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우리가 마주하는 딜레마
기술의 파고를 따라
기술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의지로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칼 베네딕트 프레이의 저서 <테크놀로지의 덫>을 읽은 뒤 떠오른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데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기인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20세기의 산물이었던 인력거꾼이 택시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던 것처럼 기존의 택시는 차량 공유 서비스와 자율주행차량의 상용화에 따라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기술은 바로 AI 기술이다. 지구 상에서 사피엔스라는 종이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변화'라는 큰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 엘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것처럼 그 큰 흐름은 첫 번째로 농업 혁명, 두 번째로는 산업 혁명과 함께 하였고 인류를 새로운 변화로 이끌 세 번째 흐름이자 기술은 정보혁명이다. 그가 1980년대에 제시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주장은 유효한 듯하다.
앞으로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보다는 문화적, 기술적 진화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
- 리처드 도킨스 -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했던 말이다. 산업을 뒷받침하는 큰 기술의 격변을 겪을 때마다 인간 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 충격을 마주했다. 위 책의 저자인 프레이 교수는 산업 혁명 시기 영국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충격을 예로 들고 있다. 그리고 2019년과 다가오는 202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 사회는 불가피하게 미래 AI 기술이 야기할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농업혁명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산업혁명은 300년 걸렸지만 지식정보 혁명은 불과 20~30년 만에 이룩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인공지능 기반의 기술 혁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우리 사회의 산업 환경을 바꾸고 있다. (무어의 법칙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느끼는 지점이다.)
정치적 의사 결정
이 지점에서 기술 발전을 중심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입장과 기술 발전에 소외되는 계층을 감싸 안고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20세기의 미국이 소외되는 계층을 과감히 버리고서, 빈부 격차를 감수하고서 성장 지향적인 전략을 채택한 덕에 국가 전체의 경제적 지표는 일본, 독일과 같은 경쟁국을 제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부의 불만을 수습해야 하는 정치적 한계점에 도달했다. (엘빈 토플러는 이를 '정치의 무덤'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Viva America"를 외치며 미국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사실 또한 미국인들이 미국인을 위한 미국을 원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이전의 영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이 체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 지향적인 전략을 채택해 인공지능 기반 시대의 맹주가 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다. 경제 환경이ㅌ 디지털 테크 위주로 재편되고(중국 거리에 있는 거지들도 QR코드로 구걸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세계 어느 국가들보다도 빠르게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기술에 있어서 여전히 미국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중국의 기술력 자체보다 중국의 정치적 의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라는 외부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AI와 로봇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이 신기술을 기반으로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려는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 내부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구성원의 불만 제기를 탄압하거나 교묘히 관리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확고한 것은 비교적 분명한 듯하다. 중국의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와중에 미국이 이에 대응해 온건하고 부드러운 이행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보다는 내부의 불만보다는 외부 강대국과의 경쟁이 더 큰 위협이라고 판단하여, 주도권을 잃지 않고자 다시 강경한 기술 정책을 채택하려 하지 않을까. 미국과 중국의 이야기를 한 것은 사회가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흐름에 얼마나 편승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크게 특정 사회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점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승객을 무시한 채 기술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설국 열차를 힘차게 몰 것인가? 열차를 몰지 않고 소외되고 보살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등과 복지와 나눔을 이야기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거대한 두 공룡 국가의 선택은 국가 차원의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들을 기반으로 경제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선택의 문제가 그렇듯이 정답은 없다. 매번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과거의 과오로부터 배우는 점은 있어야 한다. 정체되어 있다 몰락하는 제국이 되지 않기 위해, 또는 성장이라는 명분 하에 앞만 보고 달리는 1인 독재 정권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현상에 대해 질문하고 합의하여 행동을 옮겨야 한다. 빠르게 발전해야 하는 성장 동력이 필요한 분야에는 과도한 규제가 아닌 산업 성장 발판이, 나눔과 복지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충분한 복지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나는 이 몇 글자를 좁은 학교 기숙사 방에서 적고 있다. 온몸으로 기술의 변화를 체감하는 곳은 아니지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오늘이 아닌 내일의 세상을 항상 생각하고 준비해야 된다고 말해준다. 특정 산업의 일꾼으로서 땀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 당당히 서있기 위해서는 생각과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미래로 향하는 흐름 속에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알아야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는 국가의 정치적 결정과 무관하게 AI시대의 파고 속에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대로 나는 쏟아지는 데이터들 속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해내어 서비스를 기획하는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기획한 내용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가 될 수도 있고, 직접 서비스를 operate 하는 운영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는 메시지를 담은 글을 쓸 수도 있고,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도 있고, 스토리를 전하는 인문학도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전공을 따라 스페인과 중남미권 문화와 언어를 알리고, 소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여러 방면에서 하이브리드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도 기술의 흐름 속에서 다재다능하게 나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혹자는 전문성이 없어지지 않겠냐 하며 우려의 말을 건네고, 나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의심이 드는 순간도 있지만 나는 믿는다.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현상에 대해 질문하고 합의하여 행동에 옮김으로써 나는 성장할 것이라고.
현존재는 현상(現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 쇼펜하우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