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소상공인이 농민처럼 '보조금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지금처럼 확대한다면, 머지않아 소상공인도 농업처럼 생산보다는 보존을 목표로 하는 산업, 시장보다는 정책에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한 산업의 위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의 몰락은 도시의 경제, 문화, 커뮤니티 전반에 걸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그들은 단지 가게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일상을 떠받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상공인을 살리는 길은 정부 지원뿐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이들이 왜 몰락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들여다봐야 한다.
첫 번째 원인은 디지털 전환의 속도에 있다. 대기업 플랫폼이 급속히 시장을 장악하면서 소상공인은 '속도와 규모의 게임'에서 밀려나고 있다.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을 직접 규제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이들에게 제공되는 세제 혜택, 물류 특혜, 규제 완화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플랫폼 수수료, 디지털 전환 교육과 지원, 물류센터와 배달 서비스에 대한 과잉지원은 결과적으로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도시 그 자체에 있다. 지금 한국의 신도시와 원도심 모두 소상공인에게 불리한 환경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핵심 문제는 상가 과잉 공급이다. 획일적이고 장사하기 어려운 구조의 상가를 무분별하게 공급한 결과, 전국의 신도시가 공실 위기에 직면했다.
원도심 상황은 더 복잡하다. 신도시 개발로 고객이 분산되면서 기존 상권이 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용도 규제까지 완화되어 원도심 저층 지역 전체가 상가로 바뀌고 있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수요는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원도심 전역에서 진행되는 재개발과 재건축마저 문제다. 기존의 양질의 상가 건물과 보행 친화적인 가로환경을 오히려 축소시키고 있다. 결국 신도시든 원도심이든 소상공인이 성공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도시정책은 소상공인을 주변적 존재로 취급하거나, 단순한 지원 대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소상공인이 번영할 수 있는 도시란 무엇인가? 과연 유동인구가 많고 임대료가 저렴하기만 하면 충분할까? 소상공인의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조건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한국 도시의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한국 도시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부터 점검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도시의 성공을 경제 지표로만 측정해 왔지만, 정작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은 간과해 왔다. 특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거나 기존 도시를 개발할 때 반드시 답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질문이 있다.
첫째, 한국인은 실제로 어디에서 살고 싶어 하는가? 경제지표상 성공한 도시와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도시 사이에는 차이가 없을까? 일자리가 많고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가 과연 살기 좋은 도시일까?
둘째, 누가 한국 도시의 관광과 문화를 실제로 살리고 있는가? 대형 개발사업인가, 아니면 동네의 작은 상점들인가? 관광객들이 정말 찾고 싶어 하는 것은 거대한 쇼핑몰인가, 아니면 그 지역만의 독특한 가게들인가?
셋째, 전국적인 신도시 상가 공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상권은 어디이며,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같은 조건의 신도시인데도 왜 어떤 곳은 성공하고 어떤 곳은 실패하는 것일까?
이 세 질문의 답을 차례로 살펴보면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상공인이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도시가 곧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것이다. 결국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개별 사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도시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1. 과장된 기업도시 신화
최근 평택, 용인, 화성 같은 이른바 '기업 도시'들이 전국 227개 기초단체 중 최상위로 평가받으며 “성공한 도시 모델”로 칭찬받고 있다. 기업 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와 인구가 증가하고, 출산율까지 개선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여기에 중대한 모순이 숨어 있다. 한국갤럽이 2004년부터 20년간 실시한 ‘살고 싶은 도시’ 조사를 보면 현실은 정반대다. 경제지표상 성공한 이 도시들은 상위 10위 안에 단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보여준 것처럼,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반면, 2024년 조사에서 실제 인구 비중보다 높은 선호도를 기록한 도시들이 있다. 서울(+8.1%), 제주(+6.7%), 부산(+4.3%), 강릉(+1.6%), 춘천(+1.4%), 전주(+1.3%), 대전(+0.3%)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원도심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신도시 개발 피해가 적어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거리, 걷고 싶은 골목길, 지역 고유의 생활문화가 보존된 곳들이다.
이 사실은 소상공인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경제지표로 포장된 ‘성공 도시’보다는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도시에서 진정한 상권이 형성된다. 획일적인 신도시의 프랜차이즈 거리에서가 아니라, 동네 고유의 특색을 살린 로컬 비즈니스가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동네가 만드는 도시의 매력
사람들이 실제로 찾고,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살고 싶은 도시는 공통적으로 그 도시를 실제로 움직이는 동네들이 활발하다. 누적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분석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서울에서는 홍대(1,647만), 이태원(969만), 성수동(211만) 같은 동네들이 서울의 관광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방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부산 전포동(88만), 경주 황리단길(151만), 전주 한옥마을(152만)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으며 지역 관광을 이끌고 있다. 단순한 유산이나 시설이 아니라,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브랜드가 도시의 매력을 만든다.
