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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 무엇이 쟁점인가?

by 골목길 경제학자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 무엇이 쟁점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 9개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을 집중 투자해 지역 혁신과 성장을 이끌겠다는 이 계획은 단순한 지역 균형 문제가 아니다.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화, 그리고 지방대 위기라는 구조적 병목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서울대를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핵심 의제다. 현재와 같은 서울대 중심의 극도로 집중된 교육 체제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기는 명확하다. 국립대학이 단순히 학문적 수월성만을 추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와 대학원 과정에서는 수월성을 추구하되, 학부 교육에서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대 개혁론의 전개와 구체적 대안들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은 30년에 걸친 서울대 개혁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개혁론자들은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1996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서울대의 나라』에서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을 진단했다. 강준만은 서울대 출신이 사회 전 분야의 헤게모니를 독점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서울대 개혁 없이 교육개혁은 없고 입시 전쟁은 영원히 살벌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해법보다는 서울대 중심의 서열 구조 자체가 한국 사회 문제의 근원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 교육혁신위원회는 가장 체계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전국 단위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지역단위별 학력고사를 도입해 전국적 대학 서열화를 원천 차단하자는 입시제도 개혁이 첫 번째 축이었다. 동시에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통해 서울대를 비롯한 모든 국립대가 동일한 학위를 수여하도록 하는 국립대 통합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서울대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좌절되었다. 교육혁신위는 "일류 대학들의 엘리트 교육을 고집하는 기득권 고수 입장, 교육부의 현실 타협론"이 혁신을 가로막았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보다 현실적 접근을 택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제시한 '국립대 공동학위제'는 국립대 간 연합을 통한 서열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집권 후에는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을 100대 국정과제로 설정해 지방대 경쟁력 강화를 통한 우회적 접근을 시도했다.


서울대 개혁론의 세 가지 흐름

서울대 개혁론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첫째는 입시제도 개혁이다. 서울대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켜 입시 서열 구조를 완화하자는 접근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는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극심한 입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는 연간 30조 원에 달하는 사교육비 지출과 청소년의 정신건강 악화, 나아가 저출산 문제까지 연결되는 사회적 병폐의 근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지역별 학력고사나 국립대 공동학위제가 대표적인 해법이다.


둘째는 지역균형발전 과제다. 지방 소멸과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지방대학의 위상을 높이자는 방향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으로 집중되면서 지방의 인재 유출이 심화되고, 이는 지방 경제와 사회의 활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높여 지역 인재가 지역에 머물며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거점대 집중 육성과 이재명의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이 흐름에 속한다.


셋째는 연구 경쟁력 문제다. 지방 거점대학의 연구 역량을 끌어올려 국가 전체의 연구 기반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현재 한국의 연구 역량이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소수 대학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대학의 연구 인프라와 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이는 국가 전체의 연구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이재명 대통령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은 전국 9개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과 연구 역량을 집중 투자해, 이들 대학을 지역 혁신과 성장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9개 거점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거점 국립대 9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2023년 기준)는 2,450만 원으로 서울대(6,059만 원)의 40% 수준에 그친다. 이를 서울대의 7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민주당은 공약 실행을 위해 일반 재정 지원 성격의 국립대 육성사업·대학혁신지원사업 예산을 연간 최대 1조 원가량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학균형발전법' 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책 평가와 쟁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은 연구 경쟁력과 지역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연구 경쟁력 강화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국 대학의 문제는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라, 연구 인센티브와 성과 평가 체계의 구조적 한계에 있다. 오히려 1~2개 대학에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투자해 세계 수준의 연구 거점을 육성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역균형발전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방국립대는 지역사회와 단절된 ‘섬’처럼 기능한다. 교수 인사와 연구 평가 체계가 지역성과 무관하게 설계돼 있어, 대학이 지역 문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어려운 구조다. 단순한 예산 지원만으로는 이 고립된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공동입학제: 보다 급진적인 대안

서울대 10개 만들기 관련 가장 주목해야 할 쟁점은 입시 경쟁 완화다. 하지만 지방국립대의 연구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해서 수험생들의 선호도가 높아질까?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의가 더 진전되면 지방국립대의 입시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어젠다로 부상할 것이다. 공동학위제 등 그동안 논의해 온 대안으로 충분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서울대와 지방거점대를 하나의 입시 풀로 묶고, 입학 후 지역 배치를 실시하는 국립대 공동입학제가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공동학위제는 졸업 시 학위를 공유하지만, 공동입학제는 입시 단계에서부터 경쟁을 분산시켜 서열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공동입학제와 유사한 해외 사례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UC(University of California)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UC는 버클리, 로스앤젤레스(UCLA), 샌디에이고 등 9개 학부 캠퍼스로 구성된 주립대학 네트워크로, 모든 캠퍼스가 단일한 입시 시스템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하나의 공통 원서(UC Application)를 통해 여러 캠퍼스에 동시에 지원할 수 있으며, 평가 기준은 각 캠퍼스가 자율적으로 설정하지만, 입시 과정 자체는 시스템 차원에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개별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별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UCLA나 버클리처럼 높은 선호도를 지닌 캠퍼스에도 지원이 가능하지만, UC 시스템 전체가 하나의 교육 브랜드로 작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이 분산된다. 한국에서도 서울대와 지방 거점국립대를 하나의 입시 시스템으로 묶는 공동입학제는 UC 사례처럼 실질적인 서열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 제도 하나로 인서울 사립대나 의대 집중 현상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공이 먼저 서열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공동입학제는 실효성과 상징성을 모두 갖춘 정책 수단이다.


결론적으로, 공동입학제는 정부가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실현 가능하고 구조적인 교육 개혁 수단이다. 입시 경쟁의 고리를 끊고, 교육 자원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대학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입시 구조의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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