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네 도시

빌바오 구겐하임 신화

by 골목길 경제학자

빌바오 구겐하임 신화


19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재생의 전 세계적 아이콘이 되었다.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쇠락한 산업도시가 문화시설 하나로 국제적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기적적 성공 사례로 회자되어 왔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이 이 모델을 벤치마킹하려 했고, 수많은 학술 논문과 정책 보고서가 빌바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해 왔다.


문헌 연구와 현장 방문 사이의 간극만큼 큰 교훈은 없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직접 찾기 전까지 나는 이 프로젝트를 "죽어가는 공업도시의 기적적 부활"이라는 전형적인 도시재생 서사로 이해하고 있었다.


방문 전: 문헌이 그려낸 서사

방문하기 전 문헌을 기반으로 작성한 글에서 나는 빌바오 프로젝트를 네 가지 관점으로 분석했다. 미술관 프로젝트, 문화지구 조성 사업, 도시재생 사업, 그리고 지역발전 프로젝트로서의 의미를 차례로 검토하며, 궁극적으로는 종합적 지역발전 프로젝트로서의 접근이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결론지었다.


1970년대 철강·조선업의 쇠퇴로 위기에 빠진 빌바오가 네르비온 강변의 폐조선소 부지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설하고, 트램과 수비수리 다리 등 새로운 인프라로 이를 도심과 연결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활성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문화시설을 도시 외곽에 건설하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 사업을 통해 도심과 적극적으로 연결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고립된 공업지역을 혁신적 인프라로 도심에 연결한 모범적 도시재생"이라는 해석이 글의 중심을 이뤘다.



현장의 배신?: 현장에서 확인한 몇 가지 사실

그런데 현장 관찰은 달랐다. 빌바오 프로젝트의 전체 서사에서 일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미술관과 관련 시설의 위치다. 도심 외곽의 고립된 산업지대가 아니라 신도심, 서울로 말하면 강남 입구에 있다. 제프 쿤스의 거대한 강아지 조각상 '퍼피(Puppy)' 바로 앞이 신도심 거리다.


미술관 바로 옆에는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고, 몇 분만 걸으면 그란 비아(Gran Vía)라는 빌바오의 메인 스트리트가 나타난다. 미술관이 19세기부터 형성된 엔산체(Ensanche, 신시가지 확장지역)의 일부인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술관 바로 옆을 지나는 트램이었다. 여러 글에서 트램이 "구겐하임 개관 후 문화지구와 구도심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혁신적 교통수단"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2002년 개통으로 구겐하임보다 5년이나 늦었다. 신도심과 구도심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구겐하임을 위해 건설된 철도는 아니다. 트램 노선이 어딘지 모르게 기존 산업철도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궁금했지만, 이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술관 옆의 우아한 수비수리 다리는 구겐하임과 같은 해인 1997년에 완공되었지만, 이는 구겐하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네르비온 강을 사이에 둔 신도심과 구도심을 연결하는 기본적인 도시 기능이었다. 페드로 아루페 보행교 역시 2004년에 완공되어 구겐하임보다 7년이나 늦었고, 실제로는 대학 캠퍼스와 대학 도서관을 연결하는 인프라에 가깝다.


구겐하임이 들어선 아반도이바라(Abandoibarra) 지역은 "아반도의 강변"이라는 뜻으로, 1876년부터 빌바오에 합병된 아반도 지구의 네르비온 강변 부분이다. 아반도는 19세기말 빌바오가 구시가지 밖으로 확장하면서 조성된 신도심의 핵심이었고, 빌바오의 중심 업무지구로 발전한 곳이었다. 즉, 구겐하임은 "도시 외곽의 공업지대"가 아니라 이미 도심이었던 곳의 강변 재개발 부지에 지어진 것이었다.


이 경험은 도시재생 연구에서 현장 방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아무리 정교한 문헌 분석도 현장의 지리적 맥락, 실제 거리감, 기존 도시 구조와의 관계를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빌바오 구겐하임 프로젝트의 의미를 부정할 의사는 없다. 분명 이 프로젝트는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고립된 공업지역을 혁신적 인프라로 연결해 도시 전체를 견인했다"는 나의 해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실제로는 이미 잘 연결된 도심 지역의 유휴부지를 활용한 전략적 재개발에 가깝다. 문화시설을 외곽에 짓고 방치하지 않고 도심과 연결하려 했다는 점은 여전히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애초에 도심과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이지만, 신화적 서사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가 전 세계 도시재생 담론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런 세부적 사실 확인이 더욱 중요하다. 성공 사례를 다른 도시에 적용할 때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좋은 연구는 발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교한 이론도, 현장에서 직접 걸어보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문헌을 맹신하지 말고, 항상 현장에서 검증하라는 것이 빌바오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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