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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의 기본

제한적 도시재생에서 통합적 도시재생으로

by 골목길 경제학자

도시재생의 기본

제한적 도시재생에서 통합적 도시재생으로


지난 정부가 지역 정책에서 놓친 것이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추진한 사업도 지역산업 육성이나 상권 사업에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다. 현 정부가 이를 보완할지 안 할지 아직까지는 불확실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는 전면적인 도시재생을 다시 추진할 것이다. 한국 사회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공공연히 외면해 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원도심 건축환경으로는, 그리고 무모하게 계속 공급하는 신도시로는 국내 관광과 지역 소도시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이 유일한 길인데 문제는 방법이다. 지금까지의 제한적 도시재생—일부 소지역을 대상으로 한 기존 건물들의 외벽 도색, 간판 정비, 소규모 기반 시설 개선 등으로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이제는 도시 전체를 견인할 수 있는 통합적 도시재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당위성은 도시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 형성의 근본 원리

통합적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는 도시의 근본 원리에 있다. 단지 사람이 모여 산다고 해서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건축 형태를 갖춰야 비로소 도시가 된다. 도시 형태가 없는 거주지는 촌락이라고 부른다.


촌락은 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사는 기본적인 거주 형태로, 체계적인 계획이나 건축적 질서 없이 형성된다. 반면 도시는 성곽과 광장, 도로와 건축물이 의도적으로 배치되고 조직화된 공간이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통합적 건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가 단순한 촌락에서 도시로 발전한 것은 지구라트와 성곽, 체계적인 도로망이 구축되면서부터였다. 그리스의 아테네 역시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라는 건축적 중심축이 만들어지면서 진정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이들 모두 개별 건축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합적 건축체로 작동했다.


제한적 도시재생의 한계

도시와 건축의 관계는 도시재생에도 적용된다. 도시가 쇠락했다는 것은 기존 도시 구조가 경제 구조와 문화 변화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산업화에 맞춰진 도시환경이 탈산업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공장과 항만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가 지식기반 경제나 창조산업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은 이런 구조적 부적합을 외면한 채, 제한적 개선에만 머물고 있다. 일부 소지역을 대상으로 기존 도시환경을 가볍게 손질하고, 사람과 콘텐츠를 유치하고 커뮤니티를 강화하면 도시가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도시재생 대상지가 도시의 일부 소지역에 한정될 때,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도시 전체를 견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경제·문화 구조에 맞는 건축적 그릇 없이는 진정한 도시 재생이 불가능하다. 정주와 창조 활동을 가능케 할 매력적인 공간이 없으면, 유입된 인구도 정착하지 못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생태계도 구축되지 않는다.


구조적 재생의 실천

따라서 도시재생의 시작은 건축이어야 한다. 고대 도시가 건축적 질서에서 시작되었듯이, 쇠락한 현대 도시의 재생도 건축적 구조 재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정한 도시재생은 개별 건축물의 개선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 건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려 하지 말고, 사람과 크리에이터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밖에 없는 건축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997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적 사례다. 빌바오의 성공 비결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도시와 통합된 건축환경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쇠락한 산업도시 빌바오는 프랭크 게리의 혁신적 건축물이라는 강력한 앵커에서 시작해 주변 문화지구 조성, 도시 전체 재생으로 이어지는 20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단순한 문화시설이 아니라 도시 전체와 연결된 통합적 건축환경이 철강·조선업 중심의 산업도시를 문화·관광·지식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성수동의 카페거리, 홍대의 클럽 문화, 전주와 경주의 한옥마을 모두 특별한 건축 공간에서 시작된 변화가 지역 전체로 확산된 사례들이다.


통합적 도시재생의 실행 전략

한국 지역의 소도시들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골목상권 같은 소규모 자생적 재생에 의존하는 제한적 접근. 하지만 이는 국지적 효과에 그치며 도시 전체의 구조적 변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둘째,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새로운 건축환경을 조성하는 통합적 도시재생이다.


통합적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려면 다음 세 가지 핵심 요소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첫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이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상징적이고 강력한 건축적 앵커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도시재생에서 주로 건설되는 커뮤니티 센터나 작은 문화시설로는 도시와의 통합성 부족으로 도시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건축적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없다.


둘째, 단일 건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의 기능별 구역을 계획적으로 배치하고 연결하는 체계적 공간 분화 전략이 요구된다.


셋째, 이러한 개별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지역 전체가 하나의 창조적 생태계로 작동할 수 있는 통합적 도시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모든 도시가 건축적 질서에서 시작하듯이, 도시재생도 건축적 구조 재편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기적 이벤트나 경제 효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 건축으로 재구성하는 건축환경을 차근차근 구축해 나가는 것—바로 이것이 진정한 도시재생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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