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상권정책, 이제는 행정동 단위로 전환할 때
소상공인 미래에 중요한 질문이다. 정부는 왜 소상공인 지원을 디지털 전환과 금융 부담 완화에 집중할까? 소상공인의 실제 생태계인 상권에는 왜 손을 놓고 있을까?
서울시의 사례를 보자. 서울시가 다양한 상권 지원 사업을 하지만, 서울시의 정책 기조도 디지털 전환과 재정 지원이다. 상권 경쟁력 강화로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권을 지원하면서도 상권을 포기하는 모순, 이 모순이 지속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전통적인 상권의 소멸'에 있다. 상권을 생활권의 특정 지역에 집적된 상업지구로 정의한다면, 서울에서 상권은 사라졌다. 동네 전체가 상권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은 1종 전용주거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상업시설 운영이 허용되며, 심지어 1종 전용주거지역에서도 근린생활시설(150㎡ 이하 상점, 음식점 등)은 설치할 수 있다. 상업시설이 불가능한 건물은 아파트 단지 내 공동주택(주거동)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도시구조 때문에 서울의 상권은 전통적인 '중심상업지구' 개념을 넘어서서, 생활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상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 상점가, 골목상권까지 상권의 이름은 늘어났지만, 상권 간 경계는 모호하고 실제 운영방식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정작 상권정책은 여전히 몇 개의 '지정된 상권'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지원 방식에 머물러 있다. 몇몇 시장과 거리만을 '지정 상권'으로 묶고 유형별로 지원하는 방식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민의 소비와 상점의 입지는 생활권 단위로 퍼져 있는데, 행정은 여전히 유형별 상권 관리에 갇혀 있다.
대안은 무엇일까? 상권을 일정 지역으로 제한하는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동네 전체의 상권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여, 상권정책의 단위를 '유형'이 아니라 '공간', 그것도 가장 기초적인 '행정동 단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대부분 행정서비스는 이미 '동' 단위를 기본으로 작동하고 있다. 주민자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마을계획단, 돌봄조직 등이 모두 동 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서울시 역시 5분 생활권, 15분 도시 구상을 추진하며 생활권 단위 행정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상권만은 여전히 전통시장 중심, 거리 중심, 유형 중심으로 관리되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 한 행정동 안에는 전통시장, 프랜차이즈 거리, 청년 점포, 공방 거리 등이 혼재되어 있고, 시민의 소비 흐름도 그것들을 하나의 상권처럼 이용한다. 그런데 행정은 각각 다른 사업, 다른 조직, 다른 기준으로 이들을 분절해 지원하고 있다. 이제는 생활권 단위에서 상권을 통합적으로 보고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행정동 단위 소상공인 지원의 핵심은 통계 기반 관리체계 구축과 함께, 현재 전국 단위로 시행되는 소상공인 지원 사업의 일부를 행정동 단위 지원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기획하는 금융지원, 디지털화, 창업보육 등은 여전히 전국적 기준으로 유지하되, 지역 맥락이 중요한 사업들은 행정동 단위에서 판단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간 지원(임대료 지원, 빈 점포 활용), 마케팅 지원(지역축제, 골목상권 홍보), 상권 환경 개선(가로 정비, 주차 문제 해결), 배달 플랫폼 공동 대응, 상권 간 연결성 강화 등은 행정동 단위 지원이 더 효과적이다. 이런 사업들은 동네별 상권 특성, 주민 수요, 지역 자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시설 밀도, 업종 구성, 창업·폐업 통계, 공실률, 유동인구 등을 행정동 단위로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이런 맞춤형 지원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다. 중앙과 광역에서 기획한 정책이 실제로 지역에 '맞춤형'으로 실행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자치구는 정책 수요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며 동 단위의 데이터를 근거로 상권 기획 사업을 조율할 수 있게 된다.
통계 기반 관리체계와 함께, 행정동 단위로 상인회 연합체 또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는 기존의 전통시장 상인회, 상점가 운영협의회, 골목상권 네트워크, 청년 창업 단체 등을 해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연합하여 구성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동별로 '상권 거버넌스 협의체' 같은 느슨한 연합체를 만들어, 기존 조직들의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행정동에 전통시장 상인회, 골목상권 네트워크, 청년 창업 단체가 각각 존재한다면, 이들의 대표가 모여 동 단위의 상권 이슈를 논의하는 정례 회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협의체는 법인격을 갖춘 단일 조직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치구와 서울시가 "이 동네의 상권과 소상공인에 대해 협의할 창구가 어디인가"를 행정동 중심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상권 지원 사업 계획 수립 시 의견 수렴, 지역별 상권 현안 논의, 동 단위 상권 데이터 해석과 정책 수요 발굴 등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특히 앞서 제시한 공간 지원, 마케팅 지원, 상권 환경 개선, 배달 플랫폼 공동 대응 등 행정동 단위 맞춤형 지원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 방안을 논의하는 데 이 협의체가 유용할 것이다. 통계 데이터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현장의 미묘한 맥락과 상인들의 실제 수요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다만 이는 의무적 구성보다는 지역 여건에 따른 선택적 옵션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상인 조직이 활발한 동네에서는 이런 협의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상인 조직 자체가 취약한 지역에서는 무리하게 구성할 필요가 없다. 우선은 행정동 단위 데이터 관리와 맞춤형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협의체는 필요와 여건에 따라 점진적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시는 이제 상권정책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때다. 전통시장 중심의 유형별 지원 구조에서 벗어나, 행정동 단위로 소상공인과 상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거버넌스 구조의 전환이다.
이 방식은 행정의 효율성과 상권의 자율성을 함께 살린다. 행정동 단위로 상권을 통합 관리하면, 공공은 중복 지원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고, 데이터 기반으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예산 집행은 여전히 자치구와 서울시가 하되, 데이터는 행정동 단위로 통합되고, 사업의 실효성은 생활권 단위에서 검토된다.
무엇보다 이 체계는 단기 지원 후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가 사라지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행정동 단위로 상권 데이터를 축적하고, 상인 조직과 협의 구조를 유지하면, 사업 종료 후에도 경험과 자원이 지역에 남아 상권의 지속성과 자생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도시재생, 공동체 지원, 문화지구 조성, 생활SOC 등 상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다양한 소지역 정책들과의 통합적 연계도 가능해진다. 더 이상 상권만 따로, 공동체만 따로, 문화는 또 따로가 아니라, 생활권 단위에서 상권을 중심으로 한 장기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누구를 도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공간 단위가 바로 행정동이다. 서울시 상권정책은 이제 그 단위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