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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15. 2024

세종시 상권재생, 유통과 콘텐츠의 구분으로 시작해야

세종시 상권재생, 유통과 콘텐츠의 구분으로 시작해야


세종시의 상업 공간이 위기에 처해 있다. 도시 전체에 빈 점포가 넘쳐나고 있으며, 세종시청 인근 보람동 금강수변상가의 공실률은 무려 57%에 달한다. 이는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공실률 상승은 단순히 상가 공급 과잉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온라인 쇼핑 증가로 상가 수요 자체가 감소한 것도 한 원인이며,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는 점도 상권 침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콘텐츠 생산 부진의 원인은 상업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디자인의 상가가 과도하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건물 설계, 보행 환경 미비, 상가건물 간 보행 연계성,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국적으로 목격되는 상권 양극화 현상은 콘텐츠 생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서울의 홍대, 이태원, 성수동 등 차별화된 경험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상권에는 소비자가 몰리는 반면, 그렇지 못한 상권은 더욱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이는 상권의 본질이 단순한 유통에서 콘텐츠 생산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유통채널로서의 상권은 접근성, 연결성, 인프라, 상품과 서비스의 다양성 등의 요소에 의해 그 활력이 좌우된다면, 콘텐츠 생산지로서의 상권은 크리에이터들이 선호하는 환경을 갖추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능력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지금 세종시에 필요한 것은 '유통'과 '콘텐츠'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새로운 상권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우선 전체 상업용 공간의 공급량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한편, 각 상권별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여 유통채널과 콘텐츠 생산지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전체 공급량 조정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뉴욕시의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 뉴욕은 최근 장기 공실 오피스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통해 상업용 부동산 공급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세종시도 유휴 상가를 주거, 문화, 업무 시설 등으로 용도 변경하고 업종 규제를 합리화함으로써 상업 공간 총량을 감축하고 업종을 다양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간 투자사업 방식의 도입은 주목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빈 상가를 부동산 펀드에 매각한 뒤 전문 운영사가 시설을 개선하고 핵심 점포를 유치하는 방식은 공실 해소와 상권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상권의 새로운 비전을 함께 그려갈 때 도시 재생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통채널 상권 재생 방안

세종시 상권 중 다수는 전통적인 유통채널로서 디자인되었다. 앞에서 지적한 과잉 공급과 더불어 대중교통 접근성 부족, 상권 내외 보행 이동의 불편함, 주차장과 같은 편의시설의 부족, 획일적인 업종 구성으로 인해 유통형 상권으로서의 기능이 취약하다. 이들 상권이 유통채널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급 축소, 업종 다양화와 함께 교통 인프라 확충, 보행 환경 개선, 주차장과 공공공간 확보, 테넌트 믹스 최적화 등 유통 활동의 기본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다.


접근성 개선을 위해서는 버스 노선을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정류장을 상권 입구에 배치하는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 원거리 고객 유치를 위한 셔틀버스 운행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쾌적한 보행 환경과 주차 공간, 휴게 시설 조성에도 힘써, 고객들이 상권에 보다 오래 머무르며 소비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권 내 보행자 전용 거리를 조성하거나, 옥외 테라스 설치를 장려하는 등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점포 구성의 다양성 확보도 중요하다. 업종별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점포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야 한다. 유통 상권이라도 과도한 음식점 의존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매, 서비스, 문화, 체험 등 다양한 업종이 어우러질 때 상권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콘텐츠 생산지 상권 재생 방안

