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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20. 2017

도시 살리기가 대학의 일이 됐다

시라큐스대학의 연결통로(Connective Corridor) 프로젝트

미국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시라큐스대학 입구에서 시라큐스 다운타운까지의 거리는 불과 1마일이다. 하지만 1956년 두 지역 사이로 건설된 81번 고속도로가 이들의 운명을 갈랐다. 시라큐스대학은 세계적인 인재가 모이는 명문대학으로 발전했지만, 대학과 분리되고 중산층이 떠난 다운타운은 사람이 찾지 않는 유령도시가 됐다.


그런 다운타운이 2005년 변하기 시작했다. 대중교통 노선이 확대되고, 자전거 길이 열리고, 새로운 상가가 들어섰다. 가장 큰 변화는 거리의 색깔이었다. 시내 거리가 시라큐스대학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시라큐스 도시재생의 주역은 시라큐스대학이다.
연결통로 Connective Corridor 디자인 개념도 (Source: Syracuse University)


하나 된 대학 캠퍼스와 도심


시라큐스대학은 2005년 첫 사업으로 디자인대학을 이전했다. 새로운 장소는 다운타운 서쪽 끝에 있는 창고를 매입해 재건축한 건물이었다. 낙후된 도심 건물의 재생과 거리 정비가 연결통로 프로젝트의 중심 사업이기 때문에 이 사업을 추진할 디자인대학을 현장 가까이로 옮긴 것이다.


시라큐스대학과 시정부는 2005년부터 4,700만 달러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건물과 거리를 리모델링했다. 10년 간 정비된 건물은 총 55개에 달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오렌지색 도심 경관은 그 노력의 결실이다.


대학 시설 이전, 건물과 거리 재생과 더불어 대학은 캠퍼스와 도심을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와 대중 교통망 확충에 나섰다. 2006년 캠퍼스와 다운타운을 왕복하는 버스 노선을 개통한 이후,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가 차례로 열리고 아름다운 가로수와 가로등이 도로를 장식했다.

 

시라큐스대학이 다운타운으로 이전한 디자인대학의 정문


결과는 놀라웠다. 외관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 체질이 변했다. 다운타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공원, 갤러리, 음식점 등 도시 어메니티가 늘어나며 새로운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시라큐스대학과 시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산업의 복원이다.


시라큐스는 1950년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 제조업 기업 GE의 방위산업 공장, 최대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Carrier) 본사와 공장, 타자기 기업 스미스 코로나(Smith-Corona) 등이 수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미국 유수의 산업도시였다.


그러나 여느 산업도시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탈산업화의 여파가 도시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지역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남부 지역으로 공장을 옮긴 것이 쇠락의 시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산업 기반을 지탱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공동체도 무너졌다. 중산층은 도심에서 교외로 대거 이탈했고, 도심 지역 사회도 고속도로 건설로 분열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은 저소득층 소수인종 주민이 거주하는 슬럼이 됐다.


1960년대 이후 시도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지만 쇠락을 막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도시를 분열시킨 고속도로도 원래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다.   


도심 쇠퇴를 관망하던 시라큐스대학이 변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청년층 가치와 소비문화의 변화로 지역 공동체와 도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주변 환경과 도시 어메니티가 대학 선택 기준이 되면서 도시와 상생 방안을 모색했다.  


2005년 취임한 낸시 캔터(Nancy Cantor) 총장의 개인 비전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대학의 지역 사회 참여와 책임을 강조하는 행정가다. 시라큐스대학 이전의 일리노이대학, 시라큐스 이후의 럭거스(Rutgers-Newark) 대학에서도 지역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시라큐스 성공 스토리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산업도시는 시라큐스와 마찬가지로 지역 대학을 지렛대 삼아 교육과 의료 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했다.


시라큐스에서 창업한 세계적인 에어컨 제조기업 캐리어가 이 지역을 떠나고 남긴 유일한 유산인 체육관 건물


도시재생, 명문 대학의 역할이 좌우한다


2000년대 중반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시라큐스 등 몇몇 산업도시가 간신히 인구 감소 추세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 도시들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2013년 한 잡지 기사는 대학이 미국 산업도시의 운명을 갈랐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저자 저스틴 포프는 디트로이트의 파산을 지켜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디트로이트에 명문 사립대가 있었다면 도시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알려진 것처럼 디트로이트에는 명문 사립대학이 없다. 미시간 주를 대표하는 고 기관인 미시간대학은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앤아버에 있을 뿐이다. 반면, 제조업 구조조정의 여파를 이겨낸 산업도시는 공통적으로 명문 사립대학을 보유하고 있다. 피츠버그에는 카네기멜론 대학과 피츠버그 대학, 클리블랜드 도심에서 10분 거리인 클리블랜드 유니버시티 서클에는 연구 중심 대학인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에 있어 대학의 역할에 주목한다.


