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여행을 떠나면서 다섯 권의 책을 챙겼다.* 운이 좋아서인지 하나하나가 여행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로마와 그리스 부상의 역사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 그리스 민주주의 역사는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지중해편, 지중해 패권 전쟁의 역사는 송동훈의 에게해의 시대, 동로마제국, 오토만제국 등 터기 지역 역사는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지중해편, 아테네 철학은 플라톤의 국가론, 로마 스토아철학은 마르쿠스의 명상론이 좋은 입문서다.
더 큰 행운은 그리스로마의 현대적 의미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항상 그리스로마에서 의미와 교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서양문명의 발상지에서 항상 시대에 적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그리스로마에서 찾으려 한 것은 인간과 인간 사회의 원형이다. 그리스로마를 통해 종교와 영주의 도움 없이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삶과 사회를 구상했다.
Al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현시대의 지식인도 그리스로마에 동일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떤 일, 삶, 사회가 가장 인간적인 일, 삶, 사회일까? 인간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 삶, 사회가 무엇인지 안다면, Al와 로봇에 종속되지 않고 그것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브런치는 다섯 권의 책에서 얻은 감상을 정리한 글이다. 말 그대로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독후감이다. 극히 제한적인 독서를 통해 그리스로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첫 번째 질문은 인간적인 일이다. 그리스로마는 각 계급에 주어진 일이 고정된 계급사회다.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인간적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현대 크리에이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수공업자의 지위는 낮았다. 리처드 세넷이 지적한 대로 그리스 사회는 고전시대(기원전 600-334년)를 제외하곤 수공업자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리스로마인의 철학은 명확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맡은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의 기술을 습득해야 하며, 그 일로 성공하려면 자신만이 아닌 기술의 대상에게도 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반드시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어떤 유혹이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행할 것을 조언한다.
정의로운 사회의 역할도 따른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모든 일을 그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는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철학자 계급에 일임하는 것이 현명하다.***
“모든 기술은 각자의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 각각의 대상에 이득을 주는 것이오. 즉 기술은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에 이익을 줌으로써 그 기술을 구사하는 전문가에게 보수라는 이익을 부과하는 것이오…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보다는 통치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봐야 하오.” (플라톤, p45)
두 번째 질문은 인간적인 삶이다. 그리스로마인은 철학을 통해 시민과 정치인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좋은 삶은 정의로운, 정의를 추구하는 삶이다.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기술의 대상에게 이익을 주신 삶이다. 국가론 대화의 상당 부분을 정의로운 삶이 불의의 삶보다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철학자의 본분은 진리의 추구다. 철학자에게 정의로운 삶은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와 같은 동시대 철학자와 다른 점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목적이다.
스토아학파는 도덕적인 삶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학자인 키케로는 윤리적 정당성만으로 윤리적 삶을 살기 어려운 점을 간파한다. 그는 3단계 행동론을 제안한다. 1단계가 어떤 일에 대한 윤리적인 평가다. 2단계에서는 그 일의 윤리적 가치에 동기를 일치시킨다. 정의로운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동기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마르쿠스가 제시하는 동기부여 방식은 한마디로 소명의식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본분, 우주의 본분에서 기원한 해야 할 일, 즉 소명이 있다. 마르쿠스에게 소명은 우주와 공동체가 부여하고 이들의 섭리와 이익을 따르는 불멸의 영원한 가치다. 소명 추구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은, 하물며 죽음조차도 이성, 신과 우주의 섭리, 공동체 이익에 반하는 의미 없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간은 이를 자존감, 이성, 신앙심, 우주와 공동체 존중을 통해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이 인간적인 사회다. 소크라테스에게 인간적인 사회는 철학자들이 국가의 수호자로서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정의로운 정치를 실천하는 귀족정에서만 가능하다. 그가 저지하고자 하는 정치제도는 참주 체제, 즉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다. 소크라테스는 명예 체제, 과두 체제, 민주 체제 등 귀족 체제 외의 다른 정치 제도는 궁극적으로 참주 체제로 귀결된다는 이유에서 지지하지 않는다.
