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어느 날 나는 16편의 일기를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었다. 7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온 1938년생 제주도민 양신하의 일기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좌성한이 그 일기 중에서 4·3과 관련된 내용을 선별하여 내게 보내오면, 나는 그 일기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문구들을 뽑아내기로 되어 있다. 그러면 노르웨이 작가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가 일기의 내용과 키워드를 바탕으로 제주도 화산석에 냄새를 입히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 결과물은 광주 비엔날레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다.
16편의 일기에는 제주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형이 끌려간 날인 1950년 7월 29일부터 제주를 방문한 시셀 톨라스를 만난 2020년 1월 14일의 기록까지, 양신하란 사람의 70년이 압축되어 있다. 1950년 7월 29일. 첫 일기부터 나는 길을 잃는다. 단어를 선택할 수 없다. 그의 일기에는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상황만이 묘사되어 있다. 양신하는 그날 형과 초가지붕의 집줄을 매었다고 쓴다. 그와 형이 마지막으로 같이한 일이다. 나는 그날 일기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키워드로 ‘집줄’을 선택한다.
며칠 뒤. 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가와 화상회의를 했다. 작가는 일기에서 직접 뽑아내지 않아도 좋으니, 일기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말을 키워드로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다. 글쎄, 가능할까? 비극의 날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기록한 그 일기 속에서, 숨죽여 몸을 숨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슬픔, 회한, 억울함, 분노, 혼란스러움... 그 모든 것이 혼합된 감정에 어떻게 이름을 붙일 것인가. 나는 감정과 관련된 어휘 연구들을 읽고, 감정 명사, 감정 형용사의 목록을 뽑아서 쭉 읽어 본다. 그리고는 표를 만들어 일기의 날짜를 기록하고, 그 옆에 단어들을 하나씩 기입한다. 황망하다. 단조롭다. 참담하다.... 일기에 숨겨져 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납작해진다. 키워드 옆에 사전적 의미를 더한다. 그래봤자 납작한 말을 다른 평평한 말로 돌려 막는 형국이다. 이 말들이 영어로 번역되면 일기의 감정들은 종이처럼 더 얄팍해질 것이다. 결국 작가는 키워드 없이 일기와 냄새를 입힌 화산석일기와 냄새를 입힌 화산석만을 전시하는 것으로 작업의 방향을 틀었다. 옳은 결정이었다.
지난 4월 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1956년의 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작가가 그 일기의 느낌을 냄새로 담은 돌을 들어 향을 맡아 본다. 가만히 흙냄새가 올라온다.
‘1956년(단기 4289년) 5월 18일 금요일 맑음. 오늘은 한 시간의 생물 수업을 하고서 선생님으로부터 비행장 동남쪽 서란봉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해 뼈가 있는 곳에 형님의 뼈를 찾으러 가라고 했다. 현장에 갔는데 형수님이 먼저 와 있었고 많은 사람 속에서 나를 찾아와 아주버니 형은 특별히 키가 컸으니 큰 뼈가 나오면 찾으라고 하였다. 오후까지 굴 속에 있는 물을 양수기로 퍼내고 있었다. 한참 늦은 때 아무 뼈라도 차지하라고 형수님이 이야기를 해서 누구의 뼈인지 형수님과 같이 받고 묘역에 가서 묻으니 저녁이 되어 캄캄한 밤에 돌아왔다. 오늘은 세계사 교과서를 샀음. (500환)(하의 1400환).’
1950년에 학살당한 이들을 6년이 지난 시점에야 수습할 수 있었던 유해 발굴 현장의 하루를 고등학생 양신하는 담담히 기록한다. 누가 누구의 뼈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의 발굴 현장에서 형이 키가 컸으니 그저 ‘큰 뼈’를 찾으라는 형수의 요구, 그러다 ‘아무 뼈라도 차지하라는’ 형수의 체념, 그러다 ‘누구의 뼈’인지 모르지만 그 뼈를 얻어 묘역에 묻고 온 그 기막힌 하루. 그 하루를 양신하는 보통의 일상처럼 담담하게 쓴다.
이 기묘한 담담함에는 이유가 있다. 이날 양신하는 일기장에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썼다.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일들, 잘못 새어나갔다가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울 말들. 그런 말들을 글로 옮기면서 그 글에 함부로 감정을 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에게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
얼마 전 한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제주말 중에 ‘속솜하다’라는 말이 제일 좋아요. 고요하다는 뜻이잖아요. 너무 편하고 느낌이 좋은 말 같아요. 네? 아!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도 이 말의 어감이 귀엽다고 쓴 글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내부 식민지의 언어는 질곡의 역사가 담긴 말조차도 ‘예쁘고’ ‘팬시’하게,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소비된다. 당황한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설명한다. 속솜하다라는 말은 보통 ‘조용히 해라’라고 경고할 때 쓰는 말이에요. 저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4·3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 할머니께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여쭤봤어요. 제 질문을 듣자마자 할머니가 하신 첫 말씀이 ‘속솜허라’였습니다.
속솜허라. 속솜허라. 속솜허라. 제주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강요당한 말. 서로에게 강제했던 말.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문하며 내면화한 그 말. 그 말을 들으며 일기를 쓴 소년 양신하는 그 일기 안에서도 스스로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을 강요했을지 모른다.
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본다. ‘오늘은 세계사 교과서를 샀음(500환)’. 이상하게도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이 몹시 아프다. 세계사, 세계사라니. 이 일기 속 유해 발굴 현장은 말 그대로 세계사의 비극이 뒤엉켜 있는 장소다.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서 만들고 실제로 남경대학살 때 사용되었던 알뜨르 비행장. 이 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섯알오름에 건설된 고사포 진지와 탄약고. 미군의 탄약고 폭파. 그리고 그 탄약고가 폭파된 자리에 생긴 웅덩이에서 이루어진 집단 학살.
일기 속에서 숨겨진 감정이 담긴 단어들을 찾다가, 새삼스럽게 이 일기의 날짜가 5월 18일인 것을 깨닫는다. 이제 이 일기는 수십 년 뒤에 다른 방식으로 다시 반복될 국가 폭력의 암시처럼 읽힌다. 이렇게 양신하의 일기는 국가 폭력의 기원 중 한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1956년 5월 18일 제주는 맑았다. 그날 한 고등학생이 생물 수업 후에 세계사 교과서를 샀다. 그는 학살 현장에서 그의 형의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뼈 한 조각을 겨우 얻는다. 늦은 밤 그 뼈를 묘지에 묻고 고등학생 양신하가 캄캄한 밤길을 건너온다. 나는 그의 하루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잠긴 그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본다.
그의 슬픔은 생물 수업과 세계사 교과서, 그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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