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윗_ 정희
노란 장판(구질구질한 옛 감성 가난한 달동네든 부잣집이든 옛날 장판이 노란색임에서 유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 그러나 많고 많은 노란 장판 얘기 중에 막상 또 취향의 글은 찾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오랜 취향 가뭄 끝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고, 한 마리의 나풀나풀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든 소설이 바로 김다윗의 <정희>였다.
줄거리
40살의 목수, 주인공 최윤은 이렇다 할 거처도, 가족도 없이 없이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헤매는 독신 나그네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보니 퇴근길에 오비집 ‘희’에 들려 마담 윤 마담과 수다를 떠는 게 최윤의 몇 안 되는 낙이다.
어느 날, 최윤은 ‘희’에 새로 온 아름다운 청년 주인수 정희에게 첫눈에 반한다. 늦은 나이에 불쑥 찾아온 설렘. 혼란스러운 윤은 대범하게 굴지 못하고 그저 희의 주변을 맴돈다.
나한테 왜 잘해줘요?
한편, 희는 집창촌의 기둥서방이었던 애인 마운기로부터 도망친 상태였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댔다. 모를 수 없는 윤의 호의와 호감은 평생 당하고 퍼주기만 했던 희의 ‘특별한’ 인생에 매우 특별한, 최초의 경험이 된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겁이 났는지도 모르지. 애가 증오하는 아버지가 될까 봐. 그래서 점점 남들 같은 삶에는 욕심내지 않게 되었는지도.
그런데 너하고는…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다.
매춘부 홀어미와 무심한 애인 마운기로부터 사랑을 찾아 떠나 온 외로운 청년 정희.
폭력적인 홀아비가 쳐놓은 허술한 울타리에 갇혀 희망도 꿈도 없이 어른으로 자라난 최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은 오랜 외로움에 군불을 때듯 서로를 품는다.
감상
까르르 넘어가는 남녀의 웃음소리.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방과 홀을 오가며 서빙하는 정희. 윤 마담과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저를 의식하는 정희를 눈으로 좇는 최윤까지. 한 줄 한 줄 내려 읽는 순간마다 눈앞에서 최윤과 정희가 아른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새 가본 적도 없는 오비집 ’ 희‘의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런 생생한 묘사에 한 번, 선명한 캐릭터 빌딩에 두 번, 총 3권이란 탁월한 분량 조절에 세 번, 화려하지 않아 더 할나위 없이 좋았던 엔딩에 네 번 감탄했다.
작가 언니 언니 날 가져요.
그러나 외전(인지 모를 외전)은 지루한 감이 있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급으로 끝도 없이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거야 말로 뇌절. 특히, 주인수 정희의 전남친 이한수 편은 ‘내가 도대체 왜 이걸 보고 있지?’ , ‘왜 이런 고역을 사서 하고 있지?’라는 회의를 지울 수 없을 만큼 안타까웠다.
어떤 이유와 그 어떤 형태를 갖춘 감정이었던들 두 사람의 과거 청산은 주인공 최윤의 순정을 기만하고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희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윤이의 강물 같은 다정함이 의미 없이 소비되는 것 같았다. 희의 과거 상대는 지질하고 비겁한 한수가 아닌, 마운기까지였으면 좋았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
마운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
지켜야 할 게 있은 사람은 삶을 함부로 살지 못하는 법이다. 밑바닥을 앞장서 구르던 막장 인생 대표주자, 마쪽이 운기는 사랑을 하고 착실하게 살길 결심했다. 갱생 불가일 줄 알았던 운기에게 짝을 찾아준 작가님의 센스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회를 먹을 때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회칼을 잡 운기의 손길이 떠올라 웃기 시작한 뒤로 벌써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