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역발전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부산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질문하고 싶다. 부산이 건국 세대가 기대한 대로 한국의 오사카가 됐다면 한국은 어떤 나라가 됐을까? 적어도 국가 엘리트들이 한지역에 모여 살며 그 지역을 발판으로 문화를 독점하고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다.
부산이 서울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도시가 됐어도 지역 문제는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수도권 집중이 아닌 남북 집중을 토론했을 것이다. 남북 집중이란 인재와 기업이 서울과 부산으로 양분돼 서울과 부산 사이의 지역이 공동화되는 현상이다.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의 슈퍼스타 도시와 내력 지역의 격차가 계속 악화되는 미국의 양안(Bi-coastal)-내륙 양극화를 연상하면 된다.
수도권 집중과 남북 집중 둘 다 지역 불균형을 의미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집중의 일극 체제에서는 지역 간 경쟁이 불가능하지만, 남북 집중의 양극 체제는 서울과 부산의 경쟁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집중이 독점체제라면 남북 집중은 복점(Duopoly) 체제다. 복점체제가 완전경쟁체제보다는 못하지만 독점체제보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편익을 가져다준다.
왜 부산이 서울과 경쟁하는 도시가 되지 못했을까? 규모의 문제로 돌리기는 어렵다. 부산은 인구 350만 명의 대도시며, 부산, 울산, 경남을 합친 동남권의 인구는 800만 명에 이른다.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중견국과 비슷한 규모의 경제다. 동남권은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단지다. 반도체, 휴대폰, 가전, 기계, 화학, 조선, 자동차, 철강 등 8대 기간산업 중 6개 산업의 생산기지가 동남권이다.
문제는 기업 생태계다. 동남권은 거대 규모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기업 생태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력공장을 동남권에 둔 대기업 중 본사를 동남권으로 옮긴 기업은 없다. 더 큰 문제는 지난 30년 동안 동남권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산업이나 대기업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000년 이후 상장된 기업 중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미래는 달라야 한다. 부산이 중심이 된 동남권이 독립적인 지역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미래산업으로 떠오른 창조산업에서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한다. 창조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산업단지로 조성하는 산업이 아니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도시 자체가 창조인재를 모으는 창조도시가 돼야 한다. 창조도시는 일반적인 도시 인프라 외에 창조인재가 선호하는 도시문화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도시문화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라이프스타일이다.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많은 창조도시가 자신의 가치와 문화를 키워 발전한다.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이 라이프스타일을 지역 산업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그리고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우리가 밖으로 눈을 돌리면 자신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성공한 창조도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과연 부산이 한국을 대표하는 창조도시가 될 수 있을까? 과거와 같이 서울을 따라가는 모델로는 불가능하다. 서울과는 다른 도시 모델과 라이프스타일로 승부해야 한다. 살고 싶은 도시 순위에서 제주와 항상 선두를 다툴 정도로 라이프스타일 자원이 많고 삶의 질이 높은 부산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 한국 지역의 미래는 부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문화 정체성을 더 명확하게 만드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부산은 이미 지역 고유의 가치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부산시는 2013년 직할시 승격 50주년 기념으로 부산의 미래 가치를 선언했다. 부산시가 선정한 부산 미래의 5대 가치는 "△나와 우리를 아우르는 개방적인 포용성 △화끈한 기질과 끼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문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성 △바다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해양성 △생태적 환경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삶의 쾌적성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생활 속의 의리와 화합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인 의리성이다" (부산시 부산미래가치위원회).
5대 부산 가치 중 해양성이 부산이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부산이 현재 자랑하는 도시 매력도 모두 바다와 해양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 다양성 관점에서 보면 서울이 항구도시가 아닌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되는 도시는 대부분 항구도시다. 서울이 시드니처럼 멋진 해변까지 가졌다면 부산, 제주, 강릉 등이 지금처럼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현재 고유의 해양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가? 부산을 포함한 한국의 많은 항구도시가 해양성을 정체성으로 제시하는데 솔직히 그 해양성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물류산업과 수산업에서 이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산업은 성장산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항구도시는 해양성을 주로 관광자원으로만 활용하고 있고, 관광산업만으로 자생적인 산업기반과 세계적인 기업을 키우기는 어렵다.
