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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r 13. 2017

싱가포르의 미래가 궁금해 티옹바루를 찾았다

싱가포르의 미래가 궁금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 나라가 지속 가능할까? 경제통계는 희망적이다.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5만 5,000달러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1990년대에는 한국과 비슷한 2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2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2배 수준에 이른 것이다. 경제 성장도 순조로워 2015년, 2016년에 각각 2.0, 1.8%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적 비결은 이미 다 알려졌다. 기업인의 천국이라고 할만큼 정부 정책이 개방적이고 규제가 합리적이며 투명하다. 도시환경도 20세기 초 전원도시 운동의 이상을 실현한 듯 아름답고 쾌적하며 편리하다. 여기에 역사적 개방성과 지리적 위치가 더해져 싱가포르 경제 모델이 완성됐다.


싱가포르 골목상권 티옹바루의 벽화거리


사회 성과도 모범적이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안전하고 사회적 신뢰도가 높다. 사회 안정의 배경에는 개인 책임과 국가 책임의 균형을 잡은 이 나라 고유의 복지모델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복지 모델 덕분에 시민들은 세계 수준의 교육, 의료, 주택 복지를 누린다.


싱가포르는 이처럼 시장과 공동체의 양 날개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금융, 제조업, 서비스경제로 비상했다. 이제 싱가포르가 집중하는 차세대 성장동력은 IT,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최첨단 기술 산업이다. 창업에 소극적이었던 젊은이들도 블록 71(Block 71) 등 대규모 정부 재정 지원과 높은 수준의 대학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싱가포르 스타트업 중심지로 몰리고 있다.


그렇다고 싱가포르가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에 걱정거리가 있다면 문화산업이다. 세계 경제가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 산업 중심으로 재편해도 싱가포르가 현재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애플같이 전 세계의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싱가포르도 배출하길 원한다.


티옹바루 베이커리 플레인바닐라(Plain Vannila)




골목길 경제학자는 궁금해진다. 싱가포르의 골목길은 어떤 모습일까? 한 나라가 문화강국이 되고 싶다면 새로운 도시 트렌드를 창출하고, 그 문화로 세계의 도시여행자를 유인할 수 있는 골목길 하나 정도는 보유해야 한다. 싱가포르 친구들에게 싱가포르의 수많은 골목상권 중에 어느 곳이 싱가포르의 '그린위치 빌리지'인지 물었다. 대부분이 힙스터 지역으로 알려진 티옹바루를 추천했다.


티옹바루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아랍스트리트 등 다른 상업지역과 달리 이 곳은 한가한 주택가에 위치한 근린상권이다. 가로 4블록, 세로 4블록 길이의 작은 마을로 규모도 아담하다.


1930년대 건설된 싱가포르 최초의 공공주택단지로 이루어진 티옹바루에는 곳곳에 공동체 협력을 강조하는 마을회관, 학교, 공원 등 공동체 시설이 들어서 있다. 20미터 간격으로 배치돼있는 주민회 안내판에서 이 곳 주민들이 엄격한 수준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티옹바루 호커센터 2층 식당가


마을의 입구에 들어 서면 동네 시장 호커센터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다른 공공주택단지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호커센터가 마을공동체 생활의 중심이다. 주민들은 호커센터에서 생활용품을 구입할 뿐 아니라 2층에 위치한 식당가에서 하루 3끼를 해결할 수 있다. 일인당 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 싱가포르가 원화 2-3,000천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도적으로 마련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부 호커센터 식당은 미슐랭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다.


시장과 식당가의 결합이 계획된 것은 아니다. 초기 동네 시장은 식당가가 따로 없는 전통시장이었다. 정부가 거리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거리에서 밀려난 포장마차(호커)를 수용하기 위해 시장에 식당가를 건설한 것이다.


호커센터에서 나와 건너편 골목길을 거닐면 아기자기한 골목상권이 등장한다.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점, 카페,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바, 꽃가게, 디자인 숍이 동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고층빌딩과 쇼핑센터가 지배하는 다른 상권과 달리 사람 냄새가 나는 여유롭고 다정한 골목길이다.


