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자산, 연희동의 산업

by 골목길 경제학자

연희동의 자산, 연희동의 산업


지방선거 시즌이 다가오면 지역 발전의 구호는 천편일률적이다. 비서울 지역은 대규모 외부 기업 유치를, 서울은 생활환경 개선과 복지 확충을 약속한다. 하지만 두 목소리의 본질은 같다. 지역 스스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보다, 정부 예산을 얼마나 더 많이 가져와 적재적소에 쓰겠느냐는 분배의 약속에 가깝다. 전국 어디에서도 지역 고유의 자산을 발견하고 이를 산업으로 일구려는 진지한 노력은 보기 힘들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지방자치의 씁쓸한 현주소다.


지역 경제 논의가 빈곤한 이유는 국가 단위의 거대 산업 육성론에만 매몰되어 진정한 지역 자산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희동의 정취와 미식을 즐기면서도 "연희동의 산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연희동은 단순히 소비가 일어나는 상권이 아니다. 이곳에는 이미 많은 강소기업과 대기업 본사가 주택가와 공존하며 독특한 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연희동에 본사를 둔 국내 최대 의약품 유통 기업 지오영은 한국 의료 물류의 심장이 조용한 주택가에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연희로의 랜드마크인 대림통상은 도비도스 브랜드로 잘 알려진 수전 금구 시장의 강자로, 이곳에 본사를 둠으로써 연희동에 제조 기반 지식 산업의 위상을 부여한다. 국내 원두커피 점유율 1위인 한국맥널티는 커피 제조와 유통을 넘어 제약 사업까지 확장하는 상장사로서 식품 산업의 고도화를 상징하며, 한국다이와와 한국미즈노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법인들도 연희동의 품격 있는 이미지를 선택해 둥지를 틀었다. 여기에 국가무형유산인 문배주양조원 본사가 더해져, 로컬 자산이 어떻게 현대적 산업으로 치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업 생태계와 결합하는 연희동만의 독보적인 자산은 세계적 수준의 외국인 정주 인프라다. 실제로 연희동은 이미 작은 아메리칸 타운, 차이나 타운, 재팬 타운이 공존하는 다국적 주거 특구다.


미국계 커뮤니티의 거점은 1912년 설립된 서울외국인학교와 드와이트 외국인학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울외국인학교를 중심으로 영어권 커뮤니티의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드와이트 외국인학교는 이 생활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교육 앵커다.


화교 커뮤니티는 연희동 일대에 오랜 뿌리를 두고 있다. 연희동 화교소학교를 중심으로 대를 이어 운영해 온 중식당과 화교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연남동 일대로 이어지는 중국계 주거·상업 집적은 서울에서 가장 자생적인 차이나타운 생태계를 구성한다.


일본계 커뮤니티와 관련해서는 상암 DMC 인근의 서울일본인학교가 교육 앵커로 존재하고, 연희동 골목 깊숙이 자리한 나카가와 히데코의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은 20년 넘게 일본 요리 문화를 이어온 동네의 명소다. 연희·연남 상권은 일본인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입소문 난 목적지로, 일본인 생활 인프라가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네다.


사러가쇼핑센터의 글로벌 식자재 유통망, 외국인 전용 교회, 신촌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는 이 세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는 결정적 인프라다. 외국인 엘리트 인력들이 선호하는 이 압도적인 생활환경 자체가 연희동의 핵심 산업 기반인 셈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연희동을 단순히 보호해야 할 주거지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시형 외국인 특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여의도가 국제금융특구로서 금융 산업과 정주 여건을 결합해 서울의 경쟁력을 높였듯, 연희동 역시 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는 외부에서 거대한 공장을 들여오는 기회발전특구와는 결이 다르다. 연희동의 인프라 위에 외국계 기업 지사, 국제기구, 지식 서비스 기업이 모여들 수 있도록 행정 및 세제 특례를 제공하는 전략 특구 모델이 필요하다. 외국인도 일터와 삶터가 가까운 직주근접을 원하며, 연희동은 이미 그 준비가 끝난 동네다.


지방자치는 정부 예산을 가져와 나눠주는 행위가 아니다. 연희동처럼 자생적으로 형성된 자산과 생태계를 산업화하여, 동네에서 먹고살고 통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연희동을 외국인 특구로 지정해 글로벌 지식 산업의 허브로 만드는 것, 그것이 지방자치의 허무함을 극복하고 우리 동네가 세계와 경쟁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