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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란 Jul 31. 2024

INFJ의 책 읽기

독서의 부작용 vs 찐효과

이걸 어떻게 팔지? 어떻게 더 좋아 보이게 만들지? 실제로 더 좋게 하려면 뭘 해야 하지? 고객 니즈에 딱 맞는 걸 팔아야 함은 당연하거니와 없던 니즈까지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내 일이다. 제품, 서비스 그게 뭐든 사실상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내던져진 세월이 거진 15년이다. 어떻게든 더 잘해서 더 잘 팔자는 생각을 매일 숨 쉬듯 해온 덕분인지 이제 뭐든 좋아 보이게 만드는 데는 도가 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점수야 고객이 주는 거니 잘한다 못한다를 건방지게 내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있다. 자신감을 가지는 건 내 자유니까☺️


브랜딩, 마케팅, 세일즈 중 어느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사업을 할 때 이 세 가지 요소는 필수적이다. 아니 필수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다. 10년 전 내 브랜드를 만들던 당시 도무지 물어볼 곳이 없어 홍성태 교수님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와 같은 책에 밑줄 긋고 귀퉁이 접어가며 브랜드 스토리와 철학을 만들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책을 많이 읽어야 1년에 대여섯 권 정도였다. 책 읽을 여유가 어디 있어 그 시간에 일을 더 해야지라고 생각할 때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직접 경험만으로 인사이트를 얻기에는 돈, 시간, 에너지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인사이트 가득한 유명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캐치해 내는 것 같아 보였다. 궁금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자서전을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가장 싸고 쉽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책이라는 걸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렇게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해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약간 MBTI발도 있는 걸까. INFJ인 나는 활자를 보면 스트레스가 막 풀린다. 변태처럼 책 냄새도 킁킁거린다. 좋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건지 아니면 자꾸 읽다 보니 중독이 돼서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다. 


독서의 부작용이 있었던 적도 있다. 독서를 하면 할수록 내가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았나 싶어 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진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넘기니 오히려 위축이 아닌 겸손의 힘이 생기더라. 카운팅을 하면서 읽게 된 이후의 권수로만 200권 정도를 넘어간 즈음부터는 이게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도 여러 번 했다. 잠재의식에 있던 생각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 연결되는 느낌. 어머 이게 독서의 찐 효과인가 싶어 자신감 뿜뿜 하는 시기도 있었고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군가에게 책 읽어보란 얘기를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스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절대 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 나도 그랬듯 원래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 것이 인간 아닌가.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읽어봐’가 과연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말일까? '너에게 이런 책을 추천하는 내’가 좋은 게 아닐까. 책 추천을 핑계로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책 추천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생각 또한 독서를 하며 바뀐 생각이다.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이 생각 또한 그냥 문득 툭 하고 들었다. 요즘은 그냥 책을 읽어 너무 행복한 내 취미를 이렇게 SNS에 공유할 뿐. 그랬더니 오히려 ‘영업당했다’며 ‘책을 샀다, 모닝독서를 해봤다’는 DM이 오더라. 오 이거군! 우리 같이 많이 많이 읽어요☺️


요즘 나는 고전에 빠졌다. 특히 고전문학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거야. 시작은 너무도 유명한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이었던 것 같다. 이 책 완전 INFJ 필독서 느낌이다. 독서 편식으로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의식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접하려고 노력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철학이 자기 계발서고 문학이 심리학이며 역사가 경제경영서구나 역시 고전은 고전이구나'라는 생각. 특히 문학책은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름다운 문장들과 적절한 비유, 단어 선택, 감정 묘사가 정말 기가 막힌다. 작고 작은 내 세계가 조금씩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가성비 끝판왕 취미가 너무 좋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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