티옹바루 독립서점 북스액츄얼리


티옹바루가 예술의 거리로 불리는 이유는 마을 이곳저곳에 들어선 갤러리 때문이다. 골목길 경제학자에게 티옹바루가 중요한 이유는 인디문화다. 싱가포르 다른 지역에서 만나기 힘든 인디문화가 여기에서 싹트고 있다. 동네서점 북스액츄얼리(BooksActually)과 우즈 인 더 북스 (Woods in the Books)에 진열된 미술서적, 그림책, 그리고 고서적에서 외부 여행객에게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왜 티옹바루였을까? 독립 후 건설된 주거단지와 달리 티옹바루는 저층 공동주택 중심의 거주지다. 골목길에 필요한 저밀도 주거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접근성도 한 몫했다. 도심과 가까워 자연스럽게 상권으로 발전한 것이다.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싼 것도 1980년대 이후 젊은 가족과 예술가들을 유인하는데 기여했다. 1990년대 이후 싱가포르 정부가 문화재 보호에 힘쓴 것도 마을 건축물 보전하는데 도움이 됐다.


티옹바루 호커센터의 맛과멋


이처럼 우리는 티옹바루에서 싱가포르의 가능성과 고민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이 작은 마을은 공동체 경쟁력으로 성장한 골목상권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함께 보여준다.


이 곳에 필요한 것은 상권의 확장이다. 일정 수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홍대, 시부야 등 아시아의 다른 도시의 골목상권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제한적인 청년 인디 문화 인프라로는 글로벌 수준의 골목길로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시 묻는다. 티옹바루가 진정한 의미의 '그린위치 빌리지'가 될 수 있을까? 문화산업의 현재 수준을 보면 미래 경쟁력을 낙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싱가포르는 금융, 무역 중심지다. 문화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규칙과 벌금 등 권위주의 문화가 먼저 연상되는 것이 현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문화 트렌드가 무엇이 있었는지를.


1930년대 아트데코 양식으로 건설된 티옹바루 공동주택 단지


문화산업의 경쟁력 부족은 어떻게 보면 정부가 의도한 결과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정부의 우선순위는 문화산업이 아니었다.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를 30년 가까이 통치한 리관유 수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활산업 중심의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그에게 "시(詩)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치 (Poetry is a luxury wecannot afford)"였다.


그래서인지 부족한 게 없을 것 같은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오히려 외국의 대중문화를 부러워하고 이에 열광한다. 한류도 이들이 좋아하는 외국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류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싱가포르 명문 난양공대의 학생들은 교환학생으로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싱가포르 문화산업의 미래는 단순히 싱가포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과학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다. 과연 싱가포르가 현재의 권위주의 시스템으로 문화강국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일본, 한국, 중국의 성장모델에서 권위주의가 산업 발전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전통산업에서 입증된 권위주의의 경쟁력이 문화산업에도 적용될지는 확실치 않다.  


자유주 성향의 사회과학자들은 권위주의 국가의 조직력이 문화 분야에서 발휘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권위주의와 문화산업은 상호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문화 창작력과 창의성은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개인의 자유에서 분출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권위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창의력에 의존하는 문화산업이 번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베트남 작가 작품을 전시하는 티옹바루 갤러리 아트블루 스튜디오 (ArtBlue Studio)


물론 전근대 왕국들이 보여주었듯이 개인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도 발레, 오페라, 오케스트라, 미술 등 엘리트 문화산업은 융성할 수 있다. 엘리트 문화산업은 소수의 예술가와 후원자로 경쟁력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수요와 참여를 요구하는 대중문화는 다르다.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대중문화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소수의 아티스트로 성공할 수 없다. 온 국민의 문화생활에서 배어 나오는 국가 매력도도 정부의 강요에 의해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예술가와 소비자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활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적 문화가 꽃피울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과학통념을 무시하듯이 권위주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2000년대 이후 미술, 음악, 출판, 공연 등 문화예술산업과 음식, 패션, 연예 등 대중문화산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대중문화강국이 될 수 있을까? 싱가포르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싱가포르 시청자들은 '자국 드라마가 왜 한국 드라마와 다르게 재미없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산업 육성은 궁극적으로 싱가포르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적 통념을 과감하게 파괴해 온 ‘이단아’ 싱가포르가 진정으로 문화 도시를 원한다면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다. 싱가포르가 그런 결단을 내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골목길 경제학자의 솔직함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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