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연민 사이에서 부모로서 느낀 감정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첫 주말, 둘째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다른 반에 있던 문제아가 우리 반으로 온대. 그래서 회장 엄마가 학부모들 연락처를 모으고 있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학부모 연락처를 모은다는 것도 이상했고, 다른 반 학생이 반을 옮긴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둘째가 말했다.
"그 애가 초등학교 때도 유명한 문제아였거든. 말썽을 많이 일으켜서 벌점이 80점이나 돼서 반을 옮긴대. 우리 반이 분위기 좋고 다른 반 선생님들도 부러워하는 반이라서 우리 반으로 온대. 그 반 담임쌤도 한번 바뀌었어."
도대체 어떤 행동을 했기에 그랬을까.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새 아내는 전화번호를 전달했고,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모인 단톡방이 개설됐다. 회장 엄마의 주도로 몇몇 학부모들이 월요일에 학교에 찾아갈 계획이라는 것까지만 들었다.
월요일 출근해서도 그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무슨 잘못을 했던 걸까. 반을 옮긴다고 그 아이의 행동이 바뀔까. 그 반 아이들은 벗어나겠지만 우리 아들이나 다른 친구들은 똑같이 힘들어질 텐데, 반을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초중등교육법에는 학급교체에 대한 내용이 없는 듯했다. 다만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학급교체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단, 학교 자체적으로는 할 수 없고 교육청의 결정에 따르는 듯 보였다. 그 폭력이라는 범위도 넓어서 단순히 때리고 다치는 것만 해당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글이나 기사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폭력이나 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 학생 시절에도 있었고, 우리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에도 분명 있었던 일들이다. 시대가 변하며 지금은 직접적인 체벌이나 퇴학보다는 피해학생의 관점에서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일단 가해학생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 건, 학급교체가 불러올 새로운 피해자의 발생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걱정하고 아끼는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가 궁금해졌다.
예전 같으면 "절대 그 애 곁에 가지 마", "말도 걸지 말고" 뭐 이런 말을 했을 법하다. 그런데 문득 내 중학교 시절의 사건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초여름이었다. 등교 준비를 하며 뉴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 ○○중학교 ○군이 살인 미수 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라는 소식이 나왔다. 화면에 잡힌 그 가해자를 보며 "어?!"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갑내기였고, 무엇보다 그 가해자가 입고 있던 운동복은 딱 한 사람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앞뒤 자리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시하고 이상한 아이라고 치부했던 바로 그 친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등교하고 보니 온통 그 이야기였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은 훌쩍훌쩍 울고 계셨고 다른 한 선생님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계셨다. '아, 그 녀석이 맞는구나.' 그날 이후 한동안 그 친구에 대한 언론의 기사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형이 한 명 있었다. 그 형은 공부도 잘했고 주변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국내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해 있는 말 그대로 부모 입장에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반면 그 친구는 그 반대로 성적은 언제나 하위권이었다. 가끔 정학도 받아서 얼차려를 받는 장면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둘째 아들 학교의 일과 이 친구의 일이 묘하게 겹쳤다. '행여나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외로웠기에 이상한 행동도 하고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도 펑펑 써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가시지 않아 해방구를 찾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학급교체로 온 그 아이도 외로웠던 건 아니었을까. 외로워서, 나를 봐달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바라봐 달라고 그런 건 아니었을까. 그 외로움을 과연 벌점과 처벌로 달래줄 수는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신경이 쓰였다.
퇴근하고 집에 와 저녁을 먹으며 아내와 둘째에게 별다른 일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엄마들 몇 명이 학교에 다녀왔는데, 교육청에서 학급을 교체하라고 지시한 거라서 학교에서는 그 지시를 받아야만 한대. 전학이랑 똑같은 개념이래. 대신 부담임을 인성부장 선생님으로 바꾸고 잘 관찰하고 지도하겠대. 그 정도. 그 아이 부모가 노력을 해줘야 할 텐데, 더 지켜봐야지 뭐."
"오늘은 첫날이라 그런지 별일은 없었어."
예상대로의 결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개운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어떤 제도로써 예방을 하고 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100%라는 건 없다. 가뜩이나 예민해져 가는 중학생 시절의 이런 경험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기대를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그냥 같은 학생일 뿐이야. 다만 그 친구가 너희 반으로 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잘해보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 잘 지켜보자.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말고. 단, 너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면 거기에 엮이지 말고 일단 자리를 피하자. 그리고 어른들께 도움을 요청하자."
기대는 하지만 솔직히 이런 말 밖에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은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이라는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 그 방법과 양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부디 이 친구가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새롭게 마음을 잡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른으로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 내몰렸을(추측이 맞다면) 그 상황을 만드는 것에 미안함과 안타까움, 입으로는 서로를 있는 그래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게 되는 현실, 그리고 무언지 모를 수십 가지의 감정들이 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