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하고 싶다고!!!
큰손 고객과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팀장 A와 B는 이 하루를 위해 지난 몇 주간 밤늦게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발표 자료를 백만번쯤 읽고 수정하는 건 기본이고,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해 백업 계획도 여러 개 세워 놓았다.
고객사 CEO가 입장하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A팀장의 발표 순서.
"저희 회사는 처음 와보셨을텐데, 혹시 아까 회사 투어를 하시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먼저 여쭤봐도 될까요?"
A는 발표 대신 질문으로 시작하고, 고객의 답변에 맞게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CEO도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그의 발표를 귀기울였다.
A의 차례가 끝나고 B가 발표를 이어 나갔다.
B 역시 청산유수의 말솜씨로 PPT 슬라이드를 넘기는데, 갑자기 고객이 질문을 했다.
"저희 회사에서도 저 사항을 검토한 적이 있어서 아는데, 실제로 반영된 케이스는 얼마 안된다면서요?"
안타깝게도 그 질문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대비되지 않은 공격을 받은 B는, 당황한 눈빛으로 '어버버'하며 말도 안되는 답변을 했다. 바보같은 대답이었지만, 아무말도 안 할수는 없었다. 보다 못한 A와 전무님이 끼어들어, 잘못된 설명을 정정하고 상황을 수습했다.
아직 B의 발표는 반도 안 끝났는데, 그의 멘탈은 그때부터 쿠크다스처럼 바스스 무너져 버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 장을 넘기며 간신히 발표를 했다. 그러나 말하는 내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혀가 자꾸만 꼬였다. 어찌저찌 발표는 마쳤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빨갛게 된 얼굴로 바닥만 보고 있었다.
참관자로 두 사람의 발표를 지켜보다, 의문이 들었다.
A와 B의 차이는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둘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둘 다 누구보다 일에 진심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였다. 하필이면 B 발표 차례에 고객이 이상한 질문을 해서 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을 알고 있는 내가 느끼기에, 아마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닐까 싶었다.
A는 원래 느긋하고 여유있는 성향이다. 발표를 앞두고 긴장되지 않냐 물어봤을 때, 이런 답을 했다.
"어휴, 할만큼 했는데 뭘. 될대로 되라지. 뒤는 잘 모르겠다. 하하하."
반면 B는 '이번에는 절대 망치면 안돼, 완벽해야돼.'라는 마음이 너무 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면, 작은 질문 하나에도 마음이 급격히 쪼그라든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당황하고, 중심을 잃는다. 지나친 긴장을 하게 되고,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다. 회의의 중심인 고객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을 잘 해내야 한다.
평가받고, 비교당하고, 인정받아야 승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마음이 너무 커질 때다. 그 마음이 나를 경직시키고, 상황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유연성을 앗아간다. 그래서 B처럼 예상 밖의 질문 하나에, 갑자기 중심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잘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어느 순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바뀌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 노력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소진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마음이 크면, 그걸 제대로 못해냈을 때 실망감이 더 커진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내가 좋아하던 일마저도 꼴보기 싫어질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더 잘하려는 전투력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노력을 멈추라는 말은 아니다. 잘하기 위해 필요한 연습은 꾸준하고 충분하게 하되, 그 결과는 나의 힘으로 100%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중요한 일에 최선을 다하되, 완벽을 기하지는 않기. 최선이 과정이라면, 완벽은 결과에 가까운 단어다.
만약 여러분이 아주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든다면, 이 노래를 흥얼거려보시길 추천한다.
"Let it go~~Let it go~~~"
이미 준비는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남은 건 흘러가게 놔두는 '렛잇꼬우!'의 용기를 내보시기를...