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by 골목길 경제학자

대구YMCA 2026 제1회 청년포럼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 William Morris로부터 배우는 길

윌리엄 모리스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년이 됐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이 주제의 세미나에 처음으로 발제자로 초대받았다. 많이 설레었고 대구YMCA의 치밀한 준비 덕분에 최근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윌리엄 모리스의 철학을 더 많이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파트 1. 강연 요지

이번 포럼에서 나는 윌리엄 모리스(1834~1896)를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읽는 작업을 발제했다. 모리스는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의 중심인물로, 한국에서는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본질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상가였다.

강연의 출발점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1850년대 맨체스터에서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신하던 시대에 던져진 질문 — "노동이 기쁨이 아니라면, 그것은 노동인가" — 이 170년의 시간을 건너 AI 시대의 서울에서 다시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스의 답은 다섯 가지 축으로 전개됐다. 아름다운 노동, 삶 속의 예술, 아름다운 건축과 환경, 장인 유토피아, 그리고 지역 장인 공동체. 특히 그는 "(중세에는) 어느 마을이든 화가와 조각가가 있었고, 배우도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창조는 소수 천재의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의 보편적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1861년 Morris & Company를 창업해 최초의 현대 디자인 기업을 만들었고, 1891년 Kelmscott Press를 세워 아름다운 책을 출판했다. 그가 지킨 스튜디오 생산 방식의 전통은 바우하우스를 거쳐 현대 디자인 산업으로, 그리고 오늘날 크리에이터 경제로 이어졌다.

내 강연의 두 가지 핵심 논지는 오감과 브랜드였다. AI가 시각·청각 기반의 디지털 예술과 추상적 사고까지 대체해 가는 시대에, 신체적 감각과 현장성에 기반한 인간 고유의 활동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고유성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 브랜드다. 성수동과 연희동의 청년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가는 로컬 생태계는 모리스가 꿈꾼 지역 장인 공동체가 한국에서 실현된 현장이라고 주장했다.

파트 2. 참여자 조별 토론

소그룹 조별 토론 후 전체 토론은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아래는 내가 들은 주요 논점들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 1. William Morris가 오늘 살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참여자들의 답변은 흥미롭게도 AI와 인간의 관계라는 주제로 수렴했다. 한 참여자는 모리스가 인간의 인격과 감성을 학습시킨 AI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과 다시 대화할 수 있는 기술, 즉 인간의 기억과 관계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철학을 전공한 참여자는 지젝의 자유 개념을 인용하며 모리스는 자신의 영감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예술가적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봤다. 한 학생은 지금 한국에 태어났다면 모리스도 똑같이 입시와 대학의 경로를 밟지 않았겠냐고 물었다. 시대의 구조 안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통찰이었다.

질문 2. 청년은 어떤 삶의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

조별 토론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의미, 오감, 브랜드, 공동체였다.

AI가 아직 대체하지 못하는 후각·촉각 등 오감 기반의 활동에 주목하는 의견이 있었다. 가치 판단과 선택의 영역,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돌봄과 상담의 영역도 인간 고유의 일로 꼽혔다. 효율은 이미 갖춰지는 시대이므로 이제는 의미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방향이라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손 편지를 쓰고 오토매틱 시계를 차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효율보다 의미를 선택하고 있다는 구체적 사례도 나왔다.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핵심 전략이라는 의견, 크리에이터들이 협력해 사회적 자본을 만들고 로컬 공동체를 구축하는 공동체적 전략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사회가 만들어준 가짜 욕망이 아닌 자신의 진짜 욕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청년의 출발점이라는 논의로 마무리됐다.

파트 3. 질의응답

전체 토론 말미에 두 가지 질문이 나에게 직접 향했다.

질문 1.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수동적인 사람에게는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 인간은 철학이나 예술로 소일한다고 오랫동안 말해왔다. 그런데 현재 AI의 동향을 보면 그 가정이 흔들린다. 추상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은 AI가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고, 시각·청각 기반의 디지털 예술도 빠르게 인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신체적 감각에 기반한 예술, 현장성과 관계성이 본질인 활동이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모리스가 손의 노동, 자연, 공동체를 그토록 강조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예술을 일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으로 여겨왔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모든 사람 안에 보헤미안 기질이 잠재해 있다. 단지 산업사회가 그것을 키울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통찰이 있다. 가장 엄밀한 과학적 작업인 학술 논문조차 논리 구성이 30%, 표현과 전달이 70%라고 나는 지도교수에게 배웠다. 설득력, 표현력, 전달력, 순발력, 장악력 — 이것들은 예술가의 언어지만 동시에 모든 지적 작업의 핵심이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자체가 산업사회가 만든 허구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함께 만들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닐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그것이 인간에 더 가까운 정의일 수 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이미 예술적 활동이다.

질문 2. 발제자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좋은 삶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를 통해 경제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이다. 거창한 정의가 아니다. 지금 하는 집필과 강의와 현장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활동이 청년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기대.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리스가 꿈꾼 것도 결국 이것이 아닐까 한다.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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