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동을 이해하려면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화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정지환 에디터 /김덕창 포토그래퍼
연구 분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다양한 문화산업 중에서도 지역문화 발전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친 지금, 문화력 경쟁에 뛰어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동네와 골목을 거닐며 지역이 지닌 개성을 강화하고, 한국의 문화 창출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최근 서울과 지방의 지역 간 이동이 잦아졌다. 지역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보나?
로컬의 반대 개념은 ‘중앙’이다. 과거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에 가서 “할리우드도 로컬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산업이 다양해진 만큼 영화를 만드는 나라와 지역도 많아졌기에 한 지역을 ‘중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도 로컬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로컬이라고 부르는 곳은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소지역 상업권인데, 이는 도시보다 작은 단위다. 그렇기에 서울 지역 안에도 다양한 로컬이 있다. 압구정 가로수길, 성수동, 이태원 등이 그 예다.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가면 프랑스 파리에 가더라도 동네 단위로 여행하지 않나. 서울도 이제 그런 도시가 된 셈이다. 서울에서 독립적인 문화와 개성을 지닌 로컬을 즐기는 데 익숙한 만큼 서울을 벗어나 각 지역의 문화와 개성에도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오히려 심해지는 것 같다
사회나 기업의 기준에서는 청년의 수도권 집중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사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가장 어려운 지역은 경기도다. 사람들은 경기도로는 여행을 잘 가지 않으니까.
최근에는 경주, 전주, 제주도가 문화적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의미에서 로컬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고, 즐길 거리도 다양해져 상호 이동도 많아졌다. 그만큼 최근 들어서는 수도권에 대한 선호, 지역에 대한 편견이 줄어드는 추세다.
지방 소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오히려 지방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거다. 인구나 산업 차원에서는 지역 소멸이 진행되고 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문화라고 하면 ‘예술’을 먼저 떠올린다. 지역적 특색을 의미하는 로컬도 문화다. 이에 대한 이해가 낮다 보니 지역별 라이프스타일이나 로컬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문화자원은 로컬 지역이 더 풍부하다. 이를 잘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로컬 콘텐츠의 힘으로 지역 소멸에 맞서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 이유다.
지역을 살리는 방법은 현재로선 ‘문화의 힘’밖에 없다. 자연도, 특산물도 지역문화의 일종이다. 이를 기반으로 문화 사업을 활성화해야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사실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역을 살리는 힘은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이 지닌 문화자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자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이 밖에도 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 지역 특유의 향토 등이 있다. 리조트나 풀 빌라 등 자연을 활용한 공간과 로컬 문화도 중요하다. 로컬 문화는 해당 지역에서 형성되는 청년 문화를 말한다. 한때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차박과 캠핑도 자연과 로컬이 결합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로컬이 청년 문화를 가리킨다면, 2030세대에 한한 문화 트렌드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지금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는 청년, 즉 MZ세대다. 다만, 이 로컬 문화를 개척한 건 4050세대인 X세대다. 압구정 카페 문화와 홍대 인디 문화 등 우리나라의 골목 문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다. X세대가 상권을 구성하고 MZ세대가 소비하는 구조인 셈이다. 문화 감수성을 갖춘 4050세대도 로컬 문화에 우호적이라고 본다.
현재 2030세대, 즉 MZ세대가 향유하는 로컬 문화에 4050세대가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
MZ세대의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옥과 전통주 등 한국적 문화부터 시작해 파인다이닝, 명품 문화조차 MZ세대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문화는 모두 X세대부터 시작되었다. 4050세대는 이미 문화가 깃든 예술적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게 아니라면 로컬 문화에 녹아들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국을 기준으로 로컬 문화가 활성화된 지역이 얼마나 되나?
로컬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다. 트렌디한 청년 문화가 반영된 곳으로 기준을 엄격하게 좁히면 [읍면동 기준으로] 6% 정도다.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겠다
쉬운 일은 아니다. 기준으로 잡은 모든 동네에 로컬 문화가 들어서기 어렵다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청년이 있어야 하고 접근성이 좋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축 자원이다. 보통 인기를 끈 로컬 지역은 모두 건축적 특색을 띤다. 한옥 마을이 대표적 예다. 서울의 로컬 문화 중심지가 모두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것도 그중 하나다.
