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도시 삿포로
계획도시는 흔히 인공적이고 획일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적절한 도시 디자인과 운영을 통해 계획도시도 고유한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삿포로의 사례가 보여준다. 이 글은 삿포로의 도시계획 요소들이 어떻게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전통적 도시계획은 7세기 나라(奈良)와 헤이안쿄(平安京, 현 교토)에서 시작되었으며, 당나라 장안(長安)을 모델로 한 격자형 구조를 채택했다. 근대적 도시계획은 메이지 시대(1868-1912)에 본격화되었는데, 1872년 긴자(銀座) 지구의 재개발이 그 시발점이었다. 영국인 건축가 토마스 워터스의 서양식 벽돌 건물 거리 조성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 사례였다.
삿포로는 긴자에 이은 일본의 두 번째 주요 근대 도시계획 프로젝트였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백지상태'에서 계획된 최초의 근대 도시였다. 이는 기존 도시의 재개발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고 건설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1. 19세기 계획도시 삿포로의 태동
메이지 정부의 근대화 프로젝트 중에서도 홋카이도 개발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1869년 설립된 '홋카이도개척사'는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닌, 일본 최초의 근대적 신도시 건설을 위한 시발점이었다. 1867년 하코다테 전쟁 이후, 북방 방위의 전략적 거점으로서 삿포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고 북방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했다. 이는 단순한 도시 건설을 넘어 근대 국가 형성의 핵심 프로젝트였다.
개발 초기에 미국의 선진 농업 기술을 도입하여 배수(Drainage)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습지였던 지역을 비옥한 농경지로 전환했다. 윌리엄 클락(William S. Clark)과 같은 미국인 기술고문들의 자문을 받아 진행된 이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삿포로 농학교(현 홋카이도대학)의 설립은 농업 기술 혁신의 중심지로서 삿포로의 위상을 확립했다. 이는 단순한 교육기관의 설립을 넘어 근대적 농업도시로서 삿포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도시의 산업 구조도 점차 다각화되었다. 이시카리 탄전 개발을 통한 광업이 발달했으며, 오타루 항을 중심으로 한 수산업도 성장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삿포로 맥주로 대표되는 주류 산업의 발전이다. 1876년 설립된 삿포로 맥주 양조장은 오늘날까지 도시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산업의 다각화는 개척지 삿포로를 근대 산업도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특히 맥주 산업은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 계획도시 삿포로의 공간 구조
삿포로의 도시계획이 본격화된 것은 1871년이었다. 도시계획가 이와무라 미치토시가 수립한 격자형 도시계획은 미국 워싱턴 D.C.의 영향을 받았으며, 넓은 도로와 정방형 블록을 특징으로 했다. 계획적인 이주 정책의 시행으로 인구가 급증했고, 1889년에는 정식으로 시정이 시행되었다.
도시의 중심에는 오도리 공원이 자리 잡았다. 1880년에야 철도가 개통되었고 본토 철도망과의 연결이 제한적이었기에, 삿포로는 철도보다는 공원을 중심으로 한 도시계획이 발달했다. 특히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한 도시 설계는 북방 개척지의 혹한이라는 자연조건과 신도시 개발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동시에 해결하려 한 시도였다. 도시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대규모 공원은 겨울철 방풍림 역할과 함께 도시민의 여가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이후 삿포로 도시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삿포로의 도시 경관은 전통적인 일본 도시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격자형 도로망은 대로와 중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일본 도시의 특징인 좁은 골목길이 거의 없다. 이러한 도시구조는 겨울철 제설 작업을 용이하게 하고 도시의 통풍을 개선하는 등 북방 도시의 기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건축양식에서도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일본 가옥 대신, 서구식 건축양식이 도입되었으며, 특히 미국 중서부 도시의 주택 스타일과 유사성을 보인다. 이는 혹한의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현관에 방한실을 두고 지하실을 갖추는 등 혹한기 생활을 고려한 설계는 이후 홋카이도 전역의 주택 건축에 영향을 미쳤다.
도시의 전체적인 구조 역시 전형적인 미국식 도시의 특징을 따랐다.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한 공원녹지 시스템이 도시의 골격을 이루며, 도심(Downtown)과 교외(Suburb)의 뚜렷한 구분도 미국 도시의 특징을 반영한다. 이러한 구조는 도시가 성장하면서도 중심부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교외 주거지의 쾌적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삿포로에게 다행이었다. 이로 인해 전후 복구 과정에서도 기존의 도시구조가 대체로 유지될 수 있었고, 이는 삿포로가 계획도시로서의 원형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3. 도시 디자인과 문화의 창출
계획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삿포로는 도시 디자인을 통해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문화 창출의 중심에는 오도리 공원이 있다. 폭 105m, 길이 1.5km에 달하는 이 광대한 선형 공원은 도시 문화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이곳에서는 삿포로 눈축제와 맥주축제 등 계절별 축제가 개최되며, 시민들의 일상적 문화활동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공원을 둘러싼 상업・문화시설의 집적은 도시의 문화적 활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삿포로만의 독특한 가로 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격자형 가로망과 넓은 도로는 단순한 이동 공간을 넘어 문화창출의 무대가 되었다. 눈이 쌓여도 통행이 가능한 폭넓은 도로와 보행자를 위한 넓은 보도, 건물 전면의 여유 공간은 활발한 거리 문화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혹한의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지하도 네트워크와 건물 간 연결 통로(스카이웨이)는 겨울철에도 활발한 도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도시 디자인은 다양한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오도리 공원의 눈축제가 도시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면, 여름철 맥주축제는 도시의 산업문화를 반영한다. 대규모 축제 외에도, 도시의 주요 공원들에서는 다양한 지역 축제들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나카지마공원은 오도리 공원과 함께 삿포로의 대표적인 도심 공원으로, 계절별 먹거리 축제 등 다양한 시민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공공공간의 활발한 활용은 도시의 일상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넓은 도로와 건물 전면 공간은 카페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지하도 네트워크는 특색 있는 식당가와 상업 문화를 만들어냈다. 혹한에 대응하는 실내・지하 공공공간의 활용, 겨울철 스포츠와 레저문화의 발달, 도시농업과 결합된 주거문화의 발전 등 혁신적인 도시생활양식도 형성되었다.
삿포로의 사례는 계획도시도 풍부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시설이 단순한 기능적 역할을 넘어 문화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삿포로를 통해 입증되었다. 오도리 공원과 나카지마공원 같은 공공공간의 전략적 배치, 기후에 대응하는 혁신적 도시 디자인,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된 다양한 문화활동은 도시계획이 어떻게 문화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미국식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발전시킨 삿포로의 경험은, 도시계획과 문화창출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