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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l 21. 2023

저공비행

지역을 고민하는 지식인은 주변의 모든 것에서 실시간 지적 자극을 받는다. 그래도 동시대 지식인의 고민만큼 압축적이고 강렬한 자극은 없다.


언젠가 독립서점을 열면 3개 섹션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나의 책, 도시지역학 고전, 한국 로컬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읽은 하라 켄야의 최신작 '저공비행'은 나의 도시지역학 고전 서가에 들어갈 강력한 후보작이 될 것 같다.


지역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모두 지역의 미래로 고민한다. 지역을 위기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상당 수의 지식인이 환경, 공동체, 일자리, 불균형, 인간 소외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지역에서 찾는다.


나의 지역 설루션? 내가 지역 재생 설루션으로 제안하는 대안을 굳이 표현하자면 소지역 창조 커뮤니티다. 지역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지역 고유 자원을 연결한 브랜드와 산업을 개발할 수 있는 소지역이 내가 구상하는 창조 커뮤니티다. 나는 강연에서 한국 농촌 창조 커뮤니티 모델로 홍성 홍동마을, 임실 치즈마을, 고창 상하농원(농촌 테마파크)을 제시한다.


글로벌 로컬 담론을 초기에 주도한 학자는 ‘로컬의 미래’로 유명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다. 그가 제안하는 지역의 미래는 무엇일까? 중세로 돌아가자는 거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초지일관 친환경과 공동체 중심의 자급자족 지역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을 도시 단위에서 어떻게 실현하는지, 그리고 어떤 도시나 지역을 모델로 설정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미국은 탈산업화, 소도시주의, 창조도시, 소수 인종 인권 중심으로 지역을 논의한다. 미국 지역 담론은 양극화다. 동부, 서부 해안 지역은 번성하지만 전통 산업이 모여있던 중서부 지역의 도시는 1980년대 이후 제조업 기반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는다. 중서부 산업 도시를 어떻게 살리는지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J.D. Vance의 'Hillbilly Elegy’가 사회적으로 방치된 중서부 중산층과 노동자 가족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흐름이 소도시주의다. 토마스 제퍼슨의 농업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은 아직도 농촌 소도시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소도시주의 관점에서 학교, 대학, 커뮤니티 등 시민의식과 교육기관 중심으로 미국 소도시 미래를 찾는 책이 James Fallows의 'Our Towns'다.


대도시 원도심 재생 논의는 변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창조도시 이론이 우세했지만, 2010년 후반부터는 소수 인종 커뮤니티 보호론이 도시재생 담론을 주도한다. Drexel 대학의 Bruce Katz 교수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미국 학자와 활동가는 지역 상인의 기업가 정신과 창조성보다는 정부와 민간 펀드를 통한 커뮤니티 프로젝트 투자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는 지역 담론이 없을까? 최근 강원도청의 초대로 한국에 온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샹뱌오 박사의 인터뷰 기사에서 현재 중국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중국에서 거주하지 않고 중국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중국의 미래를 지역 분권, 로컬리티에서 찾는 것은 신선하다. 중앙 정부에 의존하는 산업 정책보다는 로컬 푸드, 토론 공동체, 예술 공동체에 지역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국 지역 활동가가 생각하는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과 공동체를 강조한 노르베르 호지의 로컬 철학을 계승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지역재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는 일본이다. 위성오피스, 관계인구, 고향사랑기부제, 지역소개소 등이 일본이 최근 한국에 수출하는 지역재생 정책이다. 지역 전문가나 활동가가 아닌 일본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최근 한국 디자이너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디자이너라는 하라 켄야가 일본 지역, 아니 일본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는 ‘저공비행’을 출간했다.


같은 고민을 해서인지 서문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이 책은 일본의 미래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인 구상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산업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제안이다. 저공비행은 나 자신이 일본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깨달아 가는 여행이자, 이 땅이 지닌 잠재력에 눈을 뜨는 체험이었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일본의 풍토나 문화의 희소성과 독창성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그런 일본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는 자연의 증여에 둔감해진 채 포스트 공업화의 행방을 내다보지 못하고 헤매는 이 상황이 이상할 따름이다. 이제 슬슬 물건 생산에서 가치 생산으로 시점과 발상을 전환하고, 이 땅의 잠재성을 자원으로 운용해야 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viii-ix).



포스트 공업화의 행방? 나는 라이프스타일, 로컬, 골목상권을 탈산업화의 궤적으로 인식한다. 라이프스타일, 로컬, 골목상권을 연결한 창조 커뮤니티, 로컬 콘텐츠 타운이 내가 제시하는 탈산업화 지역 경제의 비전이다.


하라의 설루션은 새로운 일본 럭셔리와 호텔의 디자인이다. 그가 이렇게 거칠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의 질문은 간단하다. 일본의 지역을 가장 ‘비싸게 파는’ 방법이 무엇일까? 답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을 방문해도 사람의 마음에 감동의 불이 켜질 때는 그 나라와 문화의 본질을 바탕으로 환대받았을 때다” (p88).


그는 다른 나라가 복제할 수 없는 일본만의 콘텐츠를 일본의 럭셔리로 표현한다. “일본의 럭셔리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일본인이 어떤 방법으로 가치를 발견해 왔는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p104). 그가 발견한 일본 럭셔리는 자연을 두려워하는 자세, 안과 밖의 소통, 현관과 바닥의 전환, 인식의 형태, 공간의 다의성, 수직과 수평, 모서리와 테두리, 물과 온천, 살아 있는 초목을 놓다, 돌을 두다, 청소 등 총 11개다.


결국 하라는 공간과 장소에서 구현된 일본의 미의식을 찾는 것이다. 경제적 자원과 기업 생태계를 찾는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로컬 산업 발굴 방법이다. 하지만 한국의 누군가가 한국 장소와 공간에 담긴 한국인의 미의식을 이렇게 디자인 가능한 (디자인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일본의 미의식을 발굴하고 소개하고 싶은 하라가 호텔을 일본 로컬의 플랫폼으로 제안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호텔은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구상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라는 호텔 중에서 이동 호텔을 강조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생소하다. 물론 이동 호텔이 그의 미니멀리즘과 노마드 철학과 일치하지만, 과연 그가 강조하는 지역의 발견에 좋은 여행 방식일까?


나에게 흥미로운 점은 그의 책에는 장인과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장인, 건축, 커뮤니티 자원이 풍부한 일본에서는 로컬 디자이너가 연결과 제안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은 다른 것 같다. 지역을 로컬 중심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개인과 커뮤니티 단위의 콘텐츠 확충이 중요하다. 내가 로컬 콘텐츠 메이커스페이스 중심의 로컬 콘텐츠 타운을 제안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장인과 건축 자원이 풍부해져야 하라 식의 로컬 디자인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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