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호텔의 아이콘은 어디로 갔는가
뜻밖의 소식
솔직히 몰랐다. 작년에 에이스 호텔이 매각되었다는 사실을. 2025년 9월, 에이스 호텔이 일본의 세이부 프린스 호텔스에 약 9,000만 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세이부 프린스라는 이름은 에이스 호텔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컨벤션과 MICE, 골프와 스키 리조트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일본의 대형 호텔 그룹. 에이스 호텔 CEO는 '세이부 프린스에는 없었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 소식을 듣고 한참 멍했다. 에이스 호텔은 나에게 단순한 숙박 브랜드가 아니었다. 에이스 호텔이 있는 도시에 가면 가능한 한 거기서 묵는 것이 일종의 원칙이었을 만큼, 그 공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 신뢰가 어디서 왔는지를 이번 소식을 계기로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도시재생 호텔의 문법을 만들다
에이스 호텔은 1999년 시애틀에서 시작했다. 창업자 알렉스 칼더우드(Alex Calderwood)와 동료들이 벨타운 지구의 낡은 직업 훈련원 건물을 인수해 호텔로 바꾼 것이 출발이었다. 이미 바버숍 체인과 이벤트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시애틀 창작 생태계와 깊이 연결된 이들이었다.
에이스 호텔이 호텔업에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세 가지가 결합해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다. 도시재생, 커뮤니티 공간, 그리고 로컬 큐레이션.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원도심 로컬 브랜드 생태계의 앵커가 된다. 에이스 호텔이 처음으로 그것을 보여줬다.
구체적인 작동 방식은 이랬다. 먼저 역사적 건물을 고른다. 신축이 아니라, 그 도시가 잊어버리려 했던 낡은 건물이다. 1912년 포틀랜드의 클라이드 호텔, 1927년 로스앤젤레스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극장, 1907년 피츠버그의 YMCA 건물. 에이스 호텔은 그 건물들이 가진 시간의 층위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웠다. 다음으로 그 도시에 뿌리를 내린 로컬 브랜드를 들인다. 포틀랜드에는 스텀프타운 커피와 클라이드 커먼 레스토랑이 들어왔다. 체인 카페가 아니라, 이미 그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던 브랜드들이었다. 그리고 로비를 연다. 투숙객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렇게 호텔이 동네의 거실이 되면, 그 주변으로 독립 서점, 갤러리, 편집숍, 레스토랑이 하나씩 따라붙기 시작한다. 에이스 호텔은 생태계의 입구였다.
그 결과가 뉴욕 노매드, 런던 쇼디치, 피츠버그 다운타운이다. 에이스 호텔이 들어가기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이 원도심 거리들이, 에이스 호텔이 들어온 뒤 그 도시에서 가장 활기 있는 동네로 바뀌었다. 새로운 도시에 진출할 때 에이스 호텔은 통상 2년에서 5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역사를 읽고, 그 도시의 로컬 파트너를 찾고, 커뮤니티와 신뢰를 쌓는 시간이다. 그 신중함이 에이스 호텔 특유의 밀도를 만들었다.
피츠버그, LA, 그리고 뉴욕
내가 에이스 호텔에서 묵은 곳은 피츠버그, 로스앤젤레스, 뉴욕이었다. 에이스 호텔이 있는 도시라면 가능한 한 그곳에 머물렀다.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그 특유의 공기, 낡은 건물과 현재의 삶이 어색하지 않게 섞여 있는 방식, 직원이 마치 그 동네 사람처럼 동네 이야기를 해주던 기억들.
그중 피츠버그는 특별했다. 1907년 YMCA 건물을 살려낸 공간이었는데, 높은 천장과 두꺼운 벽돌벽이 그대로였다. 오래된 건물이 가진 품위와 에이스 호텔 특유의 활기가 겹쳐 있었다. 그곳에서 에이스 호텔이 새 도시에 들어갈 때 보통 2~5년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작은 사실 하나였지만 그것이 그 공간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에이스 호텔 교토는 아직도 나의 버킷리스트다. 2020년 건축가 구마 겐고(隈研吾)가 설계해 오픈한 교토점은 에이스 호텔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진지한 작업이었다. 언젠가는 꼭 묵어볼 것이다.