항구도시에 필요한 것은 매력적인 해양 라이프스타일이다. 일부 도시가 해양스포츠를 미래 산업으로 이야기하지만 아직 해양스포츠를 생활화하고 이를 통해 인재와 산업을 유치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부산 송정해변이 부산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미래를 제시한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송정해변은 서프(Surf) 문화의 중심지다. 해마다 늘어나는 서퍼(Surfer)가 일 년 내내 서핑을 즐기고, 서퍼와 그들을 위한 숙박과 상업시설이 어우러져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룬 곳이다. 서프 산업의 경제적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서핑 인구가 몇 만 명으로 늘어나도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중요한 산업이 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서프 문화는 파괴적인 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서퍼는 미국인의 로망이고, 모든 미국 젊은이가 한 번은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캘리포니아의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서프 문화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핑에 적합한 기후와 자연환경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서는 서프 산업이 중요한 경제기반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퍼 패션 브랜드, 서프보드 제작 회사가 많이 배출했다.
그래서 송정해변의 서프 문화에 주목해야 한다. 송정해변을 거닐다 보면 서핑이 매력적인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스포츠임을 느낄 수 있다. 요팅(Yachting) 도 라이프스타일 스포츠지만 부유층의 스포츠라는 한계가 있다. 서프 문화의 핵심 교훈은 서프 문화 자체가 아니다. 항구도시의 미래가 서프 문화와 같은 대중적이면서 차별적인 해양문화의 개발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핑과 같은 차별적 라이프스타일로 개척할 수 있는 산업은 해양 스포츠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매드, 스타트업, 로컬 벤처, 메이커 등 창조 인재들이 선호하는 창조산업도 유망하다. 해양 스포츠가 활발한 해변에 서울 홍대와 성수동과 같은 문화가 살아있는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도시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가능한 미래다. 도시산업 생태계의 최적지는 낮은 건물, 아기자기한 길, 서핑스쿨 등 골목상권 조성에 유리한 도시 디자인과 문화를 갖고 있는 송정해변이다.
기존 지역 산업 중에서도 유망한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존재한다. 한때 부산 경제를 견인한 신발산업이다. 최근 해외로 떠난 신발산업이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다. 해외로 시설을 이전했던 학산과 트렉스타뿐 아니라 처음부터 해외에서 창업한 정우와 블루인더스도 부산으로 생산 시설을 옮겼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고려 TTR과 화인은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원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은 세계적 규모의 신발 생산기지였다. 부산 덕분에 한국은 1988년 단일 업종으로는 최고액인 37억 달러 규모를 수출하며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위 신발 수출국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OEM 방식의 하청 생산 공장이 주를 이뤘던 부산의 신발산업은 곧 그 한계에 부딪혔다.
프로스펙스(국제상사)와 르까프(화승그룹) 같은 독립 브랜드가 있었지만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실패하다 보니, 경제성장으로 임금이 오르자 곧바로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신발 업체들은 생산거점을 부산에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속속 옮겼고, 결국 영화를 자랑했던 부산의 신발 산업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신발 기업들이 부산으로 귀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내 운동화 공장이 중국이나 베트남 공장보다 수준 높은 기술력과 생산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의 품질은 이미 정평이 나서 같은 제품이라도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찾는 외국인 구매자가 적지 않다. 부산시는 신발 시장 변화에 부응해 ‘첨단신발융합허브센터’를 설립했다. 센터는 관련 기업들을 한 지역에 집중시켜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부산은 다시 찾아온 이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는 마케팅과 R&D 능력을 보강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필자는 부산의 신발 산업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만만치 않은 도전자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라이벌은 미국 포틀랜드다. 포틀랜드는 미국 아웃도어와 스포츠 산업의 중심지다. 나이키 본사와 아디다스 미주 본사를 필두로 300여 개의 운동화 기업이 밀집해 있고, 지금도 언더아머(Under Armour), 킨(Keen), 아이스브레이커(Icebreaker), 야키마(Yakima)와 같은 아웃도어 기업들이 포틀랜드로 이전하거나 기존 포틀랜드 사업장을 확장하고 있다.
포틀랜드가 운동화 산업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핵심 인력이 집적된 데 있다. 엔지니어링, 디자인, 마케팅, 광고, 유통, 부가 서비스 등 운동화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업 활동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산업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가 집중돼 있다는 점은 운동화 생산의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포틀랜드의 핵심 자산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운동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명확해진다. 하이테크 창업 인재가 실리콘밸리로 몰린다면, 운동화 인재는 포틀랜드로 떠난다. 포틀랜드의 또 다른 자산은 지역 소비시장이다. NPD 마켓 리서치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포틀랜드에는 워싱턴 D.C. 와 미니애폴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스포츠 용품 소비시장이 형성돼 있다. 포틀랜드가 다른 두 도시보다 인구가 적은 것을 고려할 때 인구당 소비 수준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높을 것이다. 포틀랜드 소비자는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소비자이자 혁신적인 운동화와 아웃도어 상품을 선호하는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로 정평이 나 있다. 포틀랜드 기업들이 선도적인 기술과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마니아층 소비자의 관심과 참여가 깔려 있다.
