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에 대한 오해와 현실
최근 지역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골목상권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과연 골목상권이란 무엇이며, 왜 지역재생의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선 골목상권의 개념과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쇠락한 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모델을 만드는 데 있어 골목상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특히 골목상권에 대한 흔한 오해를 짚어보고, 그 이면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려 한다.
골목상권의 정의와 성공 조건
많은 오해가 골목상권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정부 역시 골목상권을 생활 밀착 업종의 소상공인이 활동하는 동네 상권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화 현상으로서의 골목상권은 이와 다르다. 골목상권의 본질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는 상권이라는 데 있다. 전자가 정부 지원의 대상이라면, 후자는 정부 육성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크리에이터 상권형의 골목상권은 주로 쇠락한 원도심의 저층 주거 지역이나 근린상권에 위치한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지원 없이도 독립서점, 베이커리, 커피숍, 게스트하우스, 편집숍, 복합문화공간 등 새롭게 주목받는 업종과 콘텐츠로 재생에 성공했다.
정부가 크리에이터 상권을 쇠락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육성하려면 성공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원도심 골목지역이 성공할 수는 없다. 골목길 자본론(2017)은 문화자원, 임대료 수준, 지역 정체성, 기업 자원, 공간 디자인 등을 성공한 골목상권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성공 요인으로 주목한다.
한국 도시에서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골목을 원도심 지역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원도심 밖에서는 대학가, 문화시설, 지역 특산물, 자연환경, 역사적 스토리, 특색있는 건축물 등 문화자원이 풍부한 가로로 연결된 저층지역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골목상권이 도시재생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곧 골목상권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과 연결된다.
골목상권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관광산업 활성화, 창조지구 조성, 인구 감소 지역 정주여건 개선 등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곧 골목상권에 대한 기존의 제한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다차원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의 거점
첫째, 골목상권에서 소상공인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 사람과 돈이 모이는 소상공인 지역이 골목상권 지역이다. 골목상권의 무엇이, 그런 상권에서 활동하는 상인의 무엇이 그 상권과 매장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질문해야 한다. 골목상권 성공 조건과 골목상권 주축 업종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으로 소상공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과제다. 소상공인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상권 중심으로 성공하는 소상공인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생태계 구축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골목상권에서 소상공인이 생존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콘텐츠와 서비스 개발이 필수적이다. 획일화된 상품과 서비스로는 대형 상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소상공인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골목상권만의 독특한 매력을 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메뉴 개발, 독특한 콘셉트의 인테리어, 친환경 재료의 사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소상공인들 간의 협력과 네트워킹도 중요하다. 골목상권 내에서 상인들이 협력하여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거나, 지역 축제와 연계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의 활동은 개별 점포의 홍보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상권 전체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 사회와의 소통과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
둘째, 골목상권은 지역에 필요한 새로운 관광산업 자원으로 중요하다. 획일화된 대형 상권과 달리, 골목상권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경주 황리단길, 강릉 명주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골목상권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골목을 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되는 셈이다. 지역 고유의 매력을 간직한 골목상권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다.
관광명소에서 벗어난 주거지의 매력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매일경제가 빈의 주거지를 빈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동네로 소개하듯이, 도시의 로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동네로서도 중요하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빈의 그래첼(Gratzel) 지역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숨 쉬는 곳이다. 유대인 생활 중심지였던 카르멜리터피어텔은 주민들의 시장과 브런치 카페, 독특한 소품숍과 패션 부티크들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동네다. 한국인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숍도 있다.
빈의 사례처럼, 화려한 명소 뒤에 숨겨진 동네들은 도시의 진짜 삶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거주민들이 즐겨 찾는 시장, 개성 있는 가게들, 편안한 카페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그 도시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찾는 '진짜 그곳 다운 장소'란 바로 이런 동네를 뜻한다.
따라서 도시재생 차원에서 골목상권을 바라볼 때, 인스타그래머블한 명소 조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이 유지되면서도 개성이 살아나는 동네 만들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그 도시만의 특별한 분위기와 경험이 살아나고, 여행자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수 있다. 화려한 관광 볼거리 못지않게, 동네의 정취를 간직한 골목상권이야말로 살아있는 도시의 매력을 보여주는 핵심 공간인 셈이다.
창조도시와 창조산업의 산실
셋째, 골목상권은 창조도시와 창조지구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창조도시 담론에서는 흔히 '노잼 도시 vs 꿀잼 도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노잼 도시는 일자리는 있지만 문화적 매력이 없는 도시를 말한다. 반면 꿀잼 도시는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여들고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꾸준히 탄생하는 도시다. 골목상권에 젊고 창의적인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들이 모여들면, 도시는 노잼에서 꿀잼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서울 홍대, 이태원, 성수동, 부산 전포동은 이미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창조산업을 잉태한 창조지구로 성장했다. 창조산업은 이처럼 대규모 산업단지가 아닌, 도시 내 창조지구에서 육성될 수 있다. 한국의 원도심 골목지역은 저렴한 임대료, 독특한 건축물, 오래된 가게들의 스토리 등 창조지구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골목상권은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 도시에 창의성을 불어넣는 문화적 실험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미래 세대 정주여건 개선의 핵심
넷째, 골목상권은 산업 육성의 관점을 넘어, 미래 세대의 정주 여건 차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플렉스 경제' 등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많은 도시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하고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도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측면에서 골목상권의 역할은 매우 크다. 동네 골목에서 개성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네 서점에서 책을 읽고, 동네 수제 맥주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도시는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난다. 취향에 맞는 로컬 비즈니스들이 가까운 골목에 자리 잡으면, 거주민들의 삶의 질은 한층 높아진다. 이는 골목상권을 통해 형성된 창의적인 기업 생태계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토대가 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도시에서 의미 있는 기업 생태계가 골목상권에서 파생되고 있다. 강릉의 커피, 양양의 서핑, 제주의 친환경, 경주의 불교 관련 브랜드들은 골목상권 기반의 대표적 사례다. 기존 지역산업과 연계한 특색 있는 골목상권 조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울산 북구 양정동의 자동차 애프터마켓 골목이나 군산 월명동의 술익는마일이 좋은 예다.
이렇듯 골목상권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소상공인, 관광, 창조산업, 정주여건 등 도시발전의 여러 축을 아우르는 종합적 처방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형개발 일변도에서 벗어나, 골목 단위의 창의적 재생에 주목할 때다.
물론 골목상권이 만능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건축환경, 보행환경, 문화자원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일부 골목에서만 가능하다. 성공적인 골목상권 조성을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지역 상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나친 임대료 상승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골목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공공의 적극적 지원과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도 필수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노력들을 더욱 확산시키고, 지속가능한 모델로 정착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