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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03. 2017

생존을 위해 자동차를 포기한 도야마

일본 작가 후지요시 마사하루의 『이토록 멋진 마을』은 일본 도야마현의 도야마市를 자동차 도시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도야마 역에 도착해 처음 접한 시가지 풍경은 그의 묘사가 정확한 것을 깨닫게 했다. 일본의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밀조밀한 거리 풍광은 찾기 어려웠고, 바둑판같은 대형 도로에 빌딩 숲만 보였다.


넓은 대로와 대형 블록 중심의 자동차 도시 도야마


도야마가 자동차 도시가 된 배경에는 전쟁의 아픔이 있다. 역사 안내사 쓰우라 히로시는 도야마가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군 폭격 대상이 된 이유를 설명한다. “도야마시는 다테야마 연봉(도야마현 상징인 해발 3,000m급 봉우리들로 구성된 산맥)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풍부한 수자원 때문에 예로부터 전력이 풍부했다. 그래서 군수공장들이 많이 들어섰고, 그 때문에 2차 대전 말기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았다.” 미국 대공습으로 파괴된 이 도시는 전후 새롭게 건설됐기에 말 그대로 신도시라 불러도 무방하다.




고령화된 도야마에 분 도시재생 바람


2002년 취임한 모리 마사시 시장은 자동차 도시 도야마에 변혁의 바람을 일으킨다. 모리 시장은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도야마가 자동차 도시로 생존할 수 있을지 회의를 품었다. 시 예산의 상당 부분이 도로 수리와 건설 비용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 도야마 미래에 대한 전망은 어두웠다. 전문가들은 2045년 도야마의 인구가 2010년 대비 23% 감소하고, 203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33%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나친 자동차 의존도와 대중교통 이용 감소, 도심 공동화로 인한 도시 활력 감소,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높은 행정 처리 비용, 타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이 도야마의 미래를 위협했다.


모리 시장이 자동차 도시를 포기하고 선택한 미래는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의 '콤팩트시티(Compact City, 압축도시)'이었다.


"콤팩트시티란 도시내부 고밀개발을 통해 현대도시의 여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함과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 및 자연환경의 보전까지 추구하는 도시개발 형태로 도시내부의 복합적인 토지이용, 대중교통의 효율적 구축을 통한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촉진, 도시외곽 및 녹지지역의 개발 억제, 도시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역사적인 문화재의 보전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도야마 대학 앞 2호선 정류장


콤팩트시티 구축을 위한 최우선 사업은 대중교통 확충이었다.


모리 시장은 2003년 ”도야마 대중교통수단 활성화계획”을 발표하고, 2006년 도야마 LRT, 2009년 도심순환선(City Tram Loop Line)을 연이어 개통했다.


전기를 이용해 도로상 레일 위를 움직이는 LRT는 도야마역부터 도야마항을 연결하던 기존의 JR항선을 리모델링한 신형 경전철이다. 모리 시장은 기존 전철보다 유지 관리 비용이 적게 들고 에너지 및 토지 사용이 절감되는 노면 전차를 도입했다. 경량화 및 소형화된 차량과 저진동 및 저소음이 특징인 노면 전철은 압축된 도심에 적합한 교통수단이었다. 2006년 3월 1일 폐지된 JR항선은 80여 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2006년 4월 29일 LRT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13개의 정거장을 가진 센트램은 2009년 12월 첫 운행을 시작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기존 두 개의 트램은 각각 편도 6.7km와 3.8km인 반면, 센트램은 3.7km로 도심 지역만 순환함으로써 압축도심 교통망을 강화했다. LRT와 센트램 건설로 모리 시장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도심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대중교통시스템을 확충했다.


고령자가 많은 시의 특성상 자동차 이용이 불편한 시민들에게 트램은 매우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도보나 자전거로 도심을 다닐 수 있는 공공교통 용이성을 높임으로써 자동차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도야마의 환경 문제를 개선했다.


그다음 ‘도심지구’와 역 주변의 ‘거주촉진지구’를 지정해 지역 거점을 활성화했다.


거주촉진지구는 철도역에서 500m, 버스정류장에서 300m의 범위로 약 3,393ha의 규모였다. 적정 규모의 집약적 주거·업무·상업·문화·복지 지구가 형성되도록 지원해 자연스럽게 인구, 특히 노년층의 집중을 유도했다. 그 결과 주거지역 내에서도 기본적인 도시 어메니티를 누리면서 일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보권 마을이 탄생했다.


2006년 건설된 포트램의 종착역 (이와세하마역)


고령자에게 100엔 외출권(오데카케 정기권)을 발급하거나 건설업체나 입주자에게 최대 50만 엔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마을 내 상업시설 유치를 위한 어드벤티지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시민들의 자유로운 유입을 유도했다.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해 도시를 가꾸어 나가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2015년 개장한 새로운 도심 랜드마크 도야마 글라스 미술관 (미술관 홍보 사진)


마지막으로 도심 활성화에 역점을 뒀다. 도시 중앙에 일 년 내내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랜드 플라자를 건설해 매년 100회 이상의 행사와 공연을 열고 있다. 여행자와 주민을 도심으로 유인하기 위해 2015년 세계적인 유리예술 미술관인 '도야마시 글라스 미술관'을 건축하고 다운타운의 랜드마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수치로 보는 도야마 콤팩트시티 사업 성과


모리 시장의 콤팩트시티 정책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다. 2012년 OECD는 <콤팩트시티 정책보고서>에서 도야마를 세계 선진 5대 도시 중 한 도시로 선정했다. 경제적, 사회문화적, 도시미학적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대중교통 사용 인구의 증가다. 2006년 도야마 LRT가 개통한 후 기존 JR항선 대비 승객이 2013년 2.5배 증가했다. 자동차나 버스로 출퇴근하던 시민들 중 약 23%가량이 LRT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트램 사용자는 주중에는 2.1배, 주말에는 3.6배가 늘었다. 특히, 낮 시간에 트램을 사용하는 고령자 사용자가 크게 증가했다. 트램의 확대로 노년층의 생활 방식이 변화한 것이다.