이렇게 막강한 포틀랜드와 경쟁하려면 단순히 마케팅과 R&D 능력을 강화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1980년대에 부산의 신발 산업이 쇠퇴했던 것도 마케팅과 R&D 능력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부산에는 특별한 신발 소비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발 산업 자체는 호황이었지만 그것이 소비문화와 연결되진 않았다. 쉽게 말해 부산 시민이라고 해서 특별히 운동화를 더 많이 신을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부산 시민이 다른 도시보다 더 다양한 운동화를 더 많이 신어야 한다. 그래야 포틀랜드처럼 생산과 소비, 테스트,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필자는 부산 시장을 비롯해 지도자들이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을 것을 제안한다. 요즘 젊은이는 정장이나 세미 정장에도 운동화를 신으며 스포티한 매력을 뽐낸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들이 그렇게 지역의 특성을 살린 패션센스를 발휘한다면, 부산에 아웃도어 마니아 문화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은 산과 바다를 함께 품은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고 기후도 비교적 온화한 편이어서, 아웃도어 문화의 중심지로 자라날 만한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런 잠재력을 살릴 수 있다면 도시의 경쟁력은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다. 부산이 포틀랜드와 세계 신발 산업의 중심지를 두고 경쟁하려면, 기업들만 나서서는 안 된다. 부산 시민도 포틀랜드 시민과 경쟁해야 한다. 부산의 민관산(民官産)이 힘을 모아 포틀랜드를 넘어서는 세계 신발 산업, 아웃도어 산업의 중심 도시를 이루어내길 기대해본다.
김민수 교수는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에서 부산 정체성을 멜티플렉스로 규정한다. 부산이 그만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지역이 모인 도시다. 곳곳의 산으로 분리된 부산은 어느 도시보다도 골목 자원이 풍부하다. 도시관광은 이미 골목상권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타임스가 부산을 2017년에 꼭 가봐야 할 곳 52개 장소 중 하나로 추천한 것이다. 부산을 왜 추천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바다와 해수욕장 때문일까? 아니다. 부산이 선정된 이유는 도시 여행지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추천한 부산의 여행지는 전포 카페거리다. 부산 전체를 추천한 것이 아니다. 이제 도시여행자의 목적지는 도시가 아니고 도시의 한 동네다. 뉴욕에 가는 트렌드세터가 뉴욕에 간다고 말할까? 브루클린, 소호, 웨스트 빌리지, 사우스 브롱스에 간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도시여행자에게 한 동네를 깊이 체험하고 즐기는 여행은 일주일도 부족하다.
하지만 대구, 전주 등 다른 대도시에 비해 부산의 골목상권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2010년 초 형성된 전포 카페거리 외에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골목상권이 많지 않다. 다양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대부분 산지 지형으로 구성돼 넓고 평평한 골목지역이 적다. 둘째, 재래시장의 경쟁력이다. 서울과 달리 서면과 같은 도심 상권에서도 재래시장에 사람이 몰린다. 셋째, 해운대 신화다. 해운대 신도시의 성공으로 도시재생보다는 재개발이 도시모델로 자리 잡았다. 신도시뿐 아니라 원도심 전역에 골목상권의 형성을 방해하는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다행히 2016년 이후 부산 골목상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려제강 공장터를 재생한 F1963 사업이 성공하고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함에 따라 그동안 소홀했던 원도심 재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량동 산복도로, 영도 청학동 등 과거에는 불리한 조건으로 여겼던 산지 지형이 오히려 뛰어난 조망으로 각광을 받는다. 남포동 B4291, 망미동 F1963 등 주변 지역을 상권으로 바꾸는 민간 주도의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이 나오기 시작한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동래-서면-남포동-영도로 이어지는 부산 원도심은 골목상권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도시여행자에게 부산 원도심만큼 좋은 휴양지는 없을 것이다. 바다, 언덕, 골목, 전통, 현대, 럭저리, 문화, 역사 그 모든 것이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20세기 초 부산 원도심은 동래였고 우리가 원도심이라 부르는 남포동 일대는 일본이 새로 건설한 신도시였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동래 온천장에서 남포동을 거쳐 영도에 이르는 전차길을 열었는데 그래서인지 부산 문화의 원형은 아직도 동래, 남포동, 영도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 원도심의 미래를 제시하는 기업이 영도 기반 도시재생 스타트업 ‘돌아와요 부산항 연합’(RTBP)이다. RTBP는 영도 젊은이들이 일하는 메이커 스페이스와 복합 문화공간, 거주하는 코 리빙 플레이스, 그들에게 필요한 상업시설 등 총 5개 단지로 구성된 작은 도시를 건설한다. 쇠락한 조선소 지역에서 빈 공간을 활용해 일ᆞ주거ᆞ놀이를 통합한 삼위일체 도시다.
