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도시의 새로운 단위, 크리에이터 타운
산업사회에서 크리에이터 사회로의 전환은 도시 구조를 크게 바꿀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과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혁신을 거쳐, 이제는 개인의 창의성이 경제와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도시 구조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며 진화하고 있다.
산업도시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산업사회 도시는 중심부의 상업지구와 외곽의 산업단지로 이원화되었다. 공장이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산업 시설은 도시 외곽에 위치했다. 이후 탈산업화와 정보화 과정에서 서비스산업과 IT산업이 도시 중심부로 집중되면서, 도시는 창의적 기업과 혁신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제 대기업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개인 크리에이터가 경제와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다. 디지털 경제와 창작 기반 산업이 부상하면서, 도시는 창의적 노동과 협업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중세 베니스나 뤼베크가 상인들의 필요에 맞춰 발전했듯이, 크리에이터 타운도 온오프라인 크리에이터들의 요구에 맞춰 형성된다. 스톡홀름의 소더말름이나 도쿄의 시모키타자와는 창의적 콘텐츠 제작과 공유를 위한 공간을 중심으로 진화하는 대표적 사례다.
민간에 의한 크리에이터 타운 조성도 활발하다. 서교동 등 전국 여러 곳에 '크리에이터 타운'이란 이름의 코워킹-코리빙 공간을 운영하는 로컬스티치, 연희동에서 하이퍼로컬 타운을 건설하는 어반플레이가 대표적인 기업이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공간 구성
크리에이터 타운은 콘텐츠 장르별로 특화된 지구를 형성한다. 영상 지구는 촬영 스튜디오, 편집실, 상영관을 갖추고, 음악 지구는 녹음실, 공연장, 방음 작업실을 보유한다. 디지털아트 지구는 초고속망과 VR/AR 시설, 렌더팜을 구축하고, 미식 지구는 상업용 주방과 음식 촬영 스튜디오, 시식 공간을 운영한다. 공예 지구는 공방과 쇼룸, 재료 보관소를 갖추며, 패션 지구는 디자인 스튜디오, 소량 생산 설비, 런웨이 공간을 보유한다.
크리에이터 타운 인프라는 온오프라인 창작 지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초고속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버가 디지털 창작을 지원하고, 공방과 스튜디오, 전시공간, 물류 시설이 물리적 창작과 유통을 돕는다. 런던의 쇼디치나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는 전통문화와 현대 기술의 융합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며, 서울의 홍대와 성수동은 실험적 창작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한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물리적 환경은 제인 제이콥스의 도시 모델을 따른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물들이 서로 다른 임대료를 제공하여 신진 크리에이터들의 진입을 돕고, 짧은 블록이 우연한 만남과 협업을 가능하게 하며, 중간밀도 복합용도 개발이 하루종일 창작의 활기를 유지한다. 이러한 설계는 도시 내 '창의적 충돌'을 유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크리에이터 중심의 도시 설계는 창작 비용을 절감하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극대화하며 크리에이터 간 교류를 촉진한다. 특화 시설의 집적은 관련 산업의 집중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전문 인력의 유입으로 이어진다.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창작 활동은 타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타운별 고유성과 다양성
크리에이터 경제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콘텐츠가 일종의 작품이기 때문에 동일한 유형의 콘텐츠도 크리에이터와 공간 환경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특히, 건축 특성, 자연환경, 지역문화, 커뮤니티 라이프스타일 등 문화와 건축환경은 크리에이터 타운에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지역에 모이는 크리에이터와 콘텐츠의 특색에 영향을 미친다.
포틀랜드나 브루클린처럼 역사적 건물이 많은 지역은 전통 공예와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 되고, LA 아트 디스트릭트는 창고를 개조해 대형 설치미술과 공연의 거점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구조에서 크리에이터들은 특화된 인프라를 공유하며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같은 분야 창작자들과의 교류로 아이디어와 기술을 발전시킨다. 스톡홀름 소더말름의 예술가적 감성을 지닌 소상공인들은 이러한 타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크리에이터 타운과 도시계획의 미래
크리에이터 타운은 단순한 창작 공간을 넘어 도시의 새로운 발전 단위로 자리 잡는다. 중세 도시가 상인과 장인의 네트워크였듯이, 크리에이터 타운은 창작자들의 물리적, 인적 네트워크가 결합된 새로운 도시 모델이다. 도시계획은 타운과 메가시티 단위로 이원화된다. 타운 단위에서는 고유한 정체성과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메가시티 단위에서는 각 타운을 연결하는 교통, 물류, 정보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러한 도시 재구성은 타운의 독창성과 도시 전체의 시너지를 동시에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