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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08. 2018

다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일주일 동안의 간이 이별

연락하지 않고 지낸 일주일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래, 한 번 일주일 동안 치열하게 생각해보자.


그런데 치열하게 생각하는 게 도대체 뭐지? SWOT 분석이라도 해서 결혼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따져
봐야 하는 건가,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 일단 생각을 쉬기로 했다. 내 두뇌에게 휴식을 주면 푹 쉬고 일어나 열일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이 진공상태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오빠가 없어도 내 삶은 충분히 여유롭게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
나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이불을 펴고 누워 노닥거리는 삶, 나는 혼자서도 잘 살고 있는
이 상태가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6년 동안, 가끔 오빠랑 헤어지면 내가 괜찮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데 늘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헤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순도 100%의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평화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삐의 하우스메이트이자 나의 친구인 A에게서 전화기 왔다. 그 하우스메이트는 은행원인데, 혹시 신상품 계좌를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내일 모레까지 급하게 개설해야 하는 계좌여서 퇴근하고 우리 집 앞으로 서류를 들고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이때다 싶었다. 설마 하우스메이트만 우리 집으로 보낼까? 에이, 그건 좀 그렇지. 아무리 내 친구여도. 길도 알려줄 겸 오빠도 같이 오겠지?


하우스메이트만 왔다. 나는 굳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 오빠 혼자 왔어?

- 응, 너네 일주일 동안 연락 안 하기로 했다며?

- 그래. 오빠는 좀 어떤 것 같아?
- 글쎄… 똑같은데?"
- 그래도 뭔가 우울해 보인다거나 운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 괜찮던데? 집에 와서 영화 보던데?"
- 그럴 리 없는데. 우리 오빠가 시킨 거 아니야? 괜찮은 척 해달라고?

- 싸인이나 해.


나는 문득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평화는 서로가 합의한 상태에서 잠시 연락을 쉬는 상태
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자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 머리는 불안으로 가
득찼다!


오빠는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나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결혼 전에 내가 전전긍긍하면서 임신테스트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면, 오빠는 티 안나게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배어나오는 기대감을 감추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면 기대감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기대감 100%인 표정을 무슨 수로 감추나. 더군다나, 걱정은 1도 없으면서.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기도 안 낳겠다고 선언한 상태였고, 오빠의 아버지도 싫고 어머니도 싫고

우리 엄마도 아빠도 다 싫고 결혼도 싫다고 한 상태였다


내가 만약 오빠라면 나는 나와 결혼하고 싶을까?


슬프게도 아니었다, 내가 오빠라면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을 것 같았다. 아이도 낳아서 알
콩달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불안감이 더 엄습해왔
다. 오빠가 지금 아무렇지 않은 건, 나와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일주일을 시작하기 전에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보리야, 오빠는 보리랑 꼭 결혼하고 싶고 계속 함께 있고싶어.

나는 거기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할거야.

그러니까 헤어진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좋겠어.  


하우스메이트의 방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오빠가 나를 떠날 리 없다고 자만하면서.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거 아닌가? 나도 결혼하겠다고 했다가 안 하겠다고 했는데?


이 생각에 도달하자 급격한 불안감이 느껴지고, 나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급격하게 요동쳤다. 한 쪽에서는 이 복잡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팔자를 스스로 꼬는 거라고 나를 윽박질렀고, 한 쪽에서는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평생 미친 년처럼 살아가게 될거니까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잡으라고 나를 윽박질렀다. 지금 깨달은 건데 나는 왜 그렇게 욕을 했던 걸까. 올해에는 꼭 다정한 혀로 업그레이드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무튼, 우리는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고 월요일 밤은 너무 잽싸게 도착했다. 나는 아직 아무런 확신도 없는데.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죽도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무작정 걷기로 했다. 회사 앞에 있는 한강공원으로 가서 평화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과 공놀이를 하는 여유로운 표정의 사람들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결판을 내야 했다.


나는 일단, 그래. 헤어지자! 라는 문장을 평화로운 저 풍경에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안 돼! 라고 외치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그 문장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시댁은? 우리 엄마아빠는? 내 팔자는? 이라는 문장을 차례대로 던져보았지만 괴물은 재빠르게 먹어 치웠다. 


그럼 결혼을 할까?
괴물은 이제 배가 부른지 잔디밭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진짜 나 결혼하냐고! 

그럴걸.


그럼, 왜 결혼하는 건데?

괴물이 눈을 꿈뻑거리면서 말했다.
오빠랑 헤어지기 싫으니까.







상담실에 앉아서 우리는 각자 입장을 발표했다.


오빠는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겨우 안심이 됐다. 하지만 부모님들과도 왕래하면서 지내고 싶고, 아이는 낳고 싶지만 내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나는 결혼은 해도 아버님은 안 보고 싶다고 했었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내 이유는 심플했다. 오빠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자 선생님은 한 가지를 덧붙이셨다.

결혼하고 싶다면 아버지에 대한 공부를 해볼 것.


네, 우리 아빠요? 저희 아빠 말씀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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