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상권 전환을 위한 세 가지 과제
소상공인의 진정한 생태계는 상권이다. 제조업과 첨단산업이 클러스터, 공급망, 혁신 시스템으로 생태계가 구성된다면, 소상공인에게는 상권이 가장 중요한 생태계다. 소상공인의 대다수 경제 활동이 도소매업, 외식업, 숙박업, 개인 서비스업 등 다양한 형태로 상권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소상공인을 전국 단위 산업으로 인식하여 개별 소상공인 지원에만 집중해 왔다. 상권이라는 생태계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접근이 부족했던 것이다. 상권은 단순히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소상공인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의 핵심 요소이다.
그동안 상권 활성화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태계 차원에서 상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대안 도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설 현대화, 축제와 공연, 청년몰 등 쇠락한 상권의 매출을 높이는 단기적 지원에 치중해 왔을 뿐, 로컬 브랜딩, 콘텐츠 사업화 기술 공급, 신규 상인 유치, 건축 디자인 지원 등 상권 전체의 콘텐츠 평가와 보완은 상대적으로 간과됐다.
상권 정책의 혁신을 위해서는 두 가지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상권 경계의 확장이다. 상권이 생활권으로 확장되면서 단순히 상점 밀집도만으로 상권을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SNS와 지도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서울 상권을 성수동, 망원동, 연남동 등 동 단위로 인식하고 '여행'한다.
둘째는 상권의 이원화 현상이다. 상권 양극화의 한편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일반 상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상권이 존재한다. 이러한 구분은 소상공인의 성격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전통적인 물건 판매 중심의 일반 소상공인과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소상공인으로 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1. 현실적 상권 단위 설정
크리에이터 상권 전환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현실적 상권 단위 설정이다. 현재 상권 정책은 일정한 면적 내 점포와 업종의 밀집도를 기준으로 상권을 구획하지만, 이 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다. 우리나라 도시의 특성상 주거지역에도 상업 시설이 쉽게 들어서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저층 지역이 상권화되었다. 게다가 SNS와 위치 기반 서비스의 발달로 소비자들의 이동이 생활권 단위로 확장되면서, 상점 밀집도만으로 상권을 구획하는 방식은 점차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실질적 생활권 단위인 읍면동을 기준으로 상권을 정의하고, 소상공인 지원 또한 읍면동 단위로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상권의 물리적 경계를 확장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와 소상공인이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생활 단위에서 자생적 상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상인 커뮤니티 지원 방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읍면동 단위의 모든 소상공인을 하나의 상인회로 묶는 것보다는, 기존 상인회를 포함한 다양한 소상공인 커뮤니티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원 대상 활동도 동네 축제, 로컬 메이커스페이스 운영, 동네 관광 지원 등 생활권 전체를 아우르는 상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해, 지역 내 자발적인 상권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2. 신도시 상권의 체계적 관리
크리에이터 상권 전환을 위한 두 번째 과제는 신도시 상권의 체계적 관리다. 현재 신도시와 대로변 상권은 심각한 공실률 위기를 겪고 있자. 공급 과잉과 온라인 쇼핑 증가, 소비 형태 변화가 겹치며 상가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3기 신도시 건설과 1기 신도시 재건축으로 상가는 계속 공급되는데, 세종시와 서울 마곡단지와 같은 성장 지역조차 절반에 가까운 상가가 비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획일적인 건물 설계, 보행 환경 미비, 상가 건물 간 연계성 부족 등 물리적 환경이 매력적인 상권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신도시 상가 공실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도 변경과 기업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상권 관리를 위해서는 '유통'과 '콘텐츠'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통 중심 상권에는 공급 축소와 업종 다양화를, 잠재력 있는 지역은 크리에이터 상권으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가 공급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도시계획 단계에서 상권 영향 평가 의무화, 기존 상권을 고려한 입지 제한, 상가 면적 총량 관리제 등을 도입해 공급 과잉을 막아야 한다. 잠재력 있는 구역은 보행 환경 개선과 용도 규제 완화를 통해 문화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크리에이터 상권으로 전환해야 한다.
3. 소멸 지역 거점 도심의 육성
크리에이터 상권 전환을 위한 세 번째 과제는 소멸 지역 거점 도심의 육성이다. 지역 소멸과 상권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상권 쇠퇴가 지역 소멸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소멸 지역의 거점 도심은 지역 회생의 마지막 기회다. 거점 도심은 군청 소재지나 읍면 소재지의 중심 상권으로, 과거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주요 관광지로 바로 이동하면서 거점 도심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행히 많은 거점 도심은 전통 노포와 청년 상점이 공존하고, 골목길과 구축 건물이 풍부해 크리에이터 상권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실제로 독립서점, 창작공방 등 문화 콘텐츠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거점 도심은 단순 행정 중심지를 넘어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기존 도시재생이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했다면, 거점 도심 육성은 로컬 브랜드 생태계 구축을 명확히 추구한다. 기존 상권 활성화가 시설 현대화와 마케팅 등 환경 개선에 치중했다면, 거점 도심 육성은 지역 자원 특화, 신규 콘텐츠 공급, 로컬 브랜드 생태계 구축 등 상권의 콘텐츠 생산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거점 도심 육성은 특히 기존 건축물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하는 도시재생에서 시작해야 한다.
거점 도심 육성 모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크리에이터가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서울 성수동, 부산 전포동, 전주 한옥마을, 경주 황남동이 대표적 사례다. 둘째는 지역 자원에 특화된 소규모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고창 상하농원과 홍성 홍동마을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셋째는 전통시장 육성으로, 서울 망원시장이나 부산 국제시장이 로컬 푸드와 공동체 문화를 결합한 현대적 혁신 사례들이다.
이러한 거점 도심 육성 전략은 단순 상권 활성화를 넘어 지역의 자생적 창조 역량을 강화하고 산업 개발 능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로컬 메이커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소멸 지역의 생활산업과 리테일 산업을 지원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상권의 크리에이터 모델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읍면동 단위의 실질적 생활권을 기반으로 한 상권 지원, 신도시 상가의 체계적 관리, 소멸 위기 지역의 거점 도심 육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킨다. 상권을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닌 지역의 생태계이자 문화 생산의 거점으로 보는 것이다. 크리에이터 상권은 신도시와 거점 도심 모두에 유효한 전략이다. 이제 정책의 초점을 개별 소상공인 지원에서 상권 생태계 혁신으로 옮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