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이야기'는 미국의 사회비평가 루이스 멈퍼드가 1922년에 쓴 유토피아 문헌 비평서다. 한국어 번역본은 2010년에 나왔다(박홍규 옮김, 텍스트, 2010).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필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 작가는 서구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들뜬 1920년대에 책을 쓰고 발간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광란의 20년대 (Roaring 20s)'로 표현된다. 파리, 베를린, 뉴욕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예술 장르, 문화산업, 그리고 사회혁명 담론을 개척했다.
당연히 많은 지식인이 유토피아가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멈퍼드는 15세기 이후 서구의 유토피아 소설을 조사하고 1920년대 지식인이 유토피아 소설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정리한다.
주지하다시피 유토피아에 대한 서구 지식인의 인식은 1930년대에 들어와 크게 변한다. 1930년대는 세계가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 이상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으로 전쟁과 혼란에 빠진 시기다. 시대 위기의 원인을 유토피아주의와 같은 지나친 이상주의에서 찾는 경향이 나타났다. 작가들이 권위주의를 옹호한다고 의심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 소설 쓰기를 기피하기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소설이 디스토피아 중심으로 바뀐다.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희망이 살아있던 1920년대 초, 멈퍼드는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을까? 그의 결론은 10-12장에 담겨있다.
10장은 1920년대 서구사회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컨트리하우스, 코크타운, 메가폴리스로 표현한다. 멈포드가 국가적 유토피아라고 부른 산업사회의 3대 축은 상류층의 주거 지역인 컨트리하우스, 대량 생산 체제를 지탱하는 산업단지인 코크타운, 산업사회와 국가주의 이념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산업이 모여 있는 메가폴리스다. 수도권 메가폴리스가 산업도시 중심의 국가산업 체제를 견인하는 한국 산업사회의 모습을 그래로 옮겨놓은 것 같아 놀라울 정도다.
역설적으로 15세기부터 축적된 유토피아 이상이 현실 세계에서는 산업사회라는 집단주의적 유토피아로 귀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멈퍼드는 11장에서 당시 다수의 지식인이 지지한 사회주의를 당파적 유토피아라고 비판하며 거부한다.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파적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유토피아 이상과 개념적으로 맞지 않는다.
멈퍼드가 제시한 20세기 유토피아는 한마디로 과학과 예술의 통섭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다. 그는 산업사회가 '타락한' 이유를 과학과 예술의 분리, 그리고 공동체와 유리된 과학과 예술에서 찾았다. 과학과 예술이 한편으로는 본연의 상호 의존성을 회복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 공동체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주의적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과학과 예술의 인간화를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한 지역에 대한 모든 과학적, 문화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지역 조사(Regional Survey)'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 조사의 목적은 전문가의 지식을 지역에서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다... 지역 조사를 통해 공동체를 보면 조사자는 자의적인 이돌라가 아니라 실제를 다루게 된다... 지역 조사에 구체화된 지식은 고립된 과학 연구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일관성과 함축성을 갖는다... 지역 조사는 도서관과 연구소를 향한 전문가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향한 현장의 적극적인 활동가를 연결시킬 수 있는 다리가 된다" (p.280-282).
멈포드도 인정하듯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적어도 거버넌스 구조 측면에서는 초국가적인 교회, 국가 단위의 국왕, 지역 단위의 영주가 권력을 공유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 국가, 세계 문화의 다양성과 균형을 실현한 중세에 가깝다.
멈퍼드도 토마스 모어에서 윌리엄 모리스까지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근대 문화를 거부하고 중세에서 대안적 영감을 얻은 지식인들이 주도한 유토피아 문헌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유토피아 구조에 대한 멈퍼드의 현실 인식과 그가 생각하는 대안을 엿볼 수 있는 몇 개의 문단을 소개한다.
대도시[메가폴리스]는 코크타운[산업도시]의 잡다한 상품을 유통시키고 저당 증서나 채권이라고 하는 종류의 종이를 통제하고 농촌에서 진짜 식료품과 산물을 확실하게 공급받는다. 책, 잡지, 신문, 틀에 박힌 기사, 독점 기업이 끊임없이 공급하는 인쇄물을 통해 대도시는 국가의 기반이 되는 주민들의 마음에 국가적 유토피아의 이돌라를 철저히 존속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에는 '국가교육'과 '대국민 홍보'라는 방법을 통해 국가적 유토피아의 모든 주민에게, 좋은 생활이란 수도에서 종이 위에 사는 것이라고 설득한다. 나아가 이러한 생활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대도시가 팔기 위해 공급하는 음식을 먹고 옷을 입으며 의견을 가지고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국가적 유토피아의 다른 도시도 대도시와 같은 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무엇보다도 대도시처럼 거대하게 성장하기를 바라게 되고, 또 하나의 대도시가 되는 것을 자랑하게 된다. 대도시 주민들이 꿈꾸는 좋은 사회란 에드워드 벨러미가 '뒤돌아보며'에서 기대한 국가적 유토피아를 종이 위에 완성한 것이다. (p.233)