에이스 호텔이 남긴 것들
에이스 호텔의 진짜 레거시는 그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이 모델을 따라 전 세계에서 생겨난 수많은 호텔들이다. 가장 직접적인 계승자는 런던의 혹스턴 호텔(The Hoxton)이다. 2006년 쇼디치에서 시작해 지금은 암스테르담, 파리, 베를린, 뉴욕, 시카고 등 20여 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오픈 하우스 호텔'이라는 슬로건 아래, 로비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고 로컬 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식은 에이스 호텔의 문법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했다. 다만 혹스턴은 현재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그룹 아코르(Accor)의 산하 엔니스모어(Ennismore)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마에바시(前橋)의 시로야 호텔(Shiroiya Hotel)이 주목받는다. 300년 역사의 료칸이 2008년 문을 닫은 뒤, JINS 안경 창업자 다나카 히토시가 고향 도시를 되살리겠다는 생각으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藤本壮介)에게 설계를 맡겨 2020년 다시 열었다. '도시의 거실'을 표방하며 로컬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쓰는 공간을 지향한다. 에이스 호텔과 결이 닮아 있지만, 규모는 25개 객실에 불과하다. 그 작음이 오히려 이 호텔의 진지함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그 영향은 뚜렷하다. 제주의 플레이스캠프 제주는 '호텔이 아닌 캠프'를 표방하며 투숙객을 '플레이어'로 불렀다. 서울 상도동의 핸드픽트호텔은 2018년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모노클(Monocle)》이 선정한 세계 100대 호텔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 재생을 위한 주민들과의 교류, 아티스트와 청년 창업자를 지원하는 협업 프로그램. 관광지 서울이 아닌 원도심 서울의 모습을 투영하려 했던 이 호텔이 에이스 호텔 모델의 한국판에 가장 가까운 사례였다.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감성 게스트하우스들, 낡은 건물을 고쳐 지역 작가의 작품을 걸고 동네 로스터리 커피를 들인 그 공간들 모두가 에이스 호텔이 만들어낸 문법의 자식들이다.
에이스 호텔이 가르쳐준 것
에이스 호텔의 역사는 로컬 브랜드가 성장할 때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로케이션과 건축, 커뮤니티 라운지의 발명,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 이 세 가지가 에이스 호텔이 업의 개념을 바꾼 지점이었다.
그러나 에이스 호텔의 역사는 동시에 냉혹한 교훈도 남겼다. '로컬은 로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이스 호텔은 설립 후 20년 가까이 직접적인 외부 투자 없이 운영 계약(management contract) 방식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23년 오리건의 투자사 소티스 홀딩스가 8,500만 달러에 브랜드를 인수한 것이 외부 자본이 경영권을 쥔 첫 전환점이었고, 불과 2년 뒤 세이부 매각으로 이어졌다. 확장의 압력과 로컬 정체성은 공존하기 어렵다. 투자자의 요구를 만족하면서 동시에 장소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임팩트 투자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에이스 호텔이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만들었던 포틀랜드, 피츠버그,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올리언스의 호텔들은 모두 2020년대에 문을 닫았거나 다른 브랜드로 이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이스 호텔이 만들어놓은 장소들은 에이스 호텔 없이도 살아남았다. 장소는 브랜드보다 오래 산다.
다음 에이스 호텔은 누구인가
에이스 호텔이 남긴 빈자리가 크다. 단순히 브랜드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 호텔의 아이콘이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로컬 호텔은 어떤 모습일까. 에이스 호텔을 대체할 아이콘은 이미 어딘가에 있는가.
힌트는 곳곳에 있다. 시로야 호텔처럼 도시 규모 전체의 재생을 목표로 삼는 호텔, 혹스턴처럼 로컬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복수 도시로 확장하는 브랜드, 그리고 한국 전국의 이름 없는 감성 숙소들.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그 건물의 이야기를 지우지 않고, 이미 있는 것들과 협력하며, 투숙객을 소비자가 아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대한다.
다음 아이콘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느 도시의, 아직 이름 없는 어느 거리에서 지금 준비를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이스 호텔이 그랬던 것처럼, 2년에서 5년을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