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 담론에서는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은 거대 메트로폴리스를 단일체로 분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도시계획가와 경제학자들은 광역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혁신의 기본 단위로 설정하고, 정책 입안자들은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 계획을 수립한다. 최근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밀어붙여, 지역이 '메가시티'라는 초대형 행정구역을 만들어야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거대 담론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세계적인 창업가들이 모이고,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하며, 첨단 기술이 발명되는 공간은 메가시티도, 메트로폴리탄 지역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은 '동네'다.
1961년 제인 제이콥스는 그녀의 역작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이미 동네 단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도시의 진정한 활력은 대규모 도시계획이 아닌, 다양한 기능이 혼합된 동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복합 용도, 작은 블록,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의 혼합, 충분한 밀도라는 그녀의 네 가지 원칙은 모두 동네 단위의 도시 생태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이콥스의 통찰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학과 건축학은 수십 년간 동네라는 중간 단위를 간과해 왔다. 도시계획학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계획에, 건축학은 개별 건물의 설계에 집중했다. 도시라는 거대한 스케일과 건물이라는 미시적 스케일 사이에서, 실제 사람들의 삶과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동네라는 중간 스케일은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마치 숲(도시)과 나무(건물)만 보고, 실제 생태계가 작동하는 숲 속 작은 환경(동네)은 보지 못한 셈이다.
월스트리트를 생각해 보자.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글로벌 경제의 심장부라 불리는 이곳은 결국 맨해튼 남쪽의 작은 동네다. 샌드힐 로드는 어떤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의 상징적 장소지만, 실상은 팔로알토의 한 거리에 불과하다. 런던의 시티(스퀘어 마일)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지만 런던 전체 면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일본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인 시부야는 도쿄의 일부이며, 산업 중심은 더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보스턴의 켄달 스퀘어는 바이오테크 혁신의 글로벌 허브지만 실제로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동네다. 세계 각국의 혁신 생태계를 들여다보면, 그 핵심에는 항상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동네가 있다.
한국에서는 홍대, 성수동, 이태원 같은 동네들이 창의적 기업가들의 요람이 되어왔다. 이들 지역은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과 창의적 에너지가 집약된 생태계다.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브랜드들이 전국적, 때로는 글로벌 규모로 성장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테헤란밸리나 판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이 지역들 역시 결국은 강남구와 성남시의 일부에 불과한 작은 동네다. 판교는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규모의 공간이며, 테헤란밸리는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몇 개의 블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작 학계와 정책 입안자들은 '서울 혁신 생태계'라는 너무 큰 단위로만 접근하려 한다.
물론 동네 단위 혁신 생태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도시 체계의 일부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혁신 클러스터들은 대도시의 인프라, 인재 풀과 네트워크, 그리고 광역 교통망과 같은 도시 전체의 자원에 의존한다. 홍대나 성수동이 서울이라는 도시 체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실리콘밸리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라는 광역 도시권의 지원 없이는 그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서비스 산업의 대부분이 도시 내부에서 생산되고, 도시인의 생활반경이 점점 축소되는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는 일(職), 거주(住), 여가(樂)가 통합된 자족형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15분 도시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혁신 동네들은 단순히 대도시에 기대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고유한 문화적 가치와 지식을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내적 다양성과 자족성을 갖춘 이러한 동네들이 도시의 핵심 구성요소이다.
제조업도 동네 단위 생태계의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는 오랫동안 ‘본사는 서울, 연구개발센터는 수도권, 공장은 지방’이라는 지리적 분절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전국 단위의 분산 모델은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추진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기획과 생산, 창의와 실행 사이의 단절을 낳으며 진정한 혁신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이 되고 있다.
창의성과 혁신은 대면 접촉과 우연한 만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교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의 분절된 산업 구조에서는 기획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생산직 노동자들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하며, 서로의 현실과 지식을 공유할 기회가 극히 제한된다. 기획팀이 생산 현장의 실제 상황을 모르고, 생산팀은 제품 기획의 본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분절 구조의 문제는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전략과 대비된다. 테슬라의 성공 사례를 보라. 일론 머스크는 연구개발과 생산 과정의 긴밀한 통합을 중시해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에 엔지니어링팀과 생산라인을 함께 배치했다. 디자이너, 연구개발자, 엔지니어가 생산 현장과 직접 소통하며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도요타의 '현장주의(Genchi Genbutsu)' 철학 역시 본사 인력들이 공장을 자주 방문하여 현장의 실제 상황을 경험하고, 생산직 직원들과 함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접근법을 취한다. 그러나 한국의 '본사-연구소-공장' 분리 모델에서는 이러한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지리적 분절이 결국 사회적, 문화적 단절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의 본사 임원들과 지방 공단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완전히 다른 삶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소비하고, 다른 장소에서 여가를 즐기며, 다른 언어로 소통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통합적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탈산업화 사회에서 동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전의 산업사회에서는 대규모 공장 단지, 기업 본사 밀집 지역이 경제의 중심이었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 인프라가 경쟁력의 원천이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하며 생산과 소비의 공간을 명확히 구분했다.
그러나 탈산업화 사회에서는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첫째, 생산과 소비,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카페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집을 사무실로 쓰는 스타트업 창업자, 자신의 삶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일터와 생활공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주락(職住樂)' 통합이 가능한 복합적 생활공간으로서의 동네다.
둘째, 창의산업의 특성상 기업 간, 개인 간 교류와 협업이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우연한 만남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교차는 혁신의 원동력이다. 이런 교류는 도시 전체가 아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동네 단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셋째,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물리적 자본보다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무형 자본은 주로 동네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형성되고 축적된다. 특정 동네의 분위기, 정체성, 스토리는 그 자체로 브랜드 가치가 되어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성수동에서 탄생한' 패션 브랜드, '북촌에서 시작된' 전통 공예품, '판교에서 개발된' 콘텐츠가 프리미엄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혁신은 항상 가까운 곳,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당신은 동네 아닌 혁신 생태계를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