한국 산업사회에서 서울의 역할은 결국 멈포드의 메가폴리스(대도시)와 동일하다. 중앙 중심의 국가 동원 체제, 즉 국가적 유토피아를 지원하는 중심 도시 문화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일이다. 한국 지역 문제의 본질이 수도권-비수도권 불균형 문제가 아닌 국가주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어느 지점까지는 코크타운의 기계 생산이 갖는 효율성이란 좋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국가적 유토피아의 경우에도 그 획일성이 어느 점까지는 좋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민국가는, 중세 사람들이 왕의 법령 아래 놓인 왕의 거리를 따라 여행할 수 있을 때 체험한 안도감에서 나온 일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판례와 관습 및 도량형이, 이웃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다수의 무의미한 불법 상태에 대해 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런던 시민과 에든버러 시민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도시로 분리한 적대 관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을 묶는 유사성을 강조함은 좋은 생활을 위한 명백한 승리였다. 만일 국민국가가 다른 나라에 대해 무역 장벽을 세웠다고 해도, 이는 어떤 의미에서 더욱 한정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재한 장벽,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특정 도시에서 오랫동안 존속해 온 장벽을 부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좋은 면이다. 그러나 획일성 그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대와 사회적 우호 관계를 촉진하는 한에서만 좋다. 국민국가는 사소한 장벽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장벽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이 무의미한 지역에까지 국가적 획일성을 만들어 냈다. 나아가 국민주의는 문화적 조화에 적대적이고 노예와 자유민, 흑인과 백인, 시민과 외국인의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신의 나라의 영역에까지 무관한 불화를 영속시킨다. 사실 중세에 위대한 국제적 문화 전달 수단이었던 라틴어와 로마교회가 국가의 수도에서 사용되는 국어와 국가에 종속된 국가교회에 의해 폐지됐다. 그 후 국민주의는 그 손실을 전혀 보상하지 못했다. 반면 국민국가의 이돌라는 너무나 협소하다. 왜냐하면 문화의 세계는 인류의 공통유산이지 단순히 소위 '국민문학'이나 '국가 과학'이라는 것으로 세분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그 이돌라는 너무나 거대하다. 왜냐하면 종이 한 장만으로 버먼지와 뭄바이, 또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처럼 멀리 떨어진 장소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콩트가 훌륭하게 지적했듯이 세속 사회는 지방색이 강하고 지역적으로 제한되며 다양성을 갖는 것이다. 이는 그 본질적인 성격이자 한계이다. 성스러운 공동체는 보편성을 갖는다. 제국주의의 확장에 수반된 국가적 유토피아는 성스러운 사회를 억압하고 보편적인 세계에 세속 사회를 확대하고자 하여 문화에 대해 큰 죄를 범했다. 그리고 좋은 생활에 대항하는 이런 이단은 국가적 유토피아의 모든 주장을 매우 비열하고 위선적인 것으로 만든다. (p.236)
이 문단에서 멈포드는 국가주의와 국가적 유토피아가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국가주의를 지나치게 확장하면 세계주의와 지역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보다는 초국가, 국가, 지역이 권력을 공유하는 중세 체제가 문화의 보편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영토라는 것의 범위나 성질에 관한 한 지구는 당구장의 공처럼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공동체의 경계는 토양, 기후, 산업, 조직 생활, 역사적 유산이 지배하는 매우 확고한 지세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이 모든 공동체를 즉각 규제하고자 시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사자와 소를 같은 법으로 다루는 것은 폭정"이라는 격언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인명 주소록에 의하면 세계에 1,500만 개의 지역공동체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에우토피아는 반드시 이러한 현실 공동체의 하나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그 공동 활동에는 공통 이익과 정체성을 갖는 다른 공동체가 포함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에우토피아가 런던이나 뉴욕 같은 거대도시처럼 거대한 인구를 포함할 수는 있으나, 두말할 필요도 없이 거대도시 경계 너머에 있는 토지가 더 이상 농작물을 제조하는 비밀 공장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요컨대, 패트릭 게디스가 멋지게 표현했듯이 에우토피아 왕국, 즉 에우토피아 세계에는 많은 저택이 있다. (p.304)
정체성을 공유하는 지역 공동체 중심의 에우토피아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한다. 1922년 당시 자료를 통해 전 세계에 1,500만 개 지역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신선하다. 한국의 3,500개 읍면동을 스스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창조 커뮤니티로 전환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반갑기도 하다.
1922년에 제시한 멈퍼드의 에우토피아는 현재에도 유용할까?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회가 그가 우려한 집단적 유토피아를 극복하고 과학과 예술이 균형을 이루고 지역이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회를 건설한 것을 보면 국가 체제 자체가 휴머니즘과 다양성을 저해한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1970년대 이후 서구 경험은 국가 체제 하에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지역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 것을 보여준다.
서구 사회 성공은 기술과 문화 발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이 국가주의 체제의 3대 기둥인 컨트리하우스, 코크타운, 메가폴리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개인의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도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를 약화시켰다.
하지만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한 멈포드의 경고는 유효하다. 유럽도 1950년대 이후 추진한 유럽통합과 동시에 진행된 지역 분권화를 통해 유럽 정부, 국가 정부, 지역 정부가 권한을 공유하는 중세 거버넌스 체제를 재건했기 때문에 문화 다양성을 실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역 중심의 다원주의, 멈퍼드가 크리에이터 경제를 지향하는 한국의 크리에이터주의자에게 강조하는 가치다.
*이돌라 ([라틴어]idola) -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고정관념. ‘우상(偶像)’이라는 뜻으로 베이컨(Bacon, F.)이 쓴 용어다.
*에우토피아(Eutopia) - 이상향 본연의 의미인 좋은 장소의 라틴어 표기다. 토마스 모어가 이상향을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하는 유토피아(Utopia)로 표현했는데 이를 바로잡는 단어로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