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한국 사회에서 잊힌 이슈입니다. 세계화의 한계를 보여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세계화 담론은 동력을 상실합니다. 하지만 무역 의존도가 GDP의 100%가 넘고 전략 물자의 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세계화 수용 능력이 중요한 나라입니다. 한편으로는 외국어, 다문화 교육을 강화해 개인의 세계화 능력을 키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생산과 혁신 역량을 제고해 국가 경제의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세계화 수용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개념이 140년 전 유길준이 제안한 '세계화의 주인'입니다. 그의 신조어 능력이 돋보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세계화’라는 단어를 접하기 어렵다. 경제 정책에 관한 논의가 복지와 고용, 창업, 산업생태계 등 국내 이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 탓인지 정부도 세계화의 끈을 놓아버린 형국이다. 서울대 한규섭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에 나타난 키워드 가운데 세계화와 관련된 단어는 1970년대의 성장 모델을 상징하는 ‘수출’ 정도로, 전임 정부가 ‘이민’ ‘외국인 투자’ ‘외국어 교육’ 등을 강조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미국 유학생을 2014년 수준의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유학비용을 무이자로 융자해주는 등 일본 학생의 해외 유학을 권장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 후쿠오카, 오사카 등을 국제전략특구로 지정하여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을 허용하는 등 과감한 이민 정책을 발표했으며, 영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공교육을 확대하고 영어 매체를 활용한 대학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베 정부의 세계화 정책은 한국을 모델로 수립되었다. 일본 지도자들은 한국이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요인을 정부 주도의 세계화 정책에서 찾는다. 자국 상품의 수출과 인력의 해외 진출을 제1세대 세계화로 정의한다면, 한국은 세계화에 관한 한 20세기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성공적인 표본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역시 세계화 수용 능력이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한국은 제1세대 세계화를 넘어 외국인과 외국 자본을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는 제2세대 세계화로 도약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제2세대 세계화를 향한 한국의 움직임은 둔해 보인다. 대기업, 대학, 벤처 산업 등의 영역에서 외국인이 중심 역할을 하는 조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의 44%가 이민자에 의해 창업되었다는 사실과 닛산의 카를로스 곤,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어 같은 외국인 CEO가 일본 대기업을 경영한 사실 등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국내 인재의 세계화 추세 역시 약화되고 있다. 조기 유학생의 숫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마다 감소해 현재는 2007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해외연수를 떠나는 대학생의 숫자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주요 대학들은 해외 대학에 파견할 학생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하여 이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최근 우리의 모습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화는 우리의 시대 과제였다. 우리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는 구한말의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1885년에 쓴 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화’와 비슷한 의미의 ‘개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세계화에 관한 올바른 자세를 논했다.
유길준은 개화를 강조하면서도 개화와 전통 사이에서 한쪽만을 추구하는 극단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기 나라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개화의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완고한 성품으로 사물을 분별치 못하여, 외국 사람이면 모두 오랑캐라 하고 외국 물건이면 모두 쓸데없는 물건이라 하며, 외국 문자는 천주학이라고 하여 가까이하지도 않는” 자를 ‘개화의 원수’라고 꼬집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라고 해서 유길준의 질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개화인은 개화를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 즉 ‘개화의 주인’이었다. 유길준의 기준에서 본다면 구한말 개화인을 자처한 사람 가운데 개화의 주인은 극히 소수였다. 나머지 개화 지식인은 ‘개화의 손님’ ‘개화의 노예’ ‘개화의 병신’ 일뿐이었다.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고, 개화하는 자를 부러워하며 배우기를 즐거워하고 가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개화의 손님이며, 개화하는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마지못해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다.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손님의 자리라도 차지해야지, 노예의 대열에 서서는 안 된다.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 외국 시계를 차며, 의자에 걸터앉아서 외국 풍속을 이야기하거나 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개화의 죄인도 아니고, 개화의 원수도 아니다.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과연 우리는 세계화를 주장하고 힘써 행하는 ‘세계화의 주인’인가? 아쉽게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화에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미래는 달라야 한다. 무역 의존도가 GDP의 100%를 상회하는 한국은 사실상 세계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 선진국들이 외국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역시 인재 전쟁 시대에 걸맞은 인적 자원의 세계화가 시급하다. 국내 인재 풀에만 의존하는 한국 기업이 이민을 통해 전 세계의 인재를 수용하는 선진국 기업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까. 한국 인구는 5천만 명, 세계 인구는 70억 명이다. 5천만 명과 70억 명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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