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연세대 연구팀과 도쿄와 군마현 마에바시 시의 문화적 도시재생 현장을 찾는다. 문화적 도시재생이란 건축과 문화의 힘으로 지역의 공동체성과 문화력을 살리는 전략을 말한다. 창조성과 삶의 질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방법 외에 다른 지역을 살리는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다. 로컬 커뮤니티가 꿈꾸는 로컬 생태계 역시 문화적 도시재생의 한 형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도시재생과 상권활성화 사업을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왜 그럴까? 이런 고민을 시작하는 현시점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의 다양한 모델들을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문화적 도시재생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접근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복합단지 조성을 통한 재생, 문화앵커 조성을 통한 재생, 그리고 로컬 생태계 조성을 통한 재생이다.
각 접근법은 도시의 규모와 특성, 재정 여건에 따라 적합성이 다르다. 이 중에서도 로컬 생태계를 통한 재생은 대부분의 도시에서 실현 가능한 모델로, 지역의 기존 자산을 활용하면서도 점진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복합단지 조성 방식은 전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문화시설과 문화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성하는 접근법이다. 서울시립대학교 김정빈 교수의 플레이스메이킹 연구에 따르면, 현대 플레이스메이킹의 핵심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오그웨어의 통합적 접근에 있다.
하드웨어는 공간의 물리적 설계와 디자인을 뜻하며, 플레이스메이킹의 출발점이 된다. 소프트웨어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 이벤트, 그리고 공간의 MD 구성을 포함하며, 공간의 특성에 맞는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통해 공간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오그웨어는 조직과 관련된 운영 체계, 거버넌스, 관리 구조를 의미하며, 물리적 공간과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롯폰기힐즈와 모리뮤지엄은 복합단지 조성을 통한 문화적 도시재생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17년간의 재개발 과정을 거쳐 2003년 완공된 이 프로젝트는 모리빌딩이 약 400명의 소유주와 공동으로 추진한 민관협력 사업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지상 54층 238m 높이의 모리타워를 중심으로 한 복합시설로, 저층부는 쇼핑몰, 중층부는 임대 사무실, 상층부는 회원제 문화시설과 미술관으로 구성되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52-53층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이 독자적인 시각으로 아트와 건축 등 다양한 기획전을 개최하며 국제적인 현대 아트의 거점 역할을 한다.
오그웨어 측면에서는 ‘문화’를 주요 지향점으로 하는 명확한 브랜드 콘셉트와 지속적인 운영 체계를 통해 안정적인 방문객을 유치해 왔다. 모리빌딩은 매주 지역주민들과 토론을 가지고 뉴스레터를 공유하며 한 가정씩 찾아가는 등의 노력을 통해 모두가 만족할만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도쿄는 새로운 ‘문화도심’을 갖게 되었으며, 일본 최대 규모의 도시 재개발로 평가받고 있다.
복합단지 조성 방식은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여러 한계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장벽은 대규모 장기 개발에 따른 자본 부담이다.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의 자금이 필요하며, 이는 대부분의 지자체나 중소 개발업체가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복잡한 이해관계자 조정과 장기간의 개발 기간(통상 10년 이상)이 필요하여 정치적·경제적 변수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
개발 과정에서 임대료 상승과 주민 이탈 가능성도 우려된다. 급격한 비용 증가로 기존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으며, 계획이 경직적일 경우 시장 변화나 사용자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경우의 파급효과는 크다. 롯폰기힐즈는 새로운 문화·상업 중심지를 창출하며 도쿄 도시 브랜드를 강화했고, 장기적 수익성 또한 입증되었다.
문화시설 조성 방식은 대규모 앵커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특정 지역을 재생하는 방법으로, 접근 방식에 따라 미학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미학적 접근법의 대표적 사례다. 199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의 혁신적인 건축 설계와 세계적 수준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통해 쇠퇴한 공업도시 빌바오를 국제적인 문화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이 방식은 예술 작품의 수집, 보존, 전시에 초점을 맞추며,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방문객의 미적 경험을 강조한다.
미학적 접근의 성공 요인은 세계적 명성, 건축적 아이콘, 예술적 품질에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개관 첫해에만 4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현재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제적 파급효과로 지역 경제가 완전히 회생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막대한 초기 투자와 지속적인 운영비가 필요하며, 세계적 브랜드와 건축가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지역 주민보다는 외부 방문객을 주요 타깃으로 하여 때로는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이 제한적일 수 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사회적 접근법의 모범 사례다. 2000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뱅크사이드 지역의 재생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으며, 단순한 미술관 건립을 넘어 지역 전체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견인했다. 이 접근법은 정부, 상업, 창작 분야,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적 접근의 핵심은 문화와 공동체의 사회적·물리적 통합 추구에 있다. 지역 주민을 위한 도시 편의시설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자긍심 향상, 환경 개선,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성공은 포용성, 사회적 참여와 통합, 장기적 지속가능성으로 평가된다.
