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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Aug 03. 2021

<위태롭고 안전한 균형>

3.Aug. 2021

 특별히 참혹한 실패를 겪어 본 적은 없다. 고대하던 시험에 낙방한다거나 큰 배신을 당한 경험은 전무하고, 잔뜩 웅크리고 경쟁해 본 적도 별로 없다. 대학 이전에 다녔던 대안학교에서는 성패와 등수가 없었고 교사들은 자주 이대로 괜찮다는 말을 해 줬다. 내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가르침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울 게 없는 자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후 잠시 경쟁 사회에 발을 담갔지만 금방 빠져나왔다.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 곁에는 무작정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짜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슬프고 아름다운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복 받은 나이자 어리석은 나였다.


 여전히 참혹한 실패와는 거리가 있는 나날을 보내지만 이제는 세상 풍파가 타기 좋은 파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들이 나를 무작정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정말로 무작정일 수는 없으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산다면 내가 모르는 아름다움과 슬픔과 위험과 황홀함이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싫어도 꾹 참고 잘못을 인정하면 더 수월하게 사랑할 수 있다. 싫어도 꾹 참고 일하면 주말에는 여행을 갈 수 있다. 꾹 참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 혹은 다른 어딘가에서 헤엄치다가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이제 모르지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힘들어도 꾹 참아야만 할 때가 있다. 늦은 터득이다.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것도 틀린 생각이었다. 나는 쉬이 판단당하여 점수로 매겨지거나 고용되거나 해고될 수 있다. 게다가 아무나 나를 마음속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누구의 마음에 어떻게 남느냐 하는 문제에서 나는 주체일 수 없다. 나는 정말로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글쎄, 잘 모르겠지만 누구의 판단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나는 너무도 자주 좌지우지당하였고 남의 판단에 상처 받았다. 어떤 일이 하기 싫어도 꾹 참는 것으로 지나갈 수 있는 무게가 아닐 때, 나는 물러설 필요를 느꼈다. 스스로를 너그러이 바라보고 균형을 맞추었다. 이 균형을 배우기까지 아무래도 너무 오래 걸린 것일까. 나는 느리게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수행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멈추고 돌이키고 다시 배운다.


 모르지 말아야 할 것들과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들의 홍수에서 흐르듯 누워 괜찮다며 토닥이고 싶지 않다. 꾹 참고 알아내고 해 내어 헤엄치고 발을 디딜 테다. 그러면서도 남으로부터 멀어져 나를 사랑할 것이다. 위태롭고 안전하게 균형을 잡고 앞과 주변을 살핀다. 비로소 아는 것들과 아직도 모르는 것들 사이에서 내일은 무엇을 참을지, 나를 얼마나 사랑할지,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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