중심 시가지를 찾는 유동인구도 증가했다. 2011년 중심 시가지 보행자 수는 2006년 보다 56.2% 증가하고, 2011년 중심 시가지의 빈 상점수는 2009년보다 2.3% 감소했다. 주말 기준으로 시가지에 머무는 평균 시간도 128분으로 자동차 이용자보다 15분 길어지는 효과를 거뒀고, 시민 1인당 중심 시가지 평균 소비액(1만 2,000엔)은 3,000엔 이상 증가했다.


도야마는 2014년 일본 지방 도시로는 예외적으로 2005년 인구인 42만 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젊은 층의 유입이 증가해 2007-2012년 사이 도야마시 초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수가 12.6% 늘어났다. 도심과 거주촉진지구에 거주하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전체 인구 중 이 지역에 거주하는 비율이 2005년에는 28%에 그쳤으나, 2012년에는 31%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41%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중교통 활성화와 중심 시가지 활성화를 이끈 순환선 센트램은 도야마의 콤팩트시티 정책을 상징하는 명물로 자리 잡았다. 트램을 타고 편리하게 도심으로 이동하여 주 업무, 문화생활, 쇼핑생활 등 모두 한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고 도심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콤팩트시티 사업으로 활기를 회복한 도야마 도심




콤팩트시티 도야마에게 필요한 ‘지역 산업 정체성’


도야마가 콤팩트시티 모델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지역 산업 기반이 필수적이다.


콤팩트시티 구축을 통해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을 유치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다.
도야마 역 앞에 세워진 도야마 약장사 동상


도야마의 대표적인 향토산업은 제약산업이다. 도야마는 예로부터 ‘도야마 약’으로 유명했다. 이곳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부터 제약공업이 발달해 전통적인 약제조업자가 세운 중소 규모의 제약공장이 많다. 역 바로 앞에 설치된 도야마 약장사 동상은 제약산업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야마 제약기업 니치이코 본사에서 바라 본 도야마성


도야마 제약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일본 제일의 복제약품(Generic Drug) 제조사 니치이코 제약이다. 지역 산업의 맏형답게 니치이코 본사는 시의 최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 기업은 지난해 미국의 사전트를 7억 36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해외 인수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야마를 대표하는 또 다른 기업은 세계적인 지퍼 기업 와이케이케이(YKK)이다. 도쿄에서 창업한 기업이지만 도야마에서 주력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YKK의 도야마 정체성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기업 본사의 지역 이전을 지원하겠다는 아베 정부의 정책에 부응해 YKK가 자회사 YKK AP 본사를 도야마시 근교 구로베시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YKK는 본사 지방 이전으로 세제를 우대받는 1호 기업이 됐다.


포트램 역에 장식된 YKK AP 홍보 포스터


도야마시는 지역 산업과 도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산업 지역인 이와세 항구와 도야마역을 연결하는 노면전차 포트램(Portram)을 건설했다. 새롭게 활성화된 도심 지역으로 주택, 상업시설,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대중교통과 보행 중심 모델로 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활성화하는 콤팩트시티 전략이 가시화된 것이다.  


국내 콤팩트시티 모델 도입 제시


콤팩트시티 구축은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밀도 집중 개발로 투자와 고용이 늘어 도시경제의 활성화와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교통 통행량과 주행거리 감소로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생활 권역 범위의 집중으로 고령자의 이동과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커뮤니티 전반을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콤팩트시티 라이프스타일은 미래의 창의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다.


개성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은 일, 주거, 문화생활, 레저생활 등 같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다운타운(Downtown)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근접한 곳에 거주하면서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청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환경이 창의적 인재를 모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콤팩트시티는 단순히 도시발전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콤팩트시티 산업으로 불릴 수 있는 관련 산업을 창조하는 산업정책이기도 하다. 콤팩트시티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산업은 대중교통산업, 골목산업, 문화산업, 소상공인창업 등 콤팩트시티 친화적인 도시산업, 그리고 콤팩트시티 라이프스타일에 이끌려 이주한 창조인재가 새롭게 창출하는 창조산업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콤팩트시티 사업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춘천, 대구 등 지방 도시들이 최근 도야마를 방문해 모리 시장과 콤팩트시티 전략을 논의했다고 한다. 국내 도시가 도야마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콤팩트시티를 단순한 도시재생 모델로 이해했을까? 도시 생존에 대한 모리 시장의 절박감도 느꼈을까?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로 진입 우리에게 콤팩트시티 모델은 선택 사항이 아닐 수 있다. 자동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과 보행을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생존 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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