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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루 RiLu Dec 13. 2022

그대 부디 건강히 (이건 bts 진에 대한 글)

학창시절에도 팬질 따위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나이 마흔 넘어 BTS의 팬된 이유는 어찌 보면 우울증 덕분이다. 렇다고 운명적 건이 있 건 아니고, 우연히 '웃음참기 챌린지' 영상을 봤을 뿐긴 하지만.


그때 상태가 매우 안 좋다.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좀 나아지면 할 수 있는 게 스마트폰 보는 였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에서 잘생애들 대환장 개그파티를 하고 있더라고. 그땐 이미 BTS가 빌보드에서 대기록을 세운 후였다. 그런데 명색이 월드스타라는 애들이 리낌없이 망가지고 웃으면서 지들끼리 아주 좋아 죽더라고.  모습이 처구니가 없어서, 비록 '피식' 수준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었다.


가운데 ''이라는 멤버가 있다. 본명 김석진, 팀의 맏형, 조막만 한 얼굴에 글한 입술, 날씬한 몸뚱이에 벌어진 어깨, 타공인 왕자님 미모.. 치만 솔직히 내 스타일 아니다. 릴 때부터 눈썹 찐~한 박찬호 스타일좋아했던 내가 보기엔 너무 병약하고 반듯 보였거든. 그러니까 절대 얼굴 보고 좋아한 건 아니다.


근데 어쩌다  내 최애가 됐느냐면, 음엔 좀 짠한 마음 때문이었다. 칼군무로 유명한 BTS에서 솔직히  어설픈 춤실력에, 기교 없이 무 정직 보컬에, 그렇다고 무대를 어먹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잘생긴 얼굴 는 좀 어중간하다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본인 역시 스트레스께나 받았을 .


그런데 이 친구의 태도가 놀랍. 무살짜리라면 그런 상황에서 감으로 비뚤어질 법 한데,  멋지게 진화하더라. 철없는 동생들 장난은 더 철없이 받아주고, 생긴 자신을 사랑한다며 스스로 '월와핸(월드 와이드 핸섬)'이라 칭하고 다니더니, 영어도 못하면서 해외 인터뷰에 너무 당당해서 청중을 빵빵 터뜨린다. 나이에 안 맞는 아재개그는 뭐고, 옷은 또 왜 그 대충 입어? 그 조각같은 얼굴 그따위로 다니.. 똘끼 충만한 영상짤이 많이 돌아다녀서 나중에는 '또얘남(또 얘야?라는 뜻)'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내 반응 '얘 완전 똘아이네'였다. 그러다가 '얘 좀 귀엽네'가 되더니, 얼마 후엔 '얘 좀 짠하네'가 되고, 지금은 '얘 정말 멋지네'가 됐다. 밤낮없이 BTS 영상만 봤더니 알겠더라고. 아.. 원래는 엄청 내성적인 성격이구나. 근데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구나. 어쩐지 그 뻔뻔함  자연스럽지가 않고 좀 어색하다 싶더니..


계속 지켜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스스로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뷔 초 비웃음까지 받던 춤실력은 얼마나 피터지게 연습했는지,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눈에 띌 정도로 좋아더라. 게다가 잠꼬대로 노래연습을 하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더라는 멤버들의 목격담은 또 어찌나 짠한지. 빛나는 자리는 모두 재능 넘치는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기꺼이 망가지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석진아, 너의 수고는 너만 알면 돼.

- 진의 셀프인터뷰 중에서 -


대단하다. 작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애가 저렇게 단단할 수가 있나. 뷔 때부터 파란만장했기로 유명한 BTS을 다 겪었을 텐데, 분명히 심란하고 울컥한 때가 많았을 텐데, 모두 꾹꾹 누른 채 솔선수범(?)해서 망가지는 역할을 자처하다니.


그러다가 진의 솔로곡 <awake>를 들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은 하필 내 인생 최악의 위기였다. 뻘 속에 쳐박혀 꼼짝 못하는 듯한 기분으로 이 노래를 듣다가, 그야말로 몸을 뒤틀면서 펑펑 울었더랬지.



믿는 게 아냐. 버텨보는 거야.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머물고 싶어. 꿈꾸고 싶어.
그래도 말야, 떠날 때가 됐는 걸.

...

Maybe I, I can never fly.
저기 저 꽃잎들처럼, 날개를 단 것처럼은 안돼.
Maybe I, I can't touch the sky.
그래도 손뻗고 싶어. 달려보고 싶어. 조금 더.


BTS의 노래는 아이돌치고 유난히 자아를 탐구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진의 솔로곡들은 유난히 우울러들을 후벼다. 본인이 실제로 번아웃증후군을 겪었던 탓까. 왠지 내 노래를 대신 불러주이, 나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내 기분을 어떻게 알고 노래에 담아놨을까 싶었다. 참고로, "네 주위를 맴돌게. 네 빛이 되어줄게"라고 노래하는 <moon>도 우울러에게 매우 강추하는 곡.



그런 진이 오늘 군대에 갔다. 하필 맏형인 탓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수 년 동안 가들 입에 오르내리, 안 먹어도 될 욕을 먹었던 억울함에 대해서는 할많하않. 제까지도 포근했던 날씨가 하필 왜 오늘부터 추워지는지, 그와중에 눈은 왜 내리는 건지.. 솔직히 심란하다. 아들 군대 보내는 느낌이 이런 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추위 잘 타고 마늘 알러지가 있는 우리 애가 최전방으로 간다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 빡빡 민 머리가 귀여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래도 한편으로는 10년을 쉴 새 없이 달려온 bts에게 군생활이라는 '평범한 경험'은 어쩌면 좋은 시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상 그 어떤 소년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인생을 살았으니, 이번엔 그렇게 갈망하던 보통 청년으로 살아기회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는 중.


어쩌면 제대 후엔 지금보다 인기가 떨어질지도 모르지. 런 생각 때문에 인 역시 불안할 모른다. 하지만 얄팍한 팬들은 그렇게 떠날지언정 우리 끈끈한 팬들은 말없이 더 멋진 남자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떠나간 사람들의 허전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가 더 큰 함성으로 맞아줄 거니까, 그때는 또 그때의 음악을 하면 된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건강하게 잘 다녀오기만 하면 좋겠다. 어쩌면 앞으로의 시간은 너에게도 성장의 기회이지만, 나에게도 그럴지 모른다. 네가 없는 동안 나도 더 우울해지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보도록 노력할테니까 말이다. 서른살의 너에게 군생활이 괜찮은 기회일 수 있듯이, 이 나이의 나에게도 다시 단단하게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이 될지.. 그러니 팬으로서 바라는 건 딱 하나뿐이다. 그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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