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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Apr 25. 2021

모르는 형이랑 새벽에 산책하기

D - 62, 모의고사[2]



모의고사 때 타이머로 시간을 재야 해서 시간 인증이 없다. 3시간 37분. 앞글자 복습.

또 잠을 못 잤다. 더운 건 아닌데 땀이 너무 난다. 1시간을 누워있다가 포기하고 일어났다. 공부나 하자 싶어 책상에 앉았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그냥 학교 커뮤니티를 켰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정말 할 짓 없는 사람들만 모여있겠구나 싶었다. 지금 나처럼. 멍하니 게시글들을 둘러보다가 글을 하나 작성했다. 


댓글이 6개 달렸다. '왜 이렇게 많이 깨어 있냐?' 답글을 달았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자기 혼자서만 댓글을 5개 달았다고 했다. 깜빡 속아 넘어갔다. 나더러 귀엽다면서 오픈 카톡을 하자고 했다. 댓글에 링크를 올렸다. 


5명과 오픈 채팅방이 생겼다. 한 명은 이상한 소리만 하길래 반응을 제대로 안 해줬더니 채팅방을 나갔다. 

다른 한 명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은 세명은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한 명은 이제 CPA를 준비하려 한다며 내게 조언을 구했다. 의대를 가고 싶어서 수능을 2번을 더 봤는데, 모의고사에서는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수능에서 매번 죽을 쒔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직 수능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전혀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미련을 남기고 오면 집중도 잘 안될 것 같으니 한번 더 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서로 훈훈하게 응원을 나누고 헤어졌다.


한 명은 그냥 직장인인데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집값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권이 바뀌면 집값이 조금은 잡힐 거라고 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대화를 종료했다.


한 명은 나와 같은 감사 1유예생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았고, 이과생이라고 했다. 시험에 붙은 뒤 회계법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이 생각보다도 더 고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 같은 처지의 사람이다 보니 이야기가 제법 잘 통했다. 회계사가 되고 나서의 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3월부터 공부를 시작하셨는지 이제 인강을 다 들으셨다고 했다. 뭐, 잘하시겠지. 서로 공부 열심히 하자는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이게 하다 보니 참 재밌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조금 더 해보기로 했다. 


곧 새로운 채팅방이 생겼다. 학교 근처를 한 바퀴 뛰자는 글이었는데, 산책으로 타협했다. 따릉이를 타고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와 키가 비슷한 형님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형은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지금이 아주 바쁜 시기인데, 이 형의 표현에 따르면 홍길동처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당장 어제까지도 제주도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는데, ZOOM으로 하면 될 것을 나이 많은 노땅들이 애먼 사람 고생시킨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조교 일을 하면서 학부생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는 것 같았다.


학교와 이태원이 가까워서 정말 좋았는데(편입하셨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집에서 혼자 유튜브나 보고 있단다. 대화를 하면서 주기적으로 결혼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대학원생이다 보니 만나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참 애잔한 사람이었다. 학교 소개팅 앱에서 새로운 사람을 매칭해 줄 시간이라며 웃으며 떠나가셨다. 이번에는 꼭 상대방이 대화 신청을 수락해주었으면 좋겠네..


..아침 6시네. 현타가 진하게 왔다. 공부나 할걸.


집에 돌아와서 5시간을 잤다.




일어나서는 비대면 예배를 틀어놓고 밥을 먹었다. 대저토마토 3개와 닭가슴살, 먹다 남은 현미밥과 김을 먹었다. 팔굽혀펴기를 300개 하고, 짐을 싸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공부를 하다가 친구와 모의고사 리뷰를 했다. 이후 열람실에서 공부를 잠시 하고 학원으로 갔다. 학원에서는 채점된 답안지를 나눠줬다. 73.3점. 생각보다 높은 점수였다. 채점을 정말 후하게 한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걸 알아도 점수가 높으니 기분이 좋았다. 24만 원으로 자신감을 산 것 같은 느낌.


시험은 작년 모의고사랑 형태가 비슷했다. 잠을 덜 자서 그런지 몸이 안 좋아 후다닥 풀고 나왔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곧 친구가 뒤따라 나왔다.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이제 정말 시험이 2달 남았다. 슬슬 만사가 귀찮다. 이제는 진짜 공부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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