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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Sep 25. 2023

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글

고등학교때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매주 독후감을 심사해서 상을 줬는데, 자주 상을 탔었다. 책을 읽는 순간도 즐거웠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을, 생각을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 재밌었다. 머릿속에 흩뿌려져 있는 활자뭉치들을 보기 좋게 배열하는 느낌이었다. 방정리를 하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과 비슷한 감각이었던 것 같다.


삶이 만족스러우면 글쓰기에 소원해진다. 내가 글쓰기에 탐닉했던 고등학교때와, 수험공부시기는 내 삶의 족적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들이었다.



지금에야 농담으로 고등학교 때가 즐거웠다고 회상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열심히 끄집어내면 고등학교 때의 나는 결핍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당시에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건강에 대한 걱정, 외모적인 부분에서의 불만족, 부족한 사회성..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스스로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매일 시를 썼다. 졸업 시기에는 시로 가득한 노트가 2권이 있었다. 주제는 다양했다. 그날의 날씨에 대해서도 쓰고, 특정 사물을 정해서 창의력을 더해 글을 써보기도 하고. 친구들도 나의 시 쓰기에 동참해서 내 노트에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으로 시를 쓰기도 했다. 서로의 시를 시평 해주기도 하고. 한 친구가 항상 내 시에 평점을 매겨줬었는데, 고3 때에 내가 참 귀찮게 했구나 싶다. (이 친구는 현재 로스쿨에 가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참 재밌게 고3을 보냈구나 싶은데, 사실 시의 반절 정도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주 내용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한 번은 내 시집을 친구(평점을 매겨주던 친구)가 가져가서 자기 반 여자아이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쓴 시를 보고 그 애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게 기억이 난다.


이 시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 폐기 처분되었다. 흑역사라고 생각해서 다 버렸다. 내가 수험기간에 열심히 썼던 브런치 글들을 전부 발행취소한 것들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내가 불안정한 시기에 썼던 글들을, 안정을 찾은 시기에 보게 되면 너무나도 부끄럽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 버리고 싶어 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나는 다시 불안정한 시기로 접어든 것 같다. 흐흐.


수험생 때, 마지막 1 유예 시기에는 정말 열심히 글을 썼었다. 매일 2시간씩은 브런치에 시간을 썼다. 1시간은 글을 쓰고, 1시간은 발행한 글을 검수하면서 퇴고하는 작업을 했다. 이때는 1유생(시험 합격까지 1과목만 더 합격하면 되는 상태)이다 보니 시간은 많은데, 놀 친구는 별로 없어서 하루에 3시간씩 헬스장에서 살고 2시간을 글을 쓰는데 쓰는 활력적인 삶이 가능했다. 이 시기가 시기적으로는 가장 여유로웠던 시기였는데, 1유생이라서 시험 합격은 확정된 것과 다름없어 진로라는 측면에서 안정된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4시간씩만 공부하면 남는 시간은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시간도 여유로웠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하면 이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것 같다. 


겉으로는 이랬지만 실상은 참 힘들었던 시기였다. 살면서 제일 불안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심각한 안구건조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든 수준이었고, 말 그대로 정말 앞길이 막막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나 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잘 이겨냈지만 실제로 1년 차 때에는 많이 힘들었으니 기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외모 콤플렉스도 극복했고, 건강도 여전히 불안 불안하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한 상태이고, 안구건조증도 신경만 잘 써주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삶이 조금 힘들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지금의 내 삶은 어린 시절의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살아오면서 다소 아쉬운 시간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 모든 실수들이 지금의 내가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양분이 되었다고.. 


회사는 힘들고 휴가는 잘렸지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정신 차리고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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