건축물이 특색 있어야 로컬 문화를 활성화할 크리에이터들이 들어서고, 그들이 활용할 콘텐츠가 생긴다. 결국 크리에이터들은 공간으로 승부해야 한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공간이나 개성이 묻어나는 공간 말이다. 그들이 아파트 단지만 들어선 지역에서 무슨 콘텐츠를 만들겠나. 그러나 지금 국가 자체에 골목 지역, 로컬 지역 자원이 많이 소진된 상태다. 국가적 차원에서 각 지역에 건축 환경을 공급하지 않는 한 로컬이 활성화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컬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흥미롭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오프라인 콘텐츠로 승부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온라인을 이기는 방법은 로컬 콘텐츠 자체의 힘인데, 이는 결국 개성 있는 건축과 결합되어야 한다. 오프라인 콘텐츠가 디자인과 공간에 개성이 없다면 온라인에 비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 측면에서 각 지역에 건축 환경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인가?
그렇다. 실질적으로 지역 소멸의 문제는 건축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각 지역에는 주민 인구가 한정되어 있고, 고령화가 진행되다 보니 결국은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 내에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건축의 개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쉽다. 결국은 건축물을 보러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유럽의 생활문화나 문화예술 등은 모두 건축을 배경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것이다. 건축적인 매력이 없는 지역은 결국 잘 가지 않게 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옥 마을이 인기를 끈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옥은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를 갖췄다. 건축의 개성을 배경 삼아 그 안에서 음식이나 예술 등 다양한 콘텐츠가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지역이 살아나려면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물론 접근성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접근성이 좋지 않아 로컬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외에 비해 국토가 크지 않을뿐더러 이미 기차나 버스, 고속도로 등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런 만큼 접근성에 너무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걸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접근성보다는 건축 환경에 먼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다음에 로컬 크리에이터, 콘텐츠 순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로컬 지역이 양양이다. 양양의 서핑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이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다. 서핑이 좋아 양양에 놀러가고, 생산 활동을 하고자 직접 서핑 숍을 열고, 그러다 보면 서핑 교육이나 장비 대여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문화가 형성되면 새로운 경제 기회가 생기면서 주변에 음식이나 패션, 주거시설 등이 들어선다. 이 모든 흐름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이는 양양 로컬 크리에이터의 힘도 아니고, 양양군의 힘도 아니다. 양양의 서핑 문화는 죽도 해변이 지닌 지역의 개성으로 성장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이 개인화되고 다양화되어 간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 생겨나고, 맞춤형 생산자가 늘어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곳곳에 생겨난다. 이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이를 로컬이라고 부른다.
로컬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빵집’을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동네에서 먹고 사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업종이 있다. 빵집,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 서점이다. 카페는 그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빵집은 신선 제품인 만큼 매일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게스트하우스는 그 지역의 콘시어지 역할을 수행하고, 독립 서점은 그 지역을 소개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 네 종류가 로컬의 기초 업종이다. 더 나아가면 커뮤니티 비즈니스 성격을 띠는 라운지, 살롱, 코워킹 플레이스 등도 로컬 지역의 팬덤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지역 활성화에 영향을 미친다.
로컬 활성화 측면에서 디지털 노매드도 로컬 크리에이터만큼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디지털 노매드가 오프라인 지역에 얽매이지 않는 만큼 로컬 지역에 관심이 많다. 로컬에 그들이 거주한다는 건 소비 차원을 넘어 문화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으론 로컬 크리에이터가 창업자, 디지털 노매드가 소비자 같은 느낌이다
문화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선 모두가 생산자다.
로컬의 비전이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결국은 우리가 로컬 문화라고 부르지 않아도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로컬 문화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 출신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가 주장한 ‘인간 욕구 위계론’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생활 반경이 좁아져야 가능하다.
지역 소멸과 저출생 등 사회문제는 결국 라이프스타일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생기는 문제다. 기성세대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낮으니 미래세대가 원하는 솔루션을 제시할 수 없는 거다. 막연히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결국 로컬 지역을 활성화하려면 로컬 콘텐츠를 살려야 하는데, 이는 문화산업이기에 일자리를 만든다고 공장을 짓거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출처: 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