는 인물들을 통해 유기적이고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의 디자인 작업물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인물의 포즈와 제스처, 표정 등에 관한 연구는 위의 그림인 “Beethoven Frieze” 연작에서 잘 나타납니다.

 클림트는 이때부터 작품들 속에 점차 삶의 주기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담기 시작했고 그림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이나 운명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갓난아기에서부터 소녀, 여인, 심지어 임신한 여인까지 다양한 모델들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사랑, 고통, 욕망, 희망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신비롭고 감각적으로 표현해 잡지 <신성한 봄>에 담아냅니다.


이 당시 19세기 유럽 전역에선 예술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프랑스, 벨기에, 영국, 미국의 <아르누보>와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유겐트스틸>이 이 당시 일어났습니다.
 이과정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시세션(Secession)은 유럽의 지배 양식인 고전 건축을 대체하고자 했던 개혁운동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위의 건물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분리파의 집(Seces-sionhaus)입니다.

 이 건물은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리히(Joseph Maria Olibrich)가 설계하였으며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을 강조하는 시세션(Secession)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세션(Secession)에 속한 작가들은 온갖 종류의 통제에서도 분리파의 집(Seces-sionhaus)에서 자유로운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화풍의 화가들, 소외된 작가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에게도 전시 기회를 열어 주는 공간으로  쓰였습니다. 



 분리파의 집(Seces-sionhaus)을 거점으로 일어난 시세션(Secession)은 판에 박힌 사상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미술과 삶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시세션(Secession)은 빈 분리파 혹은 비엔나 분리파라고도 합니다.

 ‘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기존의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이나 관 주도의  전시회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차별화를 위해 시세션(Secession)은 매체의 적극적 활용을 시도했는데 관 주도의  전시회 대신 분리파의 집에서 전시했고,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들을 <신성한 봄>에 담아냄으로써 독자적인 세력 구축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시세션(Secession)은 구스타브 클림트를 중심으로 1898년 1월에 오늘 소개해 드린 잡지 성스러운 봄(Ver Sacrum)을 창간했고, 3월에 첫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올브리히가 디자인한 분리파의 집(Seces-sionhaus)을 개관했습니다. 이들은 젊고 재능 있는 화가들을  발굴하여 전시 기회를 제공했고 일본 미술전, 인상파 미술전 등을 통해 훌륭한 외국 작품들을 소개하여 오스트리아에 새로운 예술의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1902년에 개최된 제14회 빈 분리파전에는 5만 8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 빈 분리파의 위상을 실감토록 하였습니다. 



 시세션(Secession)은 특정한 예술 이념이나 양식은 없었지만 분리파의 집(Seces-sionhaus)에 새겨진 <각  세기마다 고유한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구에서 이들이 추구한 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아카데미의 오랜 역사와 전통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술 경향과 국적을 초월하였으며 전위미술에도 상당히 우호적이었습니다.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은 에곤 실레(Egon Schiele),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칼 몰(Carl Moll), 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 등이 있습니다.

 당초 <인상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회화 운동에서 출발한 시세션(Secession)의 성과는  오히려 현대 건축과 공예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모든 건축에서 실용성과 상징주의의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주거와  미학을 결합한 총체 미술을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하여 근대적인 국제주의 미술과 디자인이란 개념을 주창하였습니다.

오늘 글을 작성하며 지금 우리가 느끼는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공기 같은 생각들이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전 예술가들의 치열한 저항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숭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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