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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21. 2018

상권과 장인대학 중심으로 소상공인 생태계를 관리해야

 

현재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자영업과 소상공인 산업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논쟁한다. 단기적으로는 손실 보상과 재정 지원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자영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올바른 지원 정책에 논의는 소상공인 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소상공인 산업은 장기적으로 구조 조정되어야 하는 사양산업이 아니다. 대기업, 스타트업과 함께 산업 생태계의 한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대기업이 고용을 줄이고, 스타트업이 노동 대체 기술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중산층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창의적 소상공인의 육성이다.


오프라인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골목상권과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들이 창의적 소상공인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지금부터라도 그동안 방치한 소상공인 생태계를 정상화, 즉 소상공인이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소상공인 영역을 따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보완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생각해야 한다.


선제 조건은 소상공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소상공인을 훈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한다. 정책 논쟁에서도 소상공인에 대한 존중이 없다. 대기업과 소상공인,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이 충돌하는 영역에서 시장 논리(효율성, 소비자 주권, 시장, 규제개혁)로 소상공인을 다그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대기업, 스타트업, 소상공인이 상호 보완하는 생태계로 중산층 경제를 복원하는 일이 우선이다.



실리콘밸리 모델이 창업 생태계의 전부가 아니다 

  

소상공인 생태계 복원은 기업가 정체성의 복원으로 시작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기업가의 의미는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창업자로 각인됐다. 대중적인 창업 서적이나 대학교 창업 교육 과정에서도 기하급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으로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하고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단기간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롤모델로 삼는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유니콘 스타트업은 대부분 미국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한국 젊은이들은 이들 기업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래이 페이지, 마크 저커버거를 이상적인 기업가로 존경한다. 문제는 실리콘밸리 모델의 제한성이다. 엘리트 엔지니어링 교육을 받은 인재가 어려운 경쟁을 뚫고 벤처 캐피털 투자 유치에 성공해 창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교육 배경이나 투자 유치 방식에서 극소수의 창업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폐쇄적인 생태계다.  


미국에서 조차 실리콘밸리 모델은 창업의 주요 경로가 아니다. 현재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20%만이 벤처 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업이다. 1979년 이후 상장된 기업 중에서도 벤처 캐피털 투자 기업의 비중은 과반에 못 미치는 43%에 불과하다 (Strebulaev and Gornall, 2015). 나머지는 자기 자본, 대출 등 전통적인 투자 방식으로 창업하고 성장한 기업이다.


실리콘밸리 모델을 복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기술 기반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나, 한국에서 인재와 자본이 모여야 가능한 실리콘밸리 모델의 후보지는 서울 강남, 경기 판교,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한정돼 있다. 실리콘밸리를 배출한 미국에서 조차, 실리콘밸리에 상응하는 기술 기반 벤처 생태계를 성공시킨 도시는 보스턴, 시애틀, 오스틴 등 소수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 복사가 어려운 이유는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다. 1980년대 PC 산업으로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가 된 실리콘밸리의 개척자들은 1960년대 개인 해방을 위한 반문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 실리콘밸리 자체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산물인 것이다.   

 


엘리트주의는 창업 생태계를 위협하고 반기업 정서를 유발한다


한국에서 실리콘밸리, 즉 기술기반 창업 모델을 강조하다 보니, 창업은 카이스트와 같은 일류대학 출신만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많은 사람이 일류대학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과 벤처 캐피털 투자를 쉽게 유치한다고 믿고 있다. 창업과 기업가 분야의 엘리트주의는 창업 생태계 자체를 위협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규모인 상위 1%만이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중국의 창조경제 슬로건인 “대중의 창업, 만인의 혁신”의 정신을 본받아 창업 인재의 풀(pool)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을 엘리트의 창업으로 한정하는 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공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이 창업 정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 창업정신을 포함한 혁신, 리더십 등 그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정혁준, 2013).


소상공인의 반기업 정서도 불필요한 부작용이다.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 직장에서 조기 은퇴한 중장년층 등 비자발적으로 소상공인이 된 사업자들은 처음부터 노력의 한계점을 긋고 정부 보호를 정당화한다. 한계 산업, 보호대상 산업에 종사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사업을 중소기업, 제조업으로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에서 중소기업이 나오고, 그중에서 일부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전통적인 기업생태계가 단절된 것이다. 기업가정신을 갖추고 적절한 훈련을 받은 인재가 소상공인 창업에 나선다면, 창업 성공률도 높아지고 이에 따른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정부에 대한 과도한 의존보다는 정당한 경쟁을 선호할 것이다.


소상공인 가게로 출발해 도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삼진어묵(부산), 성심당(대전), 사러가쇼핑센터(연희동)



생산 활동하는 모든 사람이 기업가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업가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을까? 창업 교육/훈련/지원 등 전 영역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정책이 필요하다. 교육 영역의 우선 과제는 창업과 기업가정신의 대중화와 한국화다. 창업의 롤모델을 기술 창업에 한정하지 말고, 생활혁신, 지역혁신 등 全 창업 영역에서 ‘의미 있는’ 사업에 성공한 창업자로 확대해야 한다.  또한, 남이 보지 못한 기회를 포착해 이를 성공적인 사업 모델로 실현한 사람으로 창업자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한다. 기업에서 회사를 위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안한 혁신적인 종업원도 기업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창업한 기업가를 롤모델로 부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창업할 인재에게 한국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올바른 교육 방법이다. 한국 기업인을 경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등 어려운 환경에서 글로벌 기업을 창업한 한국 기업인에 대한 대중적인 서적이 출판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기업인이 외국 기업가보다 더 멋진 롤모델로 자리 잡아야 한국 토양에 맞는 기업가상과 정신을 확립할 수 있다.


