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많은 논의가 AI의 기술적 능력과 한계에 집중되어 있다. 언제 AGI(인공일반지능)가 등장할지, 어떻게 안전하게 개발할지,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이런 질문들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기술 자본과 정치 권력의 결합이라는 정치경제학적 변화다.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통제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단순히 기업들의 전략 변화가 아니다. 기술, 자본, 국가 권력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21세기형 권력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1961년 아이젠하워가 경고했던 '군산복합체'가가 '기술-정치-군사 복합체'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AI 시대의 진짜 도전이다. 이것은 경제학만으로도, 기술 분석만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 정치경제학의 렌즈가 필요한 순간이다.
실리콘밸리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1960-70년대 실리콘밸리에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기술을 권력에 맞서는 개인 해방의 도구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애플을 만들던 시절, 그들은 거대 기업이 독점하던 컴퓨터를 개인의 손에 쥐어주려 했다. 구글은 "세상의 정보를 모두가 접근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엔 기술이 세상을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에 참여해 정부 효율부(DOGE)를 맡았다. 피터 티엘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 같은 벤처캐피털은 "기술가속주의"를 내세우며 암호화폐, 국방기술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올해 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팀 우는 "실리콘밸리가 과거 자신이 반대했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개인 데이터가 광범위하게 수집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의사결정 권한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그 과정은 불투명하다. 일부 기술 리더들은 민주적 과정을 비효율적이라 여기며, 시장에서의 성공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최근 학계와 언론에서 두 가지 설명이 주목받고 있다.
첫째는 창업자 성향에 주목하는 설명이다. 케이트 스콧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실리콘밸리 리더들의 "창업자 모드(Founder Mode)"를 분석했다. 창업자들이 회사를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도구로 보면서, 견제와 균형보다는 직접 통제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권위주의적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는 설명이다. 1995년 영국 학자 바브룩과 카메론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에서 실리콘밸리의 모순을 분석했다. 히피의 반체제 운동과 기업가의 시장 논리라는 상충되는 가치가 공존하고 있었고, 언젠가 이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봤다. 실리콘밸리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시장 원리를 절대시했다. 국가 개입을 거부하면서도 국방부 연구비로 성장했다. 평등을 말하면서도 극심한 불평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두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의 성향은 왜 특정 방향으로 형성되었는가? 구조적 모순은 왜 지금 이 시점에 특정한 방식으로 표출되는가?
정치경제학은 더 근본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자본은 끊임없이 축적되고 집중되며, 그 과정에서 권력과 결합하거나 권력을 포획한다.
초기 실리콘밸리는 기술 자본이 기존 권력 구조에 도전하던 때였다. 분산된 권력, 정보의 민주화, 개인의 역량 강화라는 가치가 실제로 자본 축적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자본이 축적되고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이제는 국가 권력과 결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변화는 개인의 타락도, 우연한 모순의 폭발도 아니다. 자본 축적 논리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것이 바로 '신(新)군산복합체'의 형성이다. 기술 자본, 국가 권력, 군사 산업이 하나의 권력 블록으로 결합하는 구조적 변화다.
정치경제학 분석에서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 민주주의는 왜 실리콘밸리의 권력화를 견제하지 못했을까이다. 하나의 가능성은 미국 정치가 정체성과 문화전쟁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과거의 자본과 노동 등 계급이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가설이다.
두 번째 질문은 앞으로의 대응이다. 실리콘밸리가 현재의 방향을 스스로 바꿀 수 있을까?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내부에서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자본의 논리가 계속 작동하고, 권력과의 결합은 더 깊어질 것이다.
따라서 원인 분석과 대안 모두 정치와 경제의 상호 작용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기술 분석만으로도, 경제학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본이 어떻게 축적되는지,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시민사회는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기술 분석을 통합하는 정치경제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변화는 정치경제학의 시간이 왔음을 알려준다.
기술과 자본, 국가 권력이 새롭게 결합하는 이 시대에, 단순히 시장의 효율성이나 기술의 혁신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의 작동 방식, 제도의 역할, 역사적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도는 누구의 이익을 반영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답은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민주적 숙의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Barbrook, R., & Cameron, A. (1995). The Californian Ideology. Science as Culture, 6(1), 44-72.
Mumford, L. (1964). Authoritarian and Democratic Technics. Technology and Culture, 5(1), 1-8.
Mumford, L. (1967). The Myth of the Machine: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Scott, K. (2024, October 11). "Founder Mode Explains the Rise of Trump in Silicon Valley." The New York Times.
Sorkin, A. R., et al. (2024, December 23). "Silicon Valley Heads to Washington." The New York Times DealBook newsletter.
Wu, Tim (2025, March 2). "Silicon Valley Is Becoming Everything It Once Hated."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