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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레이 Feb 05. 2019

인생역전기보다는 현실비판서, 힐빌리의 노래

노동계급의 학습된 무기력과 문화자본 결핍을 극복하기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를 읽고 다음 두 가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1. 현대 사회에서 노력을 통해 계층 이동이 가능한가.


 이 글을 쓴 J.D 반스는 미국 중서부 애팔래치아 산맥 근방 오하이오 소도시 미들타운에서 자란 시골 촌뜨기이다. 한때 그 소도시는 강철 회사 암코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중산층이 형성되었으나, 암코가 떠나면서 도시가 몰락하게 된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가정에서 불화를 겪고 있었고, 마약 중독에 찌든 삶을 살고 있었다. 몰락한 자동차 공업도시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자란 에미넴이 오버랩될 정도로 참담했다. 글쓴이의 엄마가 대표적인 예로, 수시로 애인을 갈아치우고 알콜 및 마약 중독자 인생을 전전한다. 뒷일은 관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마지못해 사는 양아치 이웃들, 애인을 맨날 바꾸며 무책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알콜 중독자 엄마. 


 그는 해병대에서 '의지'를 학습하고 새사람이 되어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하였고, 결국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한다. 난 그가 충분히 리스펙을 받을 만한 사람이며, 롤모델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우울한 과거를 극복하고 엘리트 계층을 벗어난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를 용기 있게 제기하고,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솔직하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에세이의 메시지는 따뜻하면서 따끔하며, 꼰대의 재수 없는 충고로 읽히지 않는다. 문체도 쓸데없이 미화하려는 덧붙임 없이 간결하다. 이 책을 읽은 미국 노동자 계층 출신들이 "He's real"이라고 지지와 격한 공감을 보냈을만하다.


 그가 대단한 이유는 열심히 노력하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보란 듯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은 분명 사라지고 있고, 미국은 굉장히 불평등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저소득층은 재정적으로 더욱 취약해졌다. 게다가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마련한 저소득층은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에 더해 집값 폭락으로 크게 손실을 입게 되었다. 가난하고 금융적 지식이 거의 없는 저소득층은 금융엘리트들에 의해 약탈당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지역 미들타운도 철강회사 암코가 떠나면서 집값이 반토막 났고, 주민들은 집을 처분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갇혀버렸다. 일자리가 없는 곳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다 허사였다. 게다가 일 하지 않고 복지혜택을 쓸어 담는 복지 여왕(Welfare Queen)을 여기저기서 볼 때마다 열심히 일해야 하겠다는 근로의욕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선진 공업국에서 빠르게 중산층이 공동화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매해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좋은 일자리를 얻는 데에 성공한 노동 귀족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저소득층간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취업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똑똑한 축에 속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기회를 잡지도 못하고, 그저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의 모습을 면접장에서 쥐어짜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기업에서 나오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나 보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내린 결정이 앞으로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일컫는다. 기대할 것이라고는 없는 미들타운의 환경부터 혼란이 끊이질 않는 우리 집안의 상황까지, 인생은 내게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가 그런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도록 구해줬다면, 해병대는 내게 신기원을 열어줬다. 집에서 내가 학습된 무기력을 배웠다면, 해병대에서는 '학습된 의지'를 습득하고 있었다." 


  J.D 반스는 학습된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주위 환경을 바꾸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 스스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해병대를 만났던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밝혔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게 빠지게 만드는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침범받지 않는 공간에서 꿈을 키우든, 자신의 꿈을 키워줄 조직에 들어가 긍정적 영향을 받든, 롤모델 또는 멘토를 쫓아다니든 아무튼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더불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비록 주위 상황이 무기력하게 만들지라도, 올라갈 수 있다는 의지를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의 말처럼 외부 환경에 의해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곳에서 의지를 학습하자.  



 2. 문화자본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후천적으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소비, 즉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 가족의 가정환경, 사회적 위치, 재력, 교육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세습된다고 말했다. 가난한 배경에서 출발하여 높은 사회적 위치 및 재력을 달성한 인물들이 나중에 결핍을 크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단기간에 축적할 수 없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인성이 모자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성과 문화자본은 다르다. 요지는 예의범절(Courtesy)과 매너(Manner)로 설명되는 문화자본이다.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미스터 다아시(Darcy)는 탄탄한 문화자본을 갖추고 있었다. 킹스맨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 대사만 들어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영국신사의 품격이 그대로 느껴진다. 

 영국은 한 번도 근대사회 이후 본토가 초토화당한 적이 없고(2차 세계대전 때 몇 차례 독일 V2 로켓이 런던에 떨어진 적은 있어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다. 그 때문에 사회 계급의 변동 없이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는 귀족사회이다. 평민, 중상층, 귀족의 말투와 취향은 각기 확연히 다르다. 영국에는 축구팀이 지면 폭력적으로 난동을 피우는 훌리건들도 있지만, 토지를 집안 대대로 물려받고 귀족 영어를 구사하는 계층도 있다. 


 J.D 반스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엘리트 계층의 현재 부인을 만났다. 그는 식사 매너, 식습관, 언어 습관, 문화 취향 등 전반적인 모든 생활양식에서 자신이 뒤떨어진다고 느꼈다. 그는 대학교 가기 전까지 탄산수가 뭔지도 몰랐고, 즐겨 찾는 레스토랑은 튀긴 음식을 주로 파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언어도 촌뜨기 사투리에다 욕설이 말끝마다 튀어나왔고,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적 취향은 전무했다.  

 뿐만 아니라 폭력이 일상적인 힐빌리 출신의 그는 상대방이 조금만 도발해도 이를 명예를 실추하는 것이라 여겨 참지 못하고 흥분했는데, 알고 보니 낮은 자존감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의 가문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으면 당한 만큼, 또는 그 이상 갚아주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는 부인의 도움으로 힐빌리적인 기질을 죽이고 엘리트 문화자본을 습득하며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내가 높은 수준의 교양과 품위를 갖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매번 느꼈던 생각은, 그들은 즉각적으로 감정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외부효과를 항상 고려하며, 신중하게 대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When they go low, we go high"로 응수한다. 

 물론 이런 엘리트들의 높은 문화자본이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재수 없다는 이유로 저소득 노동자 계층이 문화적 자기 계발 동기부여가 적은 것도 아쉽다. 노동자 저소득층도 도서관이나 공공 미술관을 즐겨 찾으며 품격 있게 살 수 있는데, 고소득층보다는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적다. 높은 문화자본이 단지 고소득층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상류층이 중산층 또는 저소득층을 경멸할 때 문화자본으로 열등감을 자극하며 무기 삼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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