유독 그리스에서 당대 다른 문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참주 체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이유는 확실치 않다. 민주정 이전에 들어선 왕정과 참주제에 대한 아테네의 경험이 좋지 않았을 수 있다. 지리적 환경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50개의 그리스 폴리스는 산과 바라로 분리된 지리적인 환경 하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했으면, 이를 통해 독립심을 키웠다. 폴리스들은 그리스를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집중을 원하지 않았으며, 이런 반감이 참주제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가설은 이집트, 페르시아 등 아시아적 전제군주 제도를 반면교사로 삼은 가능성이다.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동시대 아테네 사상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그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상가로 지목해 죽일 정도로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송동훈 작가도 아테네 정신을 민주주의에서 찾고 시민으로 구성된 아테네 군대가 전제군주가 이끈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한 살라미스 해전을 세계를 바꾼 위대한 승리로 평가한다.
로마의 전통은 공화정이다. 권력의 분립과 상호 견제에 근거한 로마 공화정은 직접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인식한 아테네 민주주의와 다른 제도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기원전 509년에 시작된 로마 공화정의 형성과 완성 과정을 설명한다. 로마 공화정을 반석에 올린 사람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처형한 유니우스 브루투스다.
시오노는 아테네를 반면교사로 삼은 로마인의 ‘지혜’도 강조하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지배하던 기원전 453년 로마 원로원 3명이 일 년 간 아테네를 방문해 민주주의를 경험한다. 시오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공이 페리클레스라는 뛰어난 지도자 한 명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아테네를 방문한 로마 지도자들도 이를 인식하고 한 사람의 탁월함에 의존해야 하는 민주주의를 거부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시오노가 찾은 로마 공화정이 성공한 비결은 세 가지다. 첫째가 유일신을 거부하고 다수신을 신봉한 로마 종교다. 유일신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기독교와 달리 로마 종교에서는 다수의 신이 다양한 인간의 활동을 수호한다. 다수신 사회는 유일신 사회와 달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하다.
두 번째 요인이 정치적 개방성이다. 로마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복한 국가의 국민에게 시민권과 원로원 지위를 부여하고, 패전국의 자치 허용하며, 패한 군대 군인을 로마 군대로 편입하는 등 다양한 포용정책으로 영토 통치 비용을 줄이고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인이 공화정이다. 시오노는 로마 지도자들이 모든 시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명분에 빠지지 않고 엘리트 통지 중심의 공화정을 선택하고 지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엘리트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와 스토아학파 철학을 지지하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아테네 귀족정과 로마 공화정의 현대적 의미는 제한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을 일부 시민에게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엘리트 책임성의 중요성은 유효하다. 엘리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소크라테스, 마르쿠스, 스토아학파가 강조하는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은 맞다. 그들이 사익보다는 공익, 미신과 신화보다는 진리를 추구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Al 시대에 그리스로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르네상스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정신은 인간성 회복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오용으로 인류적 위기를 맞은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인간적인 일, 삶,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성패는 결국 시민, 특히 엘리트의 지적 능력과 도덕성에 달렸다는 것이 그리스로마인의 메시지다.
*2023년 여름 그리스로마 여행 중에 읽은 다섯 권의 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현대지성, 2018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I, 한길사, 1995
송동훈,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지중해편, 김영사, 2012
송동훈, 에게해의 시대, 시공사, 2020
플라톤, 국가론, 돋을새김, 2006
**고전시대를 연 솔론(기원전 640-560)은 예외적인 인물이다. 상인 출신인 그는 기술과 기술자를 우대해 올리브, 포도, 도자기, 조선, 해운 산업을 키웠다. (송동훈, 그랜드투어, p26-27)
***소크라테스가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시와 음악을 경계한다고 해서 그가 창의성의 중요성을 부정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남에게 이익을 주는 기술의 습득은 일정 수준의 창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