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발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하는 지적 장벽이 대도시 신화다. 언제인가부터 한국 사회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 집중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지역에 쏟아붓는 막대한 예산의 목적도 지역의 건강을 회복시킨다기보다는 지역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현재 상황은 소도시를 지적으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도시 신화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미국 도시경제학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도시경제학의 대중서로 읽히는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표면적으로 ‘도시의 승리’를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도시의 승리’를 전파한다.
/일러스트=이철원
도시가 인류 발전 이끌지만…
도시가 인류 발전을 견인한다는 글레이저의 기본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이 시작된 이후 도시는 인재의 집적과 이를 통한 혁신으로 문화, 과학, 경제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정도 규모가 인재 유치를 통한 혁신에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를 최소 기준으로 암시할 뿐이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 중세 피렌체·베네치아, 근대 버밍엄·보스턴, 현대 뉴욕·파리·런던·도쿄·밴쿠버·미니애폴리스·싱가포르 등 그가 성공 사례로 제시한 도시는 다양한 규모의 도시다. 현대 도시 내에도 규모의 차이가 크다. 인구 63만인 밴쿠버가 인구 1400만 명의 도쿄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왜 더 작은 도시는 불가능한 것일까? 역으로 왜 인구 330만 명의 부산은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가?
글레이저는 또한 중소 도시의 경쟁력을 외면한다. 독일·일본·스위스 등 많은 나라에서 중소 도시가 대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포틀랜드·오스틴·볼더(Boulder)와 같은 중견 도시가 창조 도시로 건재하다. 현재 대도시도 처음부터 대도시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뉴욕·도쿄·샌프란시스코·시애틀·미니애폴리스 등 그가 승리한 도시로 소개한 도시도 처음에는 소도시로 시작했다.
‘대도시 승리론’의 맹점들
대도시가 승리했다는 글레이저의 주장이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필자가 대도시 승리론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라이프 스타일 다양성이다. 도시 경쟁력을 도시 규모와 밀도, 기반 시설 등 물질적인 요인에서 찾는 글레이저의 책에서 삶의 질과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 소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시각에서 도시를 보면 대도시의 승리는 불가피해 보일 수 있으나, 다양성 시각에서 보면 도시의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고 라이프 스타일 진정성이다.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 윤리 등 탈물질주의를 중시하는 사람은 중앙 문화가 지배하는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에서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대도시 집중의 지속 가능성이다. 글레이저가 전망하는 대도시 중심의 경제가 지속 가능하려면 많은 소도시 사람들이 글레이저가 원하는 대로 대도시로 이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다르다.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누누이 강조하지만, 현실 세계의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이주하지 않는다. 다양한 이유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동을 거부하는 지역의 노동자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한 미국 중산층 노동자처럼 대도시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저항할 수 있다.
이미 나타난 ‘디지털 노마드’
셋째, 기술의 발전이다. 현대 기술 발전의 방향은 개인 해방과 탈중심화다. PC에서 시작된 개인 해방 기술이 블록체인으로 완성되면 개인이 중앙 조직 없이 경쟁하고 성공하는 프리랜서 경제가 도래할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라이프 스타일 혁신가들이 꿈꾸던 세상, 즉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모든 사람이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중앙 조직에서 해방된 개인은 한곳에 정주하기보다는 다양한 체험을 위해 이동하는 노마드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할 것이다. 이미 MZ세대는 한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고 브랜드를 수시 교체하는 취향 노마드 성향을 보이며, 특정 지역에서 한 달 일하면서 살아보는 디지털 노마드 여행을 즐긴다.
넷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탈대도시 현상이다. 재택근무가 확대되면서 선진국 대도시의 많은 인력이 대도시 중심부에서 교외나 소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생활 반경이 좁혀지면서 자연스럽게 동네 중심 생활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시스템이 재택근무에서 의료, 학교, 쇼핑으로 확대되면 대도시, 그리고 대도시 중심부의 이점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도시의 미래는 기술과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도시의 승리를 예측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소도시의 승리를 전망한다. 개인 해방과 느슨한 연대로 요약할 수 있는 메가 트렌드가 소도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원제 "대도시 신화에 지적으로 맞서야 지역발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