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문화에서 파생된 로컬 비즈니스

by 골목길 경제학자

"히피들이 승리했다(The Hippies Have Won)." 지난 4월 4일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 제목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뉴욕타임스는 좋은 삶, 건강,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최근의 현상을 1960년대 ‘히피문화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이 기사는 단지 요가나 명상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이 즐겨 소비하는 그래놀라, 콤부차(홍차버섯), 아몬드 우유 등 요즘 유행하는 식품 대다수가 히피문화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레스토랑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70년대 초반 학생 운동가들이 뉴욕 이타카에서 창업한 '무스우드 레스토랑(Moosewood Restaurant)'의 채식주의 식단(미소, 타히니, 대추, 씨앗, 울금, 생강 등을 새롭게 해석)이 다시 유행한다는 것이다. 채식주의(Vegetarianism)와 비거니즘(Veganism)에 근간을 두는 이 음식문화는 히피문화를 대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비거니즘은 동물성 식품뿐 아니라 가죽제품, 동물실험 화장품 등 동물과 연관된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거부하는 운동을 말한다.


히피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버클리의 히피 지역


그렇지만 히피문화가 완전히 미국 주류 문화로 부상했다고 단정 짓기는 무리다. 고전적인 히피문화는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하위문화로 존재한다. 히피운동의 성지로 알려진 버클리 텔레그래프 애비뉴(Telegraph Avenue)에 가면 노숙자, 마약 복용자, 과격 정치운동가 등 우리가 히피운동에서 연상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여전히 목격할 수 있다.




도시 문화의 발현, 고메게토에서 찾은 新히피문화


주류 사회로 진입한 히피문화는 고전적인 히피문화가 아닌 젠트리파이된, 즉 고급화된 히피문화다.


텔레그래프 애비뉴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노스 버클리(North Berkeley) 골목길 '고메게토(Gourmet Ghetto)'에 가면 고급 히피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고급 음식점이 몰려있는 빈민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곳에서 우리는 히피문화의 진원을 발견한다.


채식 피자와 함께 음악을 제공하는 고메게토의 대표 가게 치즈보드 콜렉티브


샤턱 애비뉴(Shattuck Avenue)와 바인(Vine Street) 스트리트에 모여있는 고메게토 음식점, 갤러리, 명상원, 독립서점, 부티크들은 공통적으로 남다른 특징을 가진다. 히피문화를 계승한 지역답게 로컬푸드, 유기농, 공정무역, 아르티장 등 사회적 책임과 상업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대다수다. 항상 기다림이 있는 채식 피자 전문점 치즈보드 콜렉티브(Cheeseboard Collective)를 포함한 많은 가게가 사회적 기업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친환경 음식문화인 로컬푸드 운동의 발원지도 바로 고메게토다. 버클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한 자영업자 알리스 워터스(Alice Waters)를 계기로 로컬푸드 운동은 시작됐다. 워터스가 개업한 프랑스 음식점 셰 파니스(Chez Panisse)는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신선하고 좋은 품질의 식자재를 구매하기 위해 기존 농산물 유통 시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역 농부와 직접 거래하며 양질의 유기농산물을 확보하는 그의 경영 방식은 소비자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고, 다른 식당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에 동참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팜 투테이블(F2T, Farm to Table)이라고도 불리는 로컬푸드 운동으로 발전했다. F2T를 실천하는 식당 모두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모든 재료의 원산지와 재배자를 메뉴에 표기해 정직, 안전, 건강 등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했다.


로컬푸드 프랑스 음식점 셰 파니스와 식당 안에 걸려있는 유기농 급식 홍보 포스터


F2T 선두주자 워터스는 '음식은 정치다'라고 주장하며 단순히 식당을 경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1996년 셰파니스 재단을 설립했다. 학교를 대상으로 건강한 음식문화를 전파하고, 버클리 지역 공립학교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교과 과정의 일부로 음식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은 교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활용한 요리를 하고, 농산물 그림과 자료는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의 수업 자료로도 사용된다. 유기농산물로 만든 급식을 제공하는 재단 사업은 청소년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가 시작한 '렛츠 무브(Let's Move)' 운동의 모델이 됐다.


워터스 사례는 지역 운동의 파급력이 한 도시의 음식문화를 창조한 것을 뛰어넘어 국가적인 사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워터스와 셰 파니스 재단 그리고 렛츠 무브 운동은 버클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주류 도시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스타벅스의 원형, 피츠 커피 1호점


고메게토에서는 커피문화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 스타벅스의 원형인 피츠 커피(Peets' Coffee) 1호점도 만나볼 수 있다. 스타벅스는 버클리 출신 기업가들이 1971년 피츠 커피를 모델로 시애틀에서 창업한 기업이다. 창업 당시 스타벅스의 공식 명칭 '스타벅스 커피 앤 티'는 피츠 커피의 이름 '피츠 커피 앤드 티(Peets’ Coffee & Tea)에서 따온 것이다.

