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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 이름 지우는 게 불가?

보훈부 유감. 독립운동가 후손이 훈장 앞에서 절망하는 이유!

by 고상만

내가 재일교포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허경민 씨를 다시 만난 때는 지난 10월 말이었다. 나이 70을 바라보고 있는 그 분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때는 2004년 10월의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 약칭 <재일 한통련> 인사들을 환영하기 위한 대책위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나도 여기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재일 한통련 동료들과 함께 고국을 방문한 허경민 씨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재일 한통련은 어떤 단체?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재차 쿠데타를 감행한다. 유신헌법 선포였다. 이를 통해 박정희는 영구적인 총통 대통령을 꿈꿨다. 그러자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했던 훗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면적 항쟁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자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양심적인 재일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김대중을 지원하는 단체를 조직하는데 그 단체명이 훗날 ‘재일 한통련’이었다.


박정희 입장에서 김대중의 사실상 ‘망명 정부’ 역할을 하는 재일 한통련을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일이 터진 때는 1973년 8월 8일이었다. ‘김대중 동경 납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훗날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박정희의 중앙정보부’가 1973년 8월 15일 출범하는 재일 한통련 행사를 앞 둔 그때, 한통련의 총재로 내정된 김대중을 납치함으로서 재일 한통련의 와해를 기도한 것이었다.


2004년 10월, 당시 나는 이러한 재일 한통련 인사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 조직 부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 정권에 의해 조작된 공안사건 피해자인 재일 한통련의 명예회복과 관련 인사 고국 방문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일본 현지에서 우연히 재일 한통련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된 국내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이 적극 참여하여 결성된 단체가 ‘재일 한통련 명예회복과 고국 방문을 위한 위원회’였다.

마침내 2004년 10월. 재일 한통련은 노무현 정부의 승인하에 고국 방문이 이뤄졌다. 그날의 감격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재일 한통련 인사들은 고국 방문 직후 제일 먼저 4.19 혁명 희생자 묘역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묘역을 참배했다. 묘역 앞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눈물속에 참배했다. 그런 재일 한통련 인사 분중에 한 분이 바로 허경민 씨였다.


독립운동가 후손 허경민 씨가 눈물 흘린 이유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허경민 씨로부터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허씨의 아버지, 故 허창두 선생의 훈장 수여와 이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부친 허창두 선생은 1928년 일제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광주학생운동’ 지도자였다. 이후 학생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 당하는 등 허창두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다가 1977년 일본 땅에서 생을 마친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2022년 9월 6일 그 공을 인정하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하니, 이 훈장은 굴곡진 허창두 선생과 그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미였다.


하지만 치유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4년 12월 3일, 국가유공자 증서에 기입된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 수괴로 등장한 것이다.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받은 국가유공자 증서가 내란 수괴에게 받았다는 자괴감에 허경민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느껴야 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 증서를 남에게 보여 주기 부끄럽다. 차라리 갖다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한 허경민 씨의 심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훈장에서 ‘내란 수괴’이름을 지워 달라. 보훈부의 답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이름으로 받은 훈장을 볼 때마다 창피하다.”던 허경민 씨가 마침내 행동에 나선 때는 2025년 9월 5일의 일이었다. 국가보훈부 앞으로 ‘국가유공자 증서 기재 수여자 성명 변경(재발급)’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허씨는 “아버지 허창두 선생은 평생 독립운동 정신과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해 오셨는데 내란 수괴의 이름으로 된 증서를 받아 보관하는 것은 후손된 도리가 아니기에 너무 괴롭다.”며 ‘윤석열의 이름을 훈장에서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 대안도 제시했다. 국가유공자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특정 대통령의 이름 대신 수여자를 <대한민국 대통령> 명의로 바꿔 재발급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민원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어떤 답변을 내 놨을까. 민원 제기후 5일만에 돌아온 답변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2025년 9월 10일, 국가보훈부는 ‘현행 법령상 불가능하다’는 회신문을 보내왔다고 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에 따라 대통령 명의로 발급되며, 따라서 대통령 이름 대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수정후 재발급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회신이 아닐 수 없다.

촛불과 응원봉으로 내란에 맞서 그 수괴를 탄핵, 파면시킨 시대 정신에도 걸맞지 않는 판단이었다. 현행 법률상 어쩔 수 없다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 정도는 가능한 일이 아닐까. 허경민 씨의 요구는, 비단 한 사람의 무리한 요구라고 볼 수 없다.


비슷한 전례도 있었다.

2025년 7월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 시절 훈장 수여를 거부했던 사례를 전수조사하고, 원하는 경우 재수훈 여부를 검토할 것”을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시한 바 있다. 이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허경민 씨가 요구하는 <국가유공자 증서 기재 수여자 성명 변경(재발급)> 민원 역시 현행 법률에서는 불가하다지만,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국가보훈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법안 개정에 나서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예우”라는 국가 철학을 실질적으로 구현하여 독립유공자 후손이 자랑스럽게 여길 훈장을 수여해 달라는 요구를 무리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의 태도 변화를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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