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과 인간의 형식

by 골목길 경제학자

시인 김수영과 인간의 형식


4·19다. 강릉 출장길에서 김수영의 선집 『김수영 디 에센셜』(민음사, 2023)을 읽었다. 김수영(1921~1968)은 4·19 혁명 전후 한국 현대시의 가장 치열한 목소리였다.


4·19 기념일 때문에 읽은 것은 아니다. 평소 1950~1960년대 한국 지식인의 세계관과 김수영의 자유주의 철학이 궁금했다.


선집에 실린 글 중 가장 오래 머문 것은 그가 타계하기 직전 발표한 산문이었다. 「시여, 침을 뱉어라」(1968)는 시와 자유, 그리고 시인의 존재 방식을 정면으로 다룬 글로, 그의 시론 중 가장 압축적이고 강렬한 것으로 꼽힌다. 그는 여기서 시를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 — 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 — 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동시에"다. 시를 쓴다는 것은 머리로 언어를 고르거나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아니다. 미는 주체와 밀리는 대상이 따로 없다. 온몸이 온몸을 밀고 나가는 순간, 행위자와 행위가 하나가 된다.


김수영에게 시작(詩作)은 결국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내가 읽기에 그것은 관념이 아닌 전존재적 실천, 삶의 현장과 신체가 분리되지 않는 투쟁이다. 이 대목이 유독 마음에 걸린 것은, 요즘 내가 골몰하는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 앞서 답한 이들이 있다. 1차 기계 시대, 즉 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던 시대에 맞선 것은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1834~1896)였다. 그는 미술공예운동을 이끌며 장인의 손을 통한 창조적 노동이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공장이 빼앗아간 것—손의 감각, 재료와의 씨름, 만드는 기쁨—을 되찾으려 했다.


2차 기계 시대는 달랐다. 핵무기와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상징하는 이 시대에 기계는 이제 인간의 노동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이에 맞서 미국의 지식인들은 몸, 에로스, 무의식, 시, 본능, 동양 종교, 신화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공통분모는 하나였다. 이성·규율·생산성에 맞서는 몸과 감각과 시.


2차 기계 시를 대표하는 지식인이 문화평론가 노먼 브라운(1913~2002)이었다. 그는 『삶에 반하는 죽음』(1959)에서 프로이트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며, 억압에서 해방된 시인을 에로스적 신체성의 담지자로 정의했다. 이성과 규율로 길들여진 근대적 인간이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세계와 온전히 관계 맺는 존재로서의 시인이었다. 이 책은 출판 직후 미국 학생 운동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김수영은 브라운과 같은 2차 기계 시대를 살았다.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 『인카운터』(Encounter), 『하퍼스』(Harper's), 『애틀란틱』(The Atlantic)을 탐독하며 미국과 영국의 지적 흐름을 꾸준히 주시한 그가 시와 몸을 연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세 인물이 가리키는 인간형은 결국 하나다. 머리(지능)만으로 작동하는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오감(五感)의 현장성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빚어내는 주체. 시대도 맥락도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인간형을 향해 있었다.


AI는 언어를 조합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며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2각(視覺·聽覺)의 세계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 세계를 처리한다. 시각과 청각을 넘어 촉각·미각·후각으로 세계를 감지하고, 그 전체를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동시성—그것은 AI가 끝내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인간의 고유성은 관념의 유희에 있지 않다. 자신의 온몸을 던져 가치를 창조하는 것, 그 고된 과정 끝에 도달하는 세계에 대한 사랑—김수영의 말로 돌아오면, 그것이 시의 형식이자, AI가 끝내 가질 수 없는 인간의 형식이다.


#제3의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