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출신 인플루언서가 70억원 투자를 받았다. 미국 최고 혁신 대학 총장은 "교수를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대우한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두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같은 미래를 말하고 있다. 창의성을 가진 개인이 조직의 중심이 되는 시대, 바로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의 도래다.
아나운서 출신 북 큐레이터 김소영이 자신의 브랜드 비플랜트로 알토스벤처스로부터 70억원을 투자받았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쿠팡과 배민을 키워낸 그 알토스가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 뉴스가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공동구매나 하는 사람'에서 벗어나 벤처캐피털들이 인정하는 '제도권 기업'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글로벌 트렌드라는 점이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아내 헤일리 비버는 자신의 뷰티 브랜드 '로드'를 출시 3년 만에 1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OEM 생산 플랫폼과 SNS 유통 플랫폼 덕분이다. 창의성을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 없이도 브랜드를 만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에는 제조 설비를 가진 자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창의성과 팬덤을 가진 자가 주도권을 쥔다.
생산 플랫폼(OEM/ODM), 유통 플랫폼(SNS/커머스), 자본 플랫폼(VC/대기업 M&A)이 모두 갖춰지면서, 크리에이터들이 독립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는 완전한 크리에이터 창업 생태계가 완성되었다.
두 번째 기사는 11년 연속 미국 최고 혁신 대학 1위에 오른 애리조나주립대(ASU) 이야기다. 마이클 크로 총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 대학 교수들은 프로스포츠팀처럼 경쟁한다.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ASU는 정부 지원이 총수입의 9%에 불과하다. 한국 국립대의 40~50%와는 대조적이다. 크로 총장은 "한국 대학에는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대학끼리 경쟁하라는 게 아니다. 교수들을 크리에이터처럼 대우하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게 만들라는 뜻이다.
ASU는 교수들을 크리에이터로 대우하고, 그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했다. 넷플릭스가 직원들을 '선수'로 보듯, ASU는 교수들을 '스타 선수'로 육성한다. 이것이 바로 크리에이터 경제에 대응하는 조직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크리에이터 경제를 프리랜서, 1인 기업, 자영업의 영역으로만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대기업도 궁극적으로 크리에이터 경제에 편입될 것이다. 신한은행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자의 16.9%가 N잡러이고, 30대 N잡러 중 크리에이터 비율은 28.4%에 달한다. 10명 중 3명이다. 직장인들은 회사 밖에서 이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왜 회사를 나가지 않고 부업으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는가? 회사 안에서는 크리에이터처럼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정형화된 업무를 수행하고, 상사의 지시를 따른다. 자율성도,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도 제한적이다.
당신의 회사는 어느 쪽인가? 크리에이터를 키우는 곳인가, 크리에이터를 떠나보내는 곳인가?
대기업이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 적응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외부의 독립 크리에이터를 키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 직원을 크리에이터로 만드는 길이다.
외부 축: 독립 크리에이터 생태계 지원
첫 번째는 외부의 독립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다. B2C 대기업의 전략은 명확하다. 외부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넘어, OEM/ODM으로 생산을 지원하고 유통 채널을 열어주며, 성공한 브랜드는 독립성을 보장하며 전략적으로 인수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코스알엑스, LG생활건강의 힌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B2B는 다르다. 맞춤형 생산과 마케팅이 중요한 전문 서비스에서 작동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GitHub로 개발자 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구글은 TensorFlow와 Android로, Meta는 React와 PyTorch로 오픈소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외부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혁신하도록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 생태계로 산업 전체를 이끄는 방식이다.
내부 축: 직원의 크리에이터화
두 번째는 내부 직원들을 크리에이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산업에서 필수적이다. B2C든 B2B든, 심지어 첨단산업이나 공공재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의 '프로스포츠팀' 문화를 보라. 직원을 선수로, 경영진을 코치로 규정한다.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위계를 최소화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ASU의 교수 성과급 시스템도 같은 맥락이다.
이 두 축이 함께 작동해야 진짜 크리에이터 플랫폼이다. 외부에서는 독립 크리에이터들이 쉽게 사업을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내부에서는 직원들이 크리에이터처럼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 이것이 크리에이터 경제 시대의 기업 생존 전략이다.
김소영과 ASU의 사례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왜 대기업 문화 혁신이 필요한가?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내부 직원의 크리에이터화를 시작해야 한다. 연공서열 중심 보상을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고, 프로젝트 선택권을 부여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직원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육성할 크리에이터’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어떤 인프라를 제공해야 하는가?
한국 국립대가 정부 지원 40~50%에 의존하는 동안, ASU는 9%로 줄이고 시장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는 조직을 안정적으로 만들지만, 구성원을 크리에이터로 만들 동기를 제거한다. 이제 정부는 보조금이 아니라 ‘크리에이터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OEM/ODM 네트워크 강화, 교육 프로그램, 초기 자본 접근성 향상 등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다.
브랜드 독립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M&A 사례처럼, 대기업들은 성공한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단순히 흡수하는 게 아니라 ‘독립성을 보장하며 함께 성장시키는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또한 사내 크리에이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빅테크처럼 외부 혁신가들에게 개방된 오픈 플랫폼을 운영해야 한다.
결국 모든 변화는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독립 크리에이터들이 쉽게 사업을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기업 내부 인재들이 크리에이터처럼 일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외부와 내부,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크리에이터 경제의 진짜 힘이 발휘된다.
김소영에게 70억을 투자한 알토스와, 교수들을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대우하는 ASU는 같은 미래를 보고 있다. 창의성을 가진 개인이 주도하는 경제, 그것이 바로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다.
첫 걸음은 간단하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내일부터 직원들에게 물어보라.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당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질문을 바꿔보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크리에이터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이한나, "'이제는 인플루언서 아니고 사장입니다'…VC들이 '콕' 찍은 곳은", 《매일경제》, 2025.10.08.
최인준, "성과 따라 보수… 美교수들, 프로 스포츠팀처럼 경쟁한다", 《조선일보》, 2025.10.09.
모종린, "제조업의 새로운 주역, 크리에이터 브랜드", 브런치, 2024.
모종린, "대기업에도 크리에이터가 왔다", 브런치, 2024.
모종린,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 김영사, 2024.
모종린, 『제3의 응전』, 21세기북스,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