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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도시재생 모델의 신화

by 골목길 경제학자

초고층 도시재생 모델의 신화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개발은 서울시 안에서 일부 조정을 거쳐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서울시가 법이 정한 재량권 범위 안에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지역을 용적률 1300%까지 허용되는 일반상업지구로 지정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그렇다고 초고층 모델이 항상 정답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 최근 일부 논의에서 두 가지 논거가 자주 등장한다. 첫째는 도쿄의 성공 사례이고, 둘째는 강북 발전을 위해서는 초고층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두 가지 모두 초고층 개발의 일반적 우월성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도쿄 사례: 성공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

먼저 도쿄의 도시재생 사례를 살펴보자. 아자부다이힐스, 롯폰기힐스, 마루노우치 같은 초고층 복합개발이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들이 쾌적한 공간 구조, 건축적 완성도, 도심 혼합 용도를 갖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초고층 개발이 도쿄 상업 생태계와 관광의 성공 요인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도쿄 상업 생태계의 진짜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장인정신 기반의 소상공인들, 독립 크리에이터들의 상점과 브랜드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쿄의 광범위한 저층, 동네 기반 상업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실제로 찾는 도쿄의 명소는 무엇인가? 아사쿠사, 시부야, 하라주쿠, 시모키타자와 같은 저층 골목지역들이다. 롯폰기힐스나 오다이바 같은 단지 개발 지역은 관광 명소 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성수동, 홍대, 익선동, 을지로 같은 저층 골목 지역이 로컬 브랜드의 생태계와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되었다. 강남이나 여의도의 초고층 빌딩이 로컬 브랜드를 잉태하거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다.


마루노우치의 역설

황궁 주변의 마루노우치와 세운상가 지역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적절하지 않다. 마루노우치는 서울의 남대문로에 해당하는 금융가로서 고층 건물이 기능적으로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조차 초고층 모델이 완벽한 성공이라 보기는 어렵다.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현재의 마루노우치 고층 건물들이 1900년대 초반 영국 롬바드 스트리트를 모델로 조성했던 붉은 벽돌 저층 건물보다 더 나은 도시 모델일까?


실제로 이 지역을 재개발한 미쓰비시 부동산조차 일부 붉은 벽돌 건물을 복원해 구도심 경관을 살리려 노력했다. 이는 역설적이다. 그들 스스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 도쿄가 런던 모델을 더 많이 유지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품격 있는 도시로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루노우치의 현재와 과거를 표현하는 일러스트


도쿄역 주변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도쿄역사 건물 자체는 보존·복원했지만, 주변을 초고층으로 둘러싸면서 역사 건물이 지닌 스케일감과 경관을 망가뜨렸다. 하마리큐 정원도 마찬가지다. 고층 빌딩들이 바다 조망을 가로막아 예전의 풍경이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세운4구역에서 우려하는 상황이다—종묘 경관 훼손. 이를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강북 "낙후론"의 오류

둘째, 강북에 대한 평가 프레임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종묘 인근 지역을 개발 정체와 낙후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초고층 개발 = 도시 발전"이라는 단순한 등식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실상을 보자. 강북 중심 지역은 역사문화지구, 근대문화지구, 청년문화지구, 저층주거지역으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발전시켜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지역이다. 강북은 강남처럼 초고층 모델로 갈 수도 없고—애초에 모든 지역이 같은 방식으로 개발될 수 있나?—가서도 안 되는 곳이다.


결론: 수십 년을 내다보는 설계

세운4구역 재개발에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2018년에 합의된 높이 기준을 7년 만에 2배로 상향한 점, 종묘 경관에 미칠 영향, 을지로 메이커 생태계가 파괴될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구체적 우려들을 정치적 논리로 치부하거나, 도쿄의 초고층 개발 사례와 강북 낙후론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논의를 왜곡할 뿐이다.


도시는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내다보고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도쿄와 서울이 원구도심 저층 지역에서 얻은 교훈—저층 골목 지역의 진짜 가치—을 세운상가 일대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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