미학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건축과 켈렉션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물리적, 사회적 연결을 중시했다. 미학적 접근은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와 국제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높은 진입 장벽과 운영 비용, 그리고 지역 사회와의 괴리 가능성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반면 사회적 접근은 지역 사회의 참여도가 높아 지속가능성이 강하지만,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이 복잡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로컬 생태계 조성을 통한 재생은 대부분의 도시에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모델이다. 이 방식은 지역성과 거리 문화, 상권 재생과 근린 지역 개발을 촉진하며, 기존 도시 구조와 지역 커뮤니티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포틀랜드의 펄 디스트릭트는 상권 중심 재생의 전형적 성공 사례다. 1990년대까지 창고와 공장이 밀집했던 이 지역은 2000년대 들어 독립 상점, 아티스트 스튜디오, 소규모 창작 공간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적 생태계를 형성했다. 'Keep Portland Weird'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은 메이커, 소규모 크리에이터, 라이프스타일 주도 경제를 특징으로 한다.
포틀랜드 모델의 성공 요인은 독립 상점과 DIY/DIT 문화에 대한 체계적 지원에 있다. 시 정부는 소규모 사업자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창작자들을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보행 친화적 거리 환경을 조성하고, 정기적인 아트 마켓과 문화 이벤트를 통해 지역의 독특함을 유지했다.
포틀랜드는 창의적 도시 브랜딩을 통해 젊은 크리에이터들과 소규모 기업가들이 모이는 허브로 성장했다. 인구 대비 양조장 수가 미국에서 가장 높으며, 독립 서점인 파웰 서점과 같은 상징적 공간들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각 지역이 고유한 특색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문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펄 디스트릭트의 성공은 상권 활성화와 함께 포괄적인 도시계획과 건축환경 정비가 결합된 결과다. 1998년 리버 디스트릭트 도시재생계획에서는 세금증분금융(TIF)을 도입하여 도시 재개발을 장려했으며, 2001년 26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펄 디스트릭트 개발계획을 공식 채택했다. 물리적 변화는 적응적 재사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화물창고는 고급 타운하우스로, 기존 창고는 상업공간으로 전환되었다. 2001년 스트리트카 건설과 NW 러브조이 고가도로 철거는 교통접근성과 새로운 개발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로컬 생태계 조성을 통한 재생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상대적으로 낮은 초기 투자로 시작할 수 있어 중소 도시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실행 가능하다. 둘째, 기존 지역 자산과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정체성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점진적이고 유기적인 성장이 가능하여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과 개선이 용이하다.
넷째, 지역 주민의 참여도가 높아 소규모 상점 운영이나 창작 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경제 활동과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성공 모델을 다른 지역에 적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확산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초기 단계에서는 가시적 변화가 미미할 수 있다. 또한 소규모 분산 투자로 인해 임팩트가 제한적일 수 있으며, 지역 특성에 따라 성공 여부가 크게 좌우된다. 상권이 성장할 경우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위험도 상존한다.
복합단지 조성 방식은 종합적 도시 경험 창출을 목표로 하며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복잡한 개발 과정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문화앵커 조성 방식은 대규모 투자와 세계적 브랜드를 통한 단기간 가시적 성과를 특징으로 하지만, 막대한 초기 투자와 지속적인 운영비가 필요해 대도시나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에 적합하다. 로컬 생태계 조성 방식은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변화와 지역 고유성 보존에 중점을 두며, 상대적으로 낮은 초기 투자로 시작할 수 있어 중소 도시나 지역 단위에서도 실현 가능한 모델이다.
각 접근법은 서로 다른 지속가능성 특성을 보인다. 복합단지 방식은 초기 투자가 크지만 성공 시 장기적 수익성이 높다. 문화앵커 방식은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과 운영비 확보가 관건이다. 로컬 생태계 조성 방식은 지역의 기존 자산과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외부 의존도가 낮고, 성공 모델의 다른 지역 적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여 확산 가능성이 높다.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의 성공은 각 도시의 환경, 상황, 장소적 특성에 맞는 적절한 접근법 선택에 달려 있다. 세 가지 접근법은 각각 고유한 장단점과 적용 조건을 갖고 있으며, 어떤 하나의 모델이 모든 상황에서 최선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은 리더십, 투자 재원, 그리고 역량에서 찾아야 한다. 리더십 측면에서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지역 이해관계자들을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추진 주체가 부족하다. 투자 재원의 경우, 한국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은 대부분 정부 예산에 의존하는 단기 프로젝트로 기획되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다양한 재원을 조합할 수 있는 금융 설계와 수익 모델이 부재한 상황이다. 역량 면에서는 문화기획, 공간디자인, 커뮤니티 조직화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각 도시가 자신의 역사적 맥락, 경제적 여건, 사회적 특성,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접근법을 선택하거나 여러 방식을 조합하는 것이다. 미학적 우수성, 사회적 포용성, 지역적 진정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되, 지역의 고유한 조건과 장기적 비전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정빈. "플레이스메이킹을 완성하는 요소 3가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오그웨어 3박자." 이지스자산운용 블로그. 2024년 12월. https://blog.igisam.com/tokyo-london-singapore-placemaking-unfol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