꼭 유명 관광지일 필요도 없다. 서울 내에서도 연희동(76만), 성산동(31만), 부암동(26만) 같은 소규모, 비역세권 동네들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교통 편의성이 떨어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간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 지역은 로컬 브랜드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희동의 파크먼트 연희, 사러가쇼핑센터, 정음철물, 바늘이야기 같은 독창적인 상점들이 동네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것이 관광객과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을 한다.
반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거리는 매력도가 떨어진다. 그곳에는 도시의 개성도, 사람들의 이야기도 없다. 소상공인은 단순한 임대사업자가 아니라, 도시 콘텐츠의 창조자여야 한다. 바로 그럴 때, 동네가 도시를 살리는 진짜 힘이 된다.
3. 신도시의 경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경제지표상 ‘성공 도시’로 평가받는 신도시들에서 상가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과천신도시 집합상가의 공실률은 무려 45%에 달한다. 수도권 주요 신도시들도 25% 안팎의 높은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수치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신도시 공실 위기는 도시 성장의 외형과 지역 경제의 내실이 완전히 따로 간다는 경고다. 기업 유치와 인구 증가로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평택, 용인, 화성 같은 도시들이 정작 소상공인에게는 지속 가능한 사업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첫째는 획일적인 상가 설계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도시 상가는 같은 크기, 같은 구조, 같은 배치로 지어져 개성 있는 비즈니스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둘째는 커뮤니티의 부재다. 주거 기능에만 집중한 신도시일수록,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나 문화 기반이 부족하다. 셋째는 로컬 생태계의 부재다. 과거의 이야기나 문화적 맥락이 없는 택지 위에 만들어진 도시에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어렵다.
이처럼 신도시는 외형적 완성도는 높지만, 소상공인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결여돼 있다. LH 등 개발 주체들이 ‘성공한 도시’를 만든다지만, 정작 사람들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고, 가게는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이것이 신도시가 도시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장사하기 어려운 도시의 확산은 소상공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 소상공인의 몰락이 도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상실이다. 개성 있는 소상공인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도시는 점점 획일화된다. 서울의 어느 동네를 가든 같은 편의점, 같은 카페, 같은 치킨집만 보이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획일화는 도시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관광 매력도마저 떨어뜨린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다. 소상공인은 단순한 자영업자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핵심 축이다. 동네 빵집이 문을 닫으면 그 빵집에 재료를 공급하던 업체도, 배달을 담당하던 사람도, 청소를 맡던 업체도 모두 타격을 받는다. 하나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게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경제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온라인 쇼핑몰은 이런 지역 순환경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공동체 문화의 해체다. 동네 가게들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동네의 안전망 역할을 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이런 공간들이 사라지면 이웃 간의 유대감도 약해진다. 결국 소상공인의 몰락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결속력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문제의 해법은 명확하다. 건축주도 문화도시 조성이 핵심이다. 첫째, 물리적 환경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장사하기 좋은 동네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밀도, 걷기 좋은 골목길, 다양한 건물 규모가 조화를 이루는 환경 말이다. 신도시 상가의 획일적 설계를 벗어나야 한다. 건축주와 상권을 대상으로 한 건축디자인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성수동의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처럼 지역 고유의 건축 정체성을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로컬 콘텐츠 생태계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해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춘천시처럼 공무원 대상 로컬 브랜딩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방에는 로컬 콘텐츠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농촌 크리에이터들의 기술적 역량을 지원하는 것이다.
셋째, 동네 단위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개별 상가의 성공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시너지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주의 문화시설 전략적 배치가 좋은 사례다. 문화시설과 상권을 연계하는 것이다. 15분 도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보행환경 개선을 통한 생활권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상가 공급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가 시급하다. 신도시 개발 시 상가 공급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 원도심 용도 규제를 강화해 무분별한 상권화를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전통시장을 현대건축 랜드마크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통해 기존 상권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상반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인구와 일자리 수치로 '성공'이라 불리는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실제로 살고 싶어 하고 소상공인들이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진짜 매력적인 도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숫자로는 포착되지 않는 도시의 질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일자리가 많고 인구가 증가하는 곳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있고, 공동체가 살아 있으며, 개성 있는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원한다. 사람이 머물고 싶은 공간, 걷고 싶은 거리, 이야기하고 싶은 장소를 원한다.
따라서 소상공인 문제는 단지 자영업의 위기가 아니라, 도시의 방향과 철학을 묻는 질문이다. 소상공인이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도시야말로, 시민에게도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상공인을 단순한 지원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을 도시 문화의 창조자이자 지역경제의 혁신 주체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들은 도시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삶의 밀도를 높이며,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도시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경제 통계가 아닌,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평가해야 한다.
개발 규모가 아닌, 원도심의 보존과 재생 정도를 봐야 한다.
대기업 유치 실적이 아닌, 로컬 브랜드 생태계의 건강성을 도시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소상공인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