대학 캠퍼스와 부속 병원은 지역 내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등록금, 의료비, 연구비 수입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대학중심의 도시재생 운동을 토대로 재탄생한 대표적 창조도시가 바로 피츠버그다. 1950년대 철강도시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건, 바이오, IT 도시로 거듭났다. 2009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면서, 창조인재가 집결된 역동적인 도시로 새 출발을 알렸다.


피츠버그 소프트웨어 산업,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의 토대는 피츠버그 대학의 연구 인프라였다. 카네기 멜론 대학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공학과를 바탕으로 170개 이상의 기업을 키워냈다. 연간 매출 100억 달러를 창출하고 5만 4000여 명을 고용하는 피츠버그 대학교 부설 병원은 지역 내 고용 창출뿐만 아니라, 지역보건 산업을 지원하는 연구 활동으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지역 정체성이 부족한 한국 지역 대학들


탈산업화 위기에 직면한 한국 산업도도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대학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돌파구는 대학과의 공생발전뿐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들은 스스로를 지역 대학으로 인식하지 않고, 사명감 역시 부족하다.  


이를 해결하려면, 먼저 정부가

한국 대학들의 지역 정체성 강화를 위한 대학 중심 산학협력 단지와 창업지원 센터를 지원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이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도 대학 유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욕 경제의 다원화를 추진한 시 정부는 IT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해 루스벨트 아일랜드 지역에 대학 캠퍼스 부지를 조성했다. 공모를 통해 코넬 대학과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가 선정됐다. 시 정부는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밸리의 사례처럼 이들 대학이 뉴욕 혁신 생태계 조성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정원조정 중심의 한국 지역 대학 정책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열악한 지역 경제 상황에서 지대학은 외부 인재 유치와 새로운 혁신과 창업의 유일한 기반이다. 대학교육 수요 감소에 대비한 지역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을 교육기관으로만 인식하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지역 대학이 지역 경제 성장을 주도할 연구개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제조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한국의 탈산업화 위기는 피부로 느껴진다. 피해를 가장 먼저 경험할 대상은 산업도시다. 다행히 선진국의 경험은 탈산업화를 극복하는 공식을 제공한다.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중앙정부는 지역경제 연구개발 기관 육성을 위해 현 정책을 재고해야 하고, 지역 정부는 대학과 협력하여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서울시 캠퍼스타운 프로젝트


한국에서 대학 중심 지역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곳은 탈산업화로 도시 공동화가 우려되는 지역의 산업도시다. 역설적이지만 대학을 지역 경제 발전의 토대로 활용하기 위해 먼저 나선 도시는 서울이다.


서울시는 2016년 대학 인재와 대학가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창조경제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관내 52개 대학 가운데 사업 추진 의지가 높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한 ‘안암동 창업문화 캠퍼스타운’을 시범 사업지로, 12월에는 13개 대학을 1단계 사업대상자로 선정했다.


선정된 대학은 3년간 최대 6억~3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청년 창업 컨설팅, 지역 공동체 강화, 보행환경개선 등 대학과 주변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수행한다.

 
 


신촌 대학들이 신촌을 재생 수 있을까?


현재 진행되는 대학가 도시재생 사업 중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신촌이다.


대학 문화와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복원시킬 수 있다면 대학 중심의 도시재생 사업은 큰 탄력을 받을 것이다.


신촌을 상징했던 청년 문화와 패션 문화가 1990년 이후 홍대로 이전하면서 현재 신촌은 직장인 유흥가로 전락했다. 시정부가 ‘차 없는 거리’와 문화행사로 신촌 상권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상인들은 오히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진입과 자동차 접근성 약화에 따른 상권 불황을 호소한다.  


시라큐스 모델에 따르면 신촌 상권 재생의 적임자는 연세대다. 매력적인 도심 상권에 위치한 대학을 선호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신촌이 계속 낙후되면 대학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연세대가 과감히 도시재생을 선도해야 한다.


작은 규모지만 이화여대는 2016년 중소기업청의 전통시장 지원 사업을 통해 정문 앞 골목상권 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골목의 비어 있는 상가를 임대해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 ‘이화여대 52번가’에 독특한 디자인과 개성 있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연세대가 지향해야 하는 시라큐스대학 모델은 명확하다. 도시환경대학원이나 디자인대학원을 신설, 도심 위치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학제 간 분야인 도시학을 육성해야 한다.


신설 기관이 입주하는 건물에는 북카페, 소극장, 독립서점, 편집숍 등 캠퍼스타운에 어울리는 상업시설치해야 한다. 인사동의 쌈지골처럼 신촌 상권의 새로운 앵커 스토어로 상권 전역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중심의 도시재생 모델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이 도시와 지역 개발의 주체가 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식, 인재, 문화 등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원이 모두 대학에 집적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 대학과 상생 협력해 산업 혁신을 이끄는 도시야 말로 한국의 지역 중심 성장 시대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이다.



출처: 골목길 자본론, 다산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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