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걸 모를 나이

2026년 3월 11일

by 리르리안

인사말을 넣기도 민망한 주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랜만이라는 글귀조차도 식상해질 정도로 글을 뜸하게 쓰게 되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한번 끄적여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으신가요? 이 물음에 대해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가 있는데, 바로 [일자리 만족도]입니다. 취업자에게 자신의 일자리에 대해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 것인데, 데이터가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2009년부터 매 2년마다 조사된 결과가 단 한 번도 40%를 넘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나마 2015년 이후 조금씩 올라가는 모습이지만, 최근 조사인 2025년에서도 38.3%에 그치는 모습이었죠.

chart421901_1Img.png (출처: 국가데이터처, https://www.index.go.kr/unity/potal/indicator/IndexInfo.do?clasCd=2&idxCd=4219)


이것만 가지고 직업만족도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직업이 아니라 "일자리"니까요. 직업 자체의 만족도는 높지만 당장의 내 옆의 동료가, 두 칸 옆에 앉아 있는 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편도 2시간 가까이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출퇴근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을 수도 있죠. 반대로 현실에 부딪혀 생각하지도 못한 취업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지금의 동료가 정말 좋거나 월급 대비 너무 쉬운 일을 하고 있어 일자리 자체에는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에 대답을 했다면 저는 만족을 답했을 것입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 어렵지 않은 일로 생각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요. 30살이 넘도록 걸어오고 준비했던 길과는 다소 다른 길을 새로 걷게 된 지 1년이 된 이상 이제는 다른 길을 걷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그냥 주어진 삶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죠.


...너무 슬픈가요? 학창 시절에 품었던 꿈, 20대에 펼치고 싶었던 나의 목표를 생각하면 현실에 안주하게 된 슬픈 30대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대의 끝에 잡은 첫 직장, 더 넓은 세상을 가고자 이직의 꿈을 안고 나온 지 한 달 만에 터져버린 코로나, 그렇게 방구석에서 허무하게 보내버린 2년이라는 세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눈치보고 살던 3년을 생각하면 저는 슬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오래 논 것 치고는 잘 풀렸죠. 꾸준히 돈도 모으고, 아버지 보시라고 TV도 바꾸고, 어머니 쓰시라고 동생하고 돈 반반씩 넣어 스마트폰도 하나 장만해드리고, 그럼에도 주말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여행도 갔다 올 수 있는 삶이 되었는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국 되는대로 사는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요,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더라고요. 아무리 어렸을 때 자기 꿈을 찾아봐라, 너한테 맞는 진로는 이런 방향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노력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릅니다. 지금 10대를 사는 어린 친구들도 그렇고, 20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도 그렇고, 이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아는 건 나이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30이 넘어도 여전히 저는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거든요. 글쓰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그건 다 취업을 위해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뭘 잘하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을 수없이 했었다면, 요즘에는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