인생은 돌고 도는지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1987년 매물로 나온 피츠 커피를 인수하기 위해 버클리로 돌아간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커피문화를 주도하는 스타벅스 제국의 역사가 버클리의 한 카페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F2T와 커피문화 외에 버클리에서 파생된 다른 도시 문화도 물론 존재한다. 버클리 거리를 걷다 보면 현대 도시 문화의 초석을 닦은 가게들이 쉽게 눈에 띈다. 1950년대 후반 카페라테를 처음 개발한 카페 메디터레니언(Cafe Mediterranean), 식품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 버클리 코업(Berkeley Coop), 독립서점의 원형으로 불리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 서점과 모스(Moe's) 서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클리식 도시 문화가 탄생했다.


고메게토에 위치한 고메 푸드코트


버클리에서 시작해 대중화된 로컬푸드, 스페셜티 커피, 유기농 음식, 에스닉(Ethnic)퀴진, 독립서점, 인디음악, 빈티지 패션 등은 점차 세계 주요 도시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가 세계 도시 문화를 선도했다는 사실은 이 도시의 역사를 보면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1960-70년대 반전운동, 히피운동, 자유언론운동 등 대항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버클리는 지난 50여 년 동안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도시 문화의 정수가 된 대항문화(Counterculture) 정체성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버클리 정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대항문화가 정치운동을 넘어선 문화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히피들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자유, 인간, 평등, 환경을 강조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문화운동을 주도했고, 이는 현재 새로운 도시 문화의 근간이 되어 널리 재구성되고 전파되고 있다.




히피 출신 기업가와 히피 자본주의


대항문화 전통은 작은 도시 버클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미국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효율성으로 대변되던 근대적 물질세계를 벗어나 탈물질적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의 진원지는 애플, 구글, 홀푸드마켓 등 창조기업이다. 애플은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 구글은 "일하며 즐기자(Work and Play)", 홀푸드마켓은 "경영하며 공헌하자(Balance Business with Social Impact)" 캠페인을 통해 수익과 이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강조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히피기업" 애플 본사


그 어느 나라 기업보다도 물질주의가 팽배했던 미국 기업들이 가치중심적 사고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애플(스티브 잡스)을 필두로, 홀푸드마켓(존 맥케이), 벤앤제리(벤 코헨&제리 그린필드), 버진에어라인(리차드 브랜슨), 더바디샵(아니타 로딕), 임프레사리오매거진(필릭스 데니스), 롤링스톤즈지(잔 웨너) 등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기업의 설립자들이 히피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일명 '히피 자본가(Hippie Capitalist)'로 분류된다.


특히, 애플의 잡스는 히피문화에 심취해 마약을 복용했던 젊은 시절을 공공연하게 자랑할 정도로 히피 정체성이 강했다. 잡스의 생생한 진술이 담긴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에는 잡스가 빌 게이츠를 시야가 좁은 ‘공부벌레’로 표현한 대목이 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유전자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마약과 히피문화가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기성 사회의 틀에 박힌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가치와 의미에 따라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히피 출신 기업가가 소비 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경험을 구축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의 욕구를 발 빠르게 파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몇몇 기업인의 사례로만 히피 자본주의를 논하는 것은 히피문화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 존 마코프(John Markoff)는 2006년 저서 『도마우스가 한 말(What the Dormouse Said)』에서 PC (Personal Computer) 산업의 발전이 히피문화가 대표하는 대항문화에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IBM, DEC 등 기존 미국 동부 메인프레임 컴퓨터 산업과 비교할 때, PC 산업은 태생적으로 저항적 성격을 지닌다.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대기업의 권력을 상징한다면, 개인이 독립적으로 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PC는 자유와 탈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항정신과 맞닿아 있는 PC 산업이 그 문화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마코프의 책에 따르면 마우스, 이메일, 워드 프로세서 등을 개발한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Engelbart)를 비롯해 실리콘밸리 개척에 일조한 많은 기술자와 기업인들이 대항문화를 추종했다.

모든 국가가 부러워하는 미국의 IT산업은 이처럼 대항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 등 실리콘밸리를 세우고 변화시킨 혁신가들은 대항문화의 영향을 받아 투철한 이단아 정신으로 기존 비즈니스의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한 것이다.


1960년대 대항문화가 창조적 파괴를 통해 기업과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히피 자본주의'로 진화했다.


6 홀푸드마켓 친환경 생선 매장.jpg 친환경 수산물만을 고집하는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 홀푸드마켓





새로운 자본주의의 가능성 모색


문제는 한국이다. 과연 우리가 대항문화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 문화와 산업을 개척하는 미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자영업을 통해 새로운 도시 문화를 개척한 워터스, 첨단산업을 통해 개인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한 잡스 등 히피 출신 기업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소명의식일 것이다. 이들에게 기업은 사회 변화라는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국 기업인들도 세계적인 트렌드로 부상한 탈물질주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


히피운동과 같은 대항문화를 체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혁신과 창조를 이끌 이단아 세력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새로운 희망을 청년 세대에서 본다.


젊은 세대가 개성, 창의성, 다양성, 삶의 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관건은 현재 소비 중심으로 차별성을 추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분발하여 가치 생산에도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들이 개성과 변화에 대한 욕구를 소비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생산과 창업 활동을 주도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분출한다면 머지않아 한국에도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시 문화, 새로운 자본주의가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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