RTBP의 기본 콘텐츠는 영도의 조선산업이다. 폐쇄된 조선소의 건물을 활용해 창업공간과 상업시설을 조성했고, 주거시설도 조선소 노동자들이 살던 동네의 한 건물을 활용한다. 기존 커뮤니티를 이주시키는 개발 방식이 아닌 건물 단위 재생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와 상생하는 모델이다. 구성원 사이의 협업, 공동행사를 통해 내부 커뮤니티도 활성화한다. RTBP 사업의 본질은 부산과 영도의 라이프스타일을 시대변화에 맞게 재생하는 일이다. 영도의 매력과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사업화해 지역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을 창출한다.
RTBP와 같은 지역 기반 도시재생 기업은 새로운 창조산업이다. 다른 원도심 지역도 도시재생 기업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이유에서 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을 재생해야 한다. 재개발이 가능한 지역에서도 이미 과잉 공급된 신도시보다는 지역 문화와 정체성을 살린 재생도시가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 모델이다.
현재 지역의 개성과 특색을 찾는 밀레니얼 소비자와 여행자의 주도로 부산의 라이 프스타일과 산업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부산이 독립적인 지역산업을 더 빨리 원한다면, 트렌드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전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 캠페인이 필요하며 그 방안으로 '부산상품으로 하루 살기 캠페인'을 제안한다.
르노삼성, BNK 금융, 르까프, 트렉스타, 파크랜드, 웰메이드, 송월타월, 시원블루, 삼진어묵, 설빙 등 부산은 이미 로컬 브랜드가 풍부한 도시다. 명란, 어묵, 일식, 설탕, 깡통, 밀면, 견과류, 건어물, 신발, 합판, 섬유, 목욕탕, 가라오케 등 부산이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개척한 생활 산업은 수많이 많다.
부산이 이 정도로 우리 삶과 밀접한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고 있으니 부산에서 '부산 상품으로 하루 살기'를 시도해 볼만 하다. 부산우유와 모모스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고, 인디언과 파크랜드 옷을 입은 후, 르노삼성 자동차로 출근한 후, 점심때 반주로 금정산 막걸리나 시원블루를 곁들인 후,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설빙에서 후식을 즐긴다. 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부산 브랜드와 함께 할 수 있다.
캠페인의 목적은 지역산업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은 지역 소비, 그리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유통시장의 전국 통합을 당연시하는 우리는 우리 고장 상품과 독립 가게를 '후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지 오래다. 외국은 로컬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고 권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식품이 그렇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 지역 농산물 소비를 장려하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웰빙 열풍과 함께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됐다. 세종시, 완주군 등 도농지역은 로컬푸드 산업을 지역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국회도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5년 6월 ‘지역농산물 이용 촉진법’을 통과시켰다.
지역 산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로컬 소비가 필수적이다. 외국 사례에서도 보듯이 로컬 소비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지역 환경 보호와 지역 경제의 자생적 성장을 위해 적당한 수준의 로컬 소비 장려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물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로컬 소비를 의무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로컬 소비 운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시민과 시민단체여야 한다. 독립 상점 역시 지역 주민의 로컬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문화적으로 매력 있고 친환경적인 상품을 개발한다면 지속 가능한 로컬 소비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국가 경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명분에 치우쳐 로컬 소비를 외면해왔다. 개성과 다양성,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 시대에 국가 단위의 소비를 장려하는 것은 앞으로 성장하게 될 창조산업과 문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부산 상품으로 하루 살기’,‘부산 향토기업 제품 애용’ 같은 민간 소비 운동을 통해 지역 산업과 기업에 대한 이해와 호감을 키운다면, 자연스럽게 로컬 소비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돼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로컬 소비를 통해 다양한 지역 문화산업을 키우는 것이 곧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융합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부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도시, 창조도시로 도약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문화적, 물리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부산국제금융센터와 리틀 홍콩으로 불리는 마린시티를 활용한 국제금융도시, 해운대, 달맞이고개, 광안대교를 아우르는 해변 리조트 도시, 대기업이 지원하는 창업경제혁신도시, 도시 전체가 관광자원으로 이용되는 국제관광도시, 영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도시 등 부산은 수많은 도시 발전전략을 갖고 있다. 여기에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더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기업과 산업이 자리 잡는다면, 부산은 문화도시, 창조도시이자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알에이치코리아, 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북스, 2016
골목길 자본론, 다산북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