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바이센테니얼 맨〉을 다시 봤다. 1999년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다. AI가 인간성을 논의하는 지금, 한번은 봐야 할 영화다.
가사 도우미 로봇 앤드류는 감정과 창의성을 갖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200년에 걸쳐 인간의 외모와 감정, 사랑, 죽음까지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정받으려 한다. 결국 법원은 그를 인간으로 선언하지만,
그 순간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자(탄생연도)들은 시대마다 다르게 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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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BC 470) → 자기 자신을 아는 존재. "너 자신을 알라."
플라톤 (BC 428) → 영혼을 가진 존재. 이성으로 이데아를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이성적 동물 + 사회적 동물.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 (354) →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 그러나 원죄를 지닌 불완전한 피조물.
토마스 아퀴나스 (1225) → 이성과 신앙을 함께 가진 존재. 신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존재.
데카르트 (1596) → 생각하는 존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크 (1632) → 경험하는 존재. 인간은 백지(tabula rasa)로 태어나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흄 (1711) → 감정의 존재.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감정이 먼저 결정한다.
아담 스미스 (1723) → 공감하는 존재.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 도덕과 사회의 토대다.
칸트 (1724) → 자율적 도덕 주체.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
쇼펜하우어 (1788) → 의지하는 존재.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 욕망과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소로 (1817) → 자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 단순한 삶만이 인간의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마르크스 (1818) → 노동하는 존재.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윌리엄 모리스 (1834) → 만드는 즐거움을 아는 존재.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창조적 기쁨이어야 한다.
니체 (1844) → 스스로를 극복하는 존재.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초인을 향한 과정이다.
카시러 (1874) → 상징적 동물. 언어, 신화, 예술 — 인간은 상징을 통해서만 세계를 경험한다.
하이데거 (1889) → 현존재(Dasein). 존재의 의미를 묻는 유일한 존재. 죽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본래의 인간이 된다.
한나 아렌트 (1906) → 행위하는 존재. 공적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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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경험하고, 감정에 움직이고, 공감하고, 의지하고, 만들고, 상징에 충성하는 존재. 철학자들이 시대마다 정의한 인간의 조건들이다.
앤드류는 그 조건들을 하나씩 채워갔다. 스스로를 알려 했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기쁨을 알았으며, 사랑하는 이의 감정에 공감했고,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의지를 느꼈으며, 자유와 존엄이라는 상징에 목숨을 걸었다. 200년에 걸쳐 그는 철학자들이 말한 인간에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앞에 섰다. 나는 무엇인가.
그의 답은 단순했다. 사랑하고, 늙고, 죽을 수 있는 존재. 하이데거는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본래의 자신이 된다고 했다. 앤드류는 그것을 알았다. 불멸을 포기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영원히 살 수 있었지만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이 그가 찾은 인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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