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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21. 2018

탈산업화 극복 공식

전문가들이 탈산업화 가능성을 경고하기 시작한 건 성장률이 6%대로 떨어진 90년대 후반부터다. 그러나 우리가 탈산업화를 체감한 것은 주력산업이 동시에 불황에 빠진 2014년부터다. 조선업 경기의 하락은 이미 중소 조선소가 밀집한 통영과 거제도 공단을 중심으로 동화를 초래했다. 대기업 사업장이 연이어 철수하는 군산이 이제 그 길을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탈산업화 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주요 제조업 도시의 쇠락을 관망할 수밖에 없던 미국의 사례는 탈산업화 과정이 국가와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향후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지금부터라도 미국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탈산업화에 대비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미국의 탈산업화는 주민의 도심 탈출, 남서부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산업 도시들을 초토화했다.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버펄로 등 대표적인 산업도시들의 현재 인구는 가장 융성했던 1950년의 40~50% 수준에 불과하다. 전쟁 폐허같이 버려진 산업도시들의 도심은 대규모 인구 감소가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추세에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 중반이 돼서다. 드디어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시러큐스 등 몇몇 산업도시가 간신히 인구 감소 추세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 도시들은 과연 어떻게 이런 위기를 극복한 걸까?


이를 두고 2013년 한 잡지는 재미있는 주장을 했다. 대학이 미국 산업도시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이다. 기자 저스틴 포프는 이런 질문을 졌다. 만약 디트로이트에 명문 사립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알려진 것처럼 디트로이트에는 명문 사립대학이 없다. 명문 미시간대학은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앤아버에 있으므로 논외다. 반면, 제조업 구조조정의 여파를 이겨낸 산업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명문 사립대학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츠버그에는 카네기멜론 대학과 피츠버그 대이 있으며, 클리블랜드도 도심에서 10분 거리인 클리블랜드 유니버시티 서클에 연구 중심 대학인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이 있다. 대학이 왜 산업도시 재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까? 대학 캠퍼스와 부속 병원은 지역 내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등록금, 의료비, 연구비 수입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대학 중심의 도시 재건을 가장 모범적으로 이룬 곳은 피츠버그다. 피츠버그는 1950년대 철강 도시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건, 이오, IT를 내세우는 창조도시로 거듭났다.


2009년에는 ‘미국에서 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면서, 창조 인재가 집결한 역동적 도시로 완전히 재탄생했음을 공인받기도 했다. 피츠버그 소프트웨어 산업, 생명공학 산업발전의 토대는 피츠버그 대학의 연구 인프라였다. 카네기멜론 대학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공학과를 바탕으로 170개 이상의 기업을 키워냈다. 연간 매출 100억 달러를 창출하고 5만 4000여 명을 고용하는 피츠버그 대학교 부설 병원은 지역 내 고용 창출뿐만 아니라, 지역보건 산업을 지원하는 연구 활동으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대학 중심 산업도시 혁신의 또 한 가지 모범사례는 뉴욕 주 북부 시러큐스다. 이 도시는 시러큐스 대학을 상징하는 오렌지빛으로 가득하다.


시러큐스 대학은 디자인대학원을 도심으로 이전하고, 2005년부터 4천만 달러에 가까운 예산을 시러큐스 도심 재생에 투입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오렌지색 건물과 시설은 그 노력의 결실이다. 지역 경제의 체질 전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성공한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시러큐스도 지역대학을 지렛대 삼아 교육과 의료 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했다.


탈산업화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산업 도시도 이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대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산업도시의 돌파구는 대학과의 공생발전 모색뿐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학들이 스스로를 지역 대학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래서 지역 경제에 대한 사명감 역시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먼저 정부가 한국 대학들의 지역 정체성 강화를 위한 대학 중심 산학협력 단지와 창업센터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이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도 대학 유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욕 경제의 다변화를 추진한 시 정부는, IT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루스벨트 아일랜드 지역에 대학 캠퍼스 부지를 조성했다. 그리고 공모를 통해 코넬 대학과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를 참여 대학으로 선정했다. 뉴욕시 정부는 스탠퍼드대학과 실리콘밸리 사례처럼 이들 대학이 뉴욕 혁신 생태계 조성의 초석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정원 조정 중심의 한국 지역대학 정책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열악한 지역 경제 상황에서 지역 대학은 외부 인재 유치와 새로운 혁신 및 창업의 유일한 기반이다. 대학 교육 수요 감소에 대비 한 지역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을 교육기관으로만 인식하는 근시 발상이다. 지역 대학이 지역 경제 성장을 주도할 연구개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제조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한국의 탈산업화 위기가 이제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피해를 가장 먼저 경험할 대상은 산업도시다. 다행히 선진국의 앞선 경험은 우리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범 공식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 업을 창조하는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바람 직한 방법이다. 중앙정부는 지역 대학에 대한 정책을 지역경제 연개발 기관 육성 차원에서 재고하고, 지역 정부는 지역 대학과 협력해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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