세종시에서 콘텐츠 생산지로서 기획된 상권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시 설계 당시 유통채널과 콘텐츠 생산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로 기획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콘텐츠형 상권으로서의 잠재력이 높은 세종시 상권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호수공원, 상가주택, 중심가로 지역은 특색 있는 카페와 공방, 복합문화공간 등이 모여 있어 문화예술 상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들 상권이 명실상부한 콘텐츠 생산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인재와 크리에이터들이 모여들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랜드마크 건물의 조성, 가로 환경 정비, 광장·공원 조성 등 물리적 기반 마련과 함께, 유휴 공간을 창작 스튜디오,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재활용하여 지역 특화 콘텐츠 생산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지역 예술가, 청년 창업가, 로컬 크리에이터 등 혁신 주체들을 적극 유치하고 이들 간 교류와 협업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 운영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창의 인재들이 상권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작업 공간, 네트워킹 플레이스 등을 복합적으로 갖춘 '창작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빈 점포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게스트하우스, 셰어오피스,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생산지 상권은 근린상가 단지에서도 가능하다. 근린상가 지역에도 쾌적한 가로로 조성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시삼십분장부 대표가 추진 중인 고운동 상가단지 재생사업은 공동화된 근린상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저렴한 임대료, 유동인구,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 등 근린상가만의 장점을 살려 로컬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브랜딩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콘텐츠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야외 영업, 건축물 용도 변경, 옥외광고물 설치 등에 대한 탄력적 기준 적용이 필요하다. 또한 창의 산업 육성을 위한 금융, 세제 지원 등 실질적 혜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콘텐츠 상권재생을 유형으로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스타필드처럼 전체 단지를 재생하는 단지형이 있다. 둘째, 별마당도서관과 같이 단지 내에 랜드마크를 유치하는 앵커형이 있다. 셋째, 군산 영화타운처럼 지역관리회사가 특정 거리의 다수 유휴공간을 재생하는 거리형이 있다. 단지형과 앵커형은 주로 대기업이 담당하는 반면, 거리형은 로컬 콘텐츠 개발과 문화기획 능력을 갖춘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이 비교우위를 점하는 분야다.


현재 콘텐츠 상권의 트렌드를 보면, 단지형과 앵커형을 도입하면서 거리형 사업을 병행하는 것이 로컬 콘텐츠를 지속 가능하게 공급하는 방법이다. 단지형과 앵커형 사업이 어려울 경우, 거리형 단독 사업도 건축 환경, 문화자원, 크리에이터 자원을 기반으로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중심가로 시범사업

시 전체 차원에서는 콘텐츠형 상권 활성화를 중심가로에 집중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세종시 중심업무지구의 관문인 어반아트리엄은 다섯 개 쇼핑몰이 단지내 보행로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 콘텐츠 생산지로서 발전 잠재력이 높다.


이곳을 매력적인 중심가로로 조성하고 '애비뉴세종'과 같은 이름으로 새롭게 브랜딩 한다면 세종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나성동 지역 전체를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키는 세종시의 다운타운으로 브랜딩 하는 그랜드 비전도 필요하다. 호수공원을 센트럴파크로, 박물관 지역을 뮤지엄마일로, 어반아트리엄을 5번가로 비유하면서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상권 활성화를 넘어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중심가로 사업이 시급한 상황이다. 선진 도시의 성공 사례에서 영감을 얻되 세종시만의 창의적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문화와 예술, 상업이 어우러진 개성 넘치는 도심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명실상부한 국가 행정수도로서의 위상과 품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세종시 일부 상권을 콘텐츠 생산형 상권으로 전환하는 사업은 단순히 지역 경제 활성화를 넘어 도시의 품격과 창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 원도심도 마찬가지지만, 뉴욕 브루클린, 런던 이스트엔드 등 다른 나라에서도 쇠퇴한 구도심 상권이 예술가와 젊은 창업가들의 실험 무대로 변모하면서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경험은 세종시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속가능한 재생을 위한 과제

지속가능한 상권 재생을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 개선과 더불어 상권을 이끌어갈 주체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상권의 정체성을 만들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결국 상인과 크리에이터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역량 있는 인적자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상권 활성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신도시 상권 쇠퇴는 단순히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권의 건강성은 지역 경제를 넘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자영업 부문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선도해야 하는 시대, '장사하기 좋은' 상권 조성은 도시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상권은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창조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세종시는 상권 재생을 단순한 상업 환경 개선이 아닌, 도시 혁신의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통형 상권과 콘텐츠형 상권의 차별화된 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행정과 전문가, 상인과 예술가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는 도시재생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상권이 도시혁신의 플랫폼이 될 때, 세종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침체된 신도시 상권을 되살리는 일, 그것은 곧 세종 시대 도약의 서막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한국경제, 세종시, 상가 공실 해결에 '민간 투자사업 방식' 도입 추진,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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