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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ghtbrain Lab Jun 21. 2021

18. 옵 아트의 대표적 아티스트 빅토르 바자렐리

Design History 18

[디자인 히스토리 18] 가장 독창적인 실천가이자 이론가, 옵 아트의 대표적 아티스트 빅토르 바자렐리


금주는 옵아트와 옵 아트의 대표적 아티스트인 빅토르 바자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옵 아트는 팝 아트의 상업주의와 지나친 상징성에 대한 반동적 성격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또한, 옵 아트라는 용어는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회 ‘응답하는 눈(The Responsive Eye)’이후 본격적으로 상용됩니다.
 


전시회 <응답하는 눈>의 출품작들은 평행선이나 바둑판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명도가 같은 보색을 인접시켜 색채의 긴장상태를 유발했습니다.
그야말로 눈을 위한 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 결과 관람자는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한 부분을 오래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옵 아트의 한 작가는 “색과 형의 정적인 힘을 극적인 것으로 변화시켰고 동적인 심리반응을 통해 눈의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예술의 본질인 사고의 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로지 시각의 착각을 유도하여 수수께끼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바자렐리, 1905 – 1997>


옵 아트의 시조는 몬드리안으로 볼 수 있으나 옵 아트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은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입니다.
빅토르 바자렐리는 헝가리 태생의 추상화가입니다.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모흘리나기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또한, 러시아 구성주의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기하학적 형태와 그에 상호작용하는 생기 넘치는 색으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 즉, 옵티컬 한 아트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스타일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에 이르러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이 당시 그는 더 밝고, 더 역동적인 색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환각을 통한 움직임의 형태를 표현하였습니다.
 

<직녀성>


빅토르 바자렐리의 대작 ‘직녀성’은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을 구부러뜨려 마치 거대한 서양식 장기판과도 같은 꼴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 구부러뜨림은 그림 전체와 관련하여 아주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각각의 사각형은 수축과 팽창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그 크기를 조절하여 가장 큰 사각형은 가장 작은 사각형의 10배가 넘습니다.
 


옵 아트의 대표적 작가로서 가장 독창적인 실천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빅토르 바자렐리는 엄격한 구성에 의해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하였으며, 수학적으로 면밀히 계산된 조형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의 미묘한 변화와 착란으로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1959년 빅토르 바자렐리는 프랑스로 귀화합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수가 프랑스 남부 보클뤼즈에 있는 바자렐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961년 이후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살았고, 1970년에는 바자렐리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1997년 3월 15일 비로소 그의 광학처럼 흔들리던 인생은 파리에서 끝을 맺습니다.

 


옵아트는 구성주의적 추상미술과는 달리 사상이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끼리의 끌어당기는 힘을 통하여 순수 지각의 세계를 탐구합니다. 그리고 빛·색·형태를 통하여 3차원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옵아트는 인문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자연 과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옵 아트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빛의 형태 및 빛의 공간을 추구하는 키네틱 한 옵아트와 평면상에서 구성하는 회화적인 옵 아트입니다.
윗 사실만 보아도 옵아트는 팝 아트와 여러모로 대조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즉 옵아트는 팝 아트와 같은 시사적인 자극이라든가 정서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과도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어서 차가운 느낌을 주는 예술입니다.
옵아트가 현재 다시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키네틱, 즉 동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파생된 여러 가지 툴 들에 의해 더 이상 그래픽은 평면에 접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옵아트가 키네틱 아트 전체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없지 않으나, 분명 상당히 많은 부분의 영적 영감을 후대 예술가들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옵아트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를 축약해서 부른 말이기도 합니다. 즉, ‘시각적인 미술’의 약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식은 망막의 미술(retinal art)’과 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이라는 다른 명칭으로도 불립니다.


예를 들면, 구불거리는 하얀 배경 위에 검은 평행선들이 놓인 브리지드 라일리 Bridget Riley(1931~ )의 생명감 있는 작품은 운동감과 깊이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당시 미국 화단에서 강력한 뿌리를 가지고 인기를 끌던 팝 아트의 상업주의나 상징성에 대해서 강한 반발심을 가졌던 옵 아트 작가들은 비 상징성과 비상업주의를 옵 아트에 탑재해 강렬한 시각적 착란으로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옵아트는 미술품의 관념적인 향수를 거부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자 했으며, 다이내믹한 빛, 색, 움직임의 가능성을 추구했습니다.

옵 아트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시각적 착각의 장을 확대한대 있습니다. 하지만 빅토르 바자렐리를 포함한 많은 옵티컬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열정에도 예술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소홀했다는 사실로 옵아트는 주류 예술계에서 도태당할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유사 이래의 모든 재현적 예술이 어떠한 의미에서건 시각적 착시를 내포하고 있는 것(상징과 은유를 통한 전달)과 옵 아트(수학적 계산)의 표현 방식은 분명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평단의 부정적인 시각과 더불어 옵 아트의 양식적 특수성 때문에 옵아트는 장식 디자인과 패션의 패턴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상업주의의 총아 팝 아트의 변증법적 결과물로 세상에 잉태된 옵아트는 스스로 장식주의적 양식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게 되면서부터 곧바로 주류 미술계에서 도태되어 버립니다.
비록 상업미술과 결탁해 옵 아트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정신이 끝까지 지켜지지 못한 점은 안타깝지만 빅토르 바자렐리를 비롯한 훌륭한 옵티컬 아티스트들의 정신은 지금도 후대의 많은 아티스트들의 좋은 본보기가 됨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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