차세대 소상공인 모델 로컬 크리에이터 - 강릉 웨이브라운지, 시흥 월곶동 책한송이, 사당동 DAIR



자영업자, 소상공인도 기업가상과 철학이 필요하다 

  

소상공인 인재 육성 시스템도 중요한 과제다. 소상공인 가게도 엄연한 기업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다른 기업과 경쟁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 다르지 않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소상공인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 소상공인 생태계는 다수의 중견기업과 대기업을 배출할 수 있는 중견기업과 대기업 육성의 모태다. 따지고 보면 현대, 삼성,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대기업은 모두 지역 기반 소상공인으로 출발했다. 지금도 일부 기업은 벤처 투자나 기술 특허 없이 소상공인 또는 독립기업으로 성장한다. 최근 로레알이 인수한 패션기업 ‘스타일난다’는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해 자기 자본만으로 기업 가치가 6천억이 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과거에 비교하면 현재 소상공인 생태계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과잉진입-과당경쟁-과다퇴출이 상존하는 구조적으로 영세하고 불안정한 산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소상공인 기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병기(2015)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제조업 중소기업의 0.0007%, 서비스업 중소기업의 0.00009%만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구자가 소상공인 실패의 원인을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에서 찾는다.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수직계열화로 중소기업을 통제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상공인 경쟁력 약화는 인재 육성 실패에 기인한다. 전문대학, 직업전문학교 등 소상공인 인력을 육성하는 기관이 창업 성공에 필요한 도제교육과 창업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으로 성공한 창업자는 대부분 가업 승계, 취업 경험 비공식적,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도제교육을 받았다. 도제교육을 받지 못한 절대다수의 소상공인 창업자들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2014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 방안」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짧은 기간 미숙한 준비로 창업 후 6개월 이내 폐업한 사례가 절반을 넘었다.   


또 다른 취약점은 창업지원의 부재다. 전문대학과 직업전문학교 모두 자격증 취득과 취업 교육에 집중해, 졸업생의 창업을 지원하지 않는다.  정부의 소상공인 창업 교육도 기본 경영 지식을 제공하는 단기 교육 과정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능력, 기업가정신, 운영 능력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단계별 창업 교육이 부족하다.   

   

도제 훈련과 창업교육을 제공하는 새로운 소상공인 육성 모델은 일본의 직인대학과 같은 ‘장인대학’이다. 장인대학의 주체는 지역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지자체가 적절하다. 중요한 기능은 기존 장인을 도제 교육 인력으로 활용하고, 체계적인 창업 교육을 통해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개척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중견기업 테라로사를 배출한 강릉 커피산업 생태계



소상공인으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상향식 기업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소상공인 창업 생태계의 구축이다. 현재 정부가 구축하려는 창업 생태계는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설정한 기술 스타트업과 벤처 캐피털 투자 중심의 시스템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있는 소상공인 창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건강한 기업 생태계는 지역 기반의 소상공인이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점진적으로 확장 기회를 찾아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상향식 이동 경로가 열린 개방적인 시스템이다.  


단기적으로 일정 규모의 기업을 창출하기 위해, 사내벤처, 대기업 분사, 대기업 협력 업체 창업을 권장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대기업 의존도를 높이고 대기업과 경쟁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반발을 일으킨다. 다소 시간이 걸려도, 장인대학과 같은 인재 육성 기관을 통해 독립적인 소상공인 기업을 창업할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위해 바람직하다.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창업은 다른 형태의 생태계를 요구한다. 수직 계열화된 대기업과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달리 소상공인 생태계는 특정 지역에 집적하고 의존하는 생태계다. 대기업과 스타트업과 경쟁하는 소상공인은 앞으로 더욱더 지역 자원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수용하기 어려운 지역 기반 비즈니스가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된 것이다. 지역 기반 비즈니스란 지역이 주는 자원과 네트워크를 연결해 지역에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새로운 기업가 자원과 지역산업을 발굴해야 하는 정부도 지역 또는 상권 단위로 소상공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관리해야 한다. 투자사와 연구개발기관이 아닌 상권관리 시스템과 상권 기반 장인대학이 소상공인 생태계의 중심이다.   


대기압, 스타트업,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요한 가치는 한국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기업가상이다. 출신 배경과 사업체 규모와 관계없이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는 모두 동등한 기업가로 존중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소상공인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작업은 소상공인 산업의 특성에 맞는 생태계 구축과 지원으로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Will Gornall and Ilya A. Strebulaev. 2015. The Economic Impact of Venture Capital: Evidence from Public Companies. Working Paper No. 3362. Graduate School of Business, Stanford University.

백필규. 2017. “중소기업생태계 문제점 분석 및 혁신 방안.” 한국의 경제생태계. Near 재단 편저. 21세기북스.

이병기. 2015. “우리나라 기업의 역동성 저하 점검.” KERI Brief, 15-2.

정혁준. 2013. “창의혁신소통의 21세기형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기업가정신. 한국경제연구원.  

한정화. 2017. 대한민국을 살리는 중소기업의 힘. 메디치.


*1차 수정 2020/4/